본문 바로가기

책&배움320

회복 의례의 부재 회복한 사람에겐 의례를 치를 자격이 있다. 여러 원시 부족에게는 재진입 의례가 있었다. 낙인이 찍힌 사람을 정화하여 다시 사회로 받아들일 때 치르는 의례다. 이 의례는 부활을 뜻한다. 의례 후에 삶은 새로이 시작된다. 내가 겪은 두 번의 심각한 질병은 병원에서 받은 검사나 처치로 마무리되었고, 이런 결말은 의례의 가치를 지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현대의 대사제라고 할 수 있는 의사들은 한낱 의료 기술자로만 남기를 택했다. 자신들이 개입함으로써 몸의 상징적인 가치가 변하지만 의사들은 이런 자기 힘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리하여 환자나 의사 모두 질병에서 영적인 차원의 경험을 놓친다. 의례에 뒤따르는 명료한 자기 인식을 의학의 세계에서는 찾기 힘들다. 그리하여 아팠던 사람이 다시 일상의 삶으로 재.. 2023. 5. 1.
자살테러와 희생 최근에 번역된 책에서 탈랄 아사드는 이슬람 관련 자살테러를 논하는 종교학자, 구체적으로 자살테러에 ‘희생’을 적용하는 이반 스트렌스키의 설명에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 이슬람 전통에서 짐승의 도축을 수반하는 희생제의(다비하)를 행하는 경우는, 신의 명령에 응할 때, 신에게 감사를 표할 때, 특정한 잘못을 뉘우칠 때, 이렇게 세 가지 경우다. 이 중에 자살테러자에 해당되는 것은 없다. 희생제의를 통해 뭔가가 ‘성스러워진다’라는 스트렌스키의 생각은 보기보다 막연하다.……희생제의를 통해 ‘성스러워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희생제물을 받는 신, 희생제물을 바치는 인간, 희생제물, 셋 다 성스러워지지 않기는 마찬가지다.……희생제의가 희생제물을 바치는 사람을 성스러운 존재로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탈랄 아사드, (창.. 2023. 5. 1.
침묵하는 하느님에 대한 냉소, 하지만 그를 버리지 않음 며칠 전 작고하신 엘리 위젤의 에서 그의 신학적인 언급들을 옮겨놓는다. 나는 이 소설이 ‘고통을 통해 신과 만나는’ 친교의 신정론의 사례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읽어보니 다른 맥락으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대에 매달려 있는 하느님”은 그 분이 인간의 고통 한 가운데 계신다는 감동적인 스토리는 아니었다. 그것은 이러한 고통의 순간에 침묵하시는 그 분에 대한 냉소에 더 가까운 표현이었다. 이 소설은 15세 소년의 아우슈비츠 경험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신과의 역설적인 조우라는 고차원적인 신학보다는, 이런 절대자라면 분연히 맞설 수도 있다는 치기가 더 느껴지는 글이다. 그가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쪽을 택하지 않은 것이 중요하다. 그는 여전히 유대 전통 안에서 사유하였고 그렇기에 하느님에게 화낼 여.. 2023. 5. 1.
메모, "무당, 여성, 신령들" 로렐 켄달, , 김성례&김동규 옮김 (일조각, 2016). 1970년대 한국 무교의 흥미로운 모습들 중에서 몇 개만 옮겨 놓는다. 1. 펌프와 기우제 가뭄이 들었을 때는 각 가정에서 돈과 곡식을 추렴해 만신을 고용하고 도당 나무 옆에 있는 용왕의 우물가에서 굿을 했다.……1977년 여름 가뭄이 찾아왔을 때 노인들은 현재 마을에 펌프 시설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굿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94) 2. 마을 주민들의 열광적인 ‘미신 활동’은 새마을운동의 지도자들과 그 지역 교회 목사들에게는 끊임없는 불만거리이다.……이곳에서 텔레비전 세트는 나무 동법을 옮겨와서 축귀의례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휴대용 녹음기는 무당이 긴 무가를 익히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105) 3. 논문 준비의 대가 향로 .. 2023. 5. 1.
함께 살았던 세월 이언 아몬드, 최파일 옮김, (미지북스, 2010). 따라가기 벅찬 복잡한 사연들이지만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저자의 필치는 참 매력적이다. 이런 일(무슬림과 기독교인이 한데 뭉쳐 싸우는 일)을 가능케 한 무수한 변수들이 존재하지만, 저자가 강조하는 소박하지만 힘 있는 쟁점은 그저 “함께 있음”이 그런 일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오랜 기간 이웃으로 함께 지내고 같은 언어와 문화를 지닌다는 것이 종교를 넘어 연대하는 힘이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터키의 한 민가에 남은 그리스인의 흔적을 보며 “무슬림과 기독교가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마을의 소문을 주고받으며 같은 신문을 읽고 같은 커피하우스에서 같은 악기로 연주한 같은 가락에 맞춰 함께 춤추던 시절에 대한 증언”(322)을 읽어낸다. 그는 이러한 증언을 .. 2023. 5. 1.
