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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발제110

우리 일상에서 되살려진 애니미즘 애니미즘animism이라는 단어는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의 대표적인 용어이긴 하지만, 그의 학문적 의도는 잘 잊힌 채 부정적인 의미만 강조되어 원시민족(교회에서 흔히 말하는 미전도 종족)의 종교라는 멸칭으로 사용되는가 하면, 현대 생태학에서는 긍정적 의미로 되살려지고 있는 용어이다. 설명의 실마리가 쉽지 않은데, 이 책은 이 용어의 고전적 의미부터 생태학적 의미까지 완벽하게 설명해준다. 글쓴이의 삶이 배어 있기에 가능한 설명임을 읽는 내내 느끼게 된다. 1부에선 타일러 의 번역자 유기쁨이 고전적 이론으로서의 애니미즘을 설명해준다. 이론적 논의에서 거의 항상 무시되어 오는 타일러의 입장에서 그의 문제의식을 상세히 알려준다. 물론 진화론적 도식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던 그의 한계가 무엇인지.. 2023. 7. 16.
차례 상차림의 원칙 홍동백서와 어동육서와 같은 말들은 유교 경전의 근거가 없다는 주장(성균관 의례부장)이 몇 년 전 신문에서 소개되었고 올해는 텔레비전 뉴스에서 더 자세하게 다루어지는 것을 보았다. 법도가 무엇인지 잘 모르면서 격식을 갖추느라 고생하는 우리들에게 의미 있는 뉴스이다. 모르기에 집착해왔던 법도에 무슨 근거가 있는지 따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 뉴스에는 그 다음이 없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으로, 홍동백서와 어동육서가 근거가 없다고 해서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는가? 분명 홍동백서는 에 언급되지 않는다. 그래서 유교 엘리트의 입장에서 경전적 근거가 없다고 할만하다. 하지만 제사의 법도는 경전의 공백 때문에 실천적 맥락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법도는 조선 시대부터 .. 2023. 6. 4.
대통령의 현몽들 종교에 의한 국정농락이라고 하여 현재 초미의 관심사이지만, 정작 ‘최순실의 종교’에 대해서는 알 수 있는 자료가 없다. 나도 궁금해 죽겠다. 대통령이 사용한 특이한 몇몇 표현들이 그와 관련 있겠거니 추측할 뿐이다. 아버지 최태민의 종교에 대해서는 손톱만한 정보들이 있지만, 최순실은 최태민의 실질적 계승자이며 현몽과 계시의 능력이 있다고 알려진 것이 전부이다. 무엇을 계승하였고 어떠한 세계관을 만들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나마 주목할 만한 단어는 ‘현몽現夢’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최태민이 박근혜와 처음 접촉한 것은 육영수의 현몽을 계기로 한 것이었다. 현몽은 환시나 환청과는 구별되는 전통적인 종교체험 방식인데, 이것이 이들 종교의 토대를 이루는 경험이라고 추측할 수밖에. 이와 무관하지는 않지만 맥.. 2023. 6. 4.
“문화로 본 종교학”으로 수업을 하고 나서 지난 학기에 맬러리 나이의 을 교재로 삼아 강의를 했다. 교재의 모든 부분을 순차적으로 따라가지는 않았지만 70% 정도 분량을 필요에 따라 재배치하여 사용했으니 이 정도면 상당히 교재를 많이 활용한 수업이다.(2장 문화와 3장 권력을 상당 부분 생략했다.) 이 교재 덕에 내 수업은 상당히 새로운 수업이 되었다. 그 새로움에 대해 간단히 기록해둔다. 기존의 종교학개론 계열의 교양과목(즉 세계종교 계열이 아닌 종교학 교양과목. 내 경우는 인간과 종교)은 종교현상학적 입장을 강조한다. 같은 교재가 대표적이다. 기존의 종교학 주류의 입장, 엘리아데의 입장을 주로 소개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신화나 상징을 이야기하면 엘리아데의 개념(시간의 주기적 소거, 중심의 상징 같은) 위주였다. 즉 상징의 보편적 의미를 설명.. 2023. 6. 3.
의례에 대한 알짜 사실들 조너선 스미스의 ‘의례 이론’을 소개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다음 글을 골랐다. Jonathan Z. Smith, "The Bare Facts of Ritual,"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2). 이하의 내용은 이 글에서 나름대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대목들을 뽑고 그것을 다른 사례들을 들어서 해설하는 방식을 취한 한시간 분량의 강의안이다. 1. 대본에 없는 것 1-1. 의례에 관한 두 이야기: 우연한 요소의 개입 [글 처음에 인용된 두 이야기를 그대로 소개하였다. 의례에 우연한 요소가 개입된 이야기와 그렇지 않은 이야기이다. 우연성이 언제든 들어올 수 있음을 확실히 보여주는 이야기.] 표범들이 갑자기 사원에 들어와 의례용 잔에 든 물을 