죽음을 음식으로 맞선 유교 죽음을 음식으로 맞선 문화가 있다. 유교는 초월의 세계, 영혼들만의 세계를 꿈꾸지 않는다. 그리하여 현세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세적이라는 말이 합리적이란 말로 대체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종교적이란 말과 대립각을 이룰 필요도 없다. 오히려 유교의 현세성을 지극히 일상적인 삶의 형식을 의례화하여 비일상적인 것을 극복하는 문화 양식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일상성의 의례화가 가장 두드러진 것으로 유교 상례에 나타난 음식의 공궤(供饋)를 들 수 있다. 어느 사회와 마찬가지로 유교 사회에서도 죽음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이별로 현실화되기 때문에 애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 슬픔의 시간 속에서도 유교 상례는 망자에 대한 음식의 제공을 중단하지 않고, 이를 통해 산자와 죽은 자 사이에 .. 2023. 5. 1.
20세기 전반기의 페티시들 판데르레이우는 페티시즘을 설명하면서 어김없이 현대인들을 연결시켜서 이야기한다. ‘원시종교’가 타자의 신앙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기본적인 요소라는 그의 입장은 이러한 식의 설명에서 잘 나타난다. 언급되는 자료들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선교전시회 사례는 기묘하다. 선교사들이 수집해온 페티시는 분명 선교 전리품의 의미이자 미신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것일 터이다. 그러나 그것이 의도치 못한 종교성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었던 듯 하다. 구체적인 자료는 확인해보지 못했다. 심지어 현대인들조차도 자신을 보호하는 힘을 가까이할 필요를 느낀다. 독일군이 파리를 폭격했을 때 네넷트Nénette와 랭땡땡Rintintin이란 유리구슬로 만든 두 종류의 인형이 잘 팔렸다고 한다. 우리 비행가들은 곰 인형을, 우.. 2023. 5. 1.
빅데이터의 부족部族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유력한 방법은 ‘분류’하는 것이다. 무질서한 자료를 연관된 사물을 통해서 분류하는 지적인 작업은 토테미즘을 연상시킨다. 미국의 빅데이터 전문가들이 자신의 분류를 일컫는 말로 ‘부족tribe’을 사용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블로그를 분석하는) 코샨스키의 팀은 블로거를 여러 개의 그룹 또는 ‘부족’으로 분류하기 시작한다. 코샨스키의 머릿속으로부터는 거의 끝없는 부족 분류표가 나온다. 도리토스 먹는 부족, 바이커스-포-오바마Bikers for Obama, 미니쿠퍼 애호가 등 블로거들을 부족으로 분류하고 나면 팀은 부족과 제품과의 상호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블로거를 분석하여 코샨스키는 게토레이족에 운동선수나 피트니스 광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술을 많이 마시는 대학.. 2023. 5. 1.
사진에 관하여 사진에 대한 글을 쓰고 나서 이 책을 읽으니 문장들이 머리에 쏙쏙 박힌다. 사진들을 보면서 희미하게 떠올랐던 생각들이 간결하고 정확한 언어로 잘 정리되어 있다. 사진에 관한 글에서 인용하고 싶은, 하지만 약간은 소화를 거쳐야 할 문장들을 기록해 놓는다. 수전 손택, 이재원 옮김, (이후, 2005)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새로 가르쳐준 사진은 무엇이 볼 만한 가치가 있는가, 우리에게 관찰할 권리가 있는 것은 무엇인가 등을 둘러싼 관념 자체도 바꿔버렸고, 더 넓혀줬다.”(17) “사진을 수집한다는 것은 세계를 수집한다는 것이다.”(18)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사진에 찍힌 대상을 전유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과 세계가 특정한 관계를 맺도록 만드는 것인데, 이 과정을 통해서 마치 자기가 어떤 지식을.. 2023. 5. 1.
"감사합니다, 한국" 이케다 다이사쿠, (조선뉴스프레스, 2012). 한국불교계에서는 SGI에 ‘왜색불교’라는 레테르를 붙이는 경우도 있지만, 정작 이 단체가 갖고 있는 한국에 대한 태도는 일본 종교로서는 독특한 것 같다. 이케다 회장의 이 책에서 한국에 대한 애정은 잘 드러난다.(아직 다른 책이나 글은 보지 못했음) 한 구절을 인용하면 이렇다. “한국은 일본에게 ‘문화대은’의 ‘형님의 나라’입니다. 또 ‘스승의 나라’입니다. 일본은 그 대은을 짓밟고 귀국을 침략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영원히 귀국에 속죄할 것입니다.”(54) 이케다 회장의 이런 발언은 립서비스를 넘어서는 것으로 느껴진다. 적어도 구체적인 사례들을 언급하며 한국과의 우호를 도모하는 그의 성실성만은 틀림없이 드러난다. 홋카이도와 울릉도 간의 행사에서 울릉도의 .. 2023. 5. 1.
‘천天’의 다의성과 천인 관계의 다양성 [현대 학자들은] ‘천’에 대해 인격신, 자연의 이법 외적인 ‘천’이라는 분류를 시도하고 있다.……후세에 서양 사상과의 교류 속에서 ‘천’이 기독교의 ‘God’의 번역어나 신이 소재하는 ‘Heaven’의 번역어로 사용되게 된 것도 이러한 다의성을 생각하면 잘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상의 다의성은 ‘천’이라는 말에 의해 지시된 대상 쪽에서 어떤 것이 보이고 있느냐 하는 그 차이와 관계가 있다. 이에 대해 (1) ‘천’이 어떻게 인간과 관계를 맺고 있는가, 즉 ‘천’과 인간이 ‘천명’이라는 형태로 직접적으로 교류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자연의 질서나 변화, 혹은 인위적인 제도를 매개로 하여 간접적으로 관계하고 있는가, 또 (2) ‘천명’이라고 할 경우 그것은 주로 인간 생활의 어떤 분야와 관계하고 .. 2023. 4. 30.
문화를 통한 종교 읽기 내 설명이 허술한 탓이겠지만, 문화로서 종교를 다루는 것이 만만치 않음을 새삼 느낀다. 요즘 하고 있는 ‘종교와 영화’ 강의 첫머리에서 나는 종교는 인간의 상상력이 발휘되는 전통적인 영역이고 영화는 상상력이 발휘되는 현대의 영역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늘 하던 이야기였고 상당히 소박한 차원의, 별 어려울 것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내용인데, 의외로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종교를 인간의 상상력과 연결한다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내가 속한 집단 내에선 당연한 말이 사회적으로는 그렇지 않음을 일깨워주는 것이 강의(특히 교양)이다. 문화(즉 인간이 만든 것)로서 종교를 다루는 학문적 전통을 일구는 일이 종교학 내외로 얼마나 지난한 일이었는지를 생각해보게.. 2023. 4. 30.
프로이트 말년의 주제 피터 게이의 프로이트 평전은 삶과 저술이 촘촘히 얽힌 거장의 세계로 독자를 불러들인다. 이 황홀한 초대의 내용을 쉽게 요약되지 않는다. 다만 종교에 관련된 내용 하나만을 메모해둔다. 이 책에는 프로이트 말년의 문제작 의 저술 과정과 맥락이 흥미롭게 묘사되어 있다. 전에 그 책을 읽었을 때는 괴이한 책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제 그 책이 프로이트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저자는 그 책이 “프로이트의 작업 전체를 보자면 약간 괴짜”이며 “역사소설”에 가까운 점이 많다고 냉정하게 평가한다.(527) 그럼에도 모세라는 주제(“유대인은 모세라는 인간의 창조물이다”)는 프로이트가 말년에 강박적으로 집중한 주제이며, 그런 주제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많은 것들, 또 옹호 불가능한 많.. 2023. 4. 30.
흐름으로 정의된 종교 “종교들은 유기체의 흐름과 문화의 흐름의 만남confluence으로, 인간적인 힘과 초인간적인 힘을 이용하여 거처를 만들고make homes 경계를 가로지름cross boundaries으로써 즐거움을 북돋고 고통을 감내할 수 있게 해준다.” Thomas A. Tweed,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2006), 54. 종교학에서 최근에 시도된 종교 정의 중 하나이다. 종교를 정의한다는 것 자체가 이론적으로 해명해야 할 큰 쟁점이 되는 시대이다 보니 이런 작업이 쉽지 않다. 연구자의 태도에 따라 종교에 대한 시각은 달라지기 마련이고, 그 시각을 반영하는 새로운 정의가 연구에 따라 달리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기본적인 입장. 위의 정의는 현대사회에서 크게 부각되.. 2023. 4. 30.
물질적 측면을 논하는 것 [브루스 링컨의 종교학 방법론 테제 제3항] 종교학history of religions은 자신이 연구하는 담론의 방향성에 저항하고 그것을 뒤집는 담론이다. 학과 명칭이 뜻하는 바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종교학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특성을 영원하고 초월적이고 영적이고 신적인 것이라고 표상하는 담론, 실천, 공동체, 제도들에 대하여 그것들의 시간적, 상황적, 위치적, 이해관계의, 인간적, 물질적 측면을 논하자고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Bruce Lincol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2), 1. 원래는 1995년에 발표된 내용) 종교가 지향하는 바와 종교학이 지향하는 바는 다르다. 다르다는 것은 온건한 표현이고 사실은 반대될 때가 많다. 종교인들이 강조하고 높이 여기는.. 2023. 4.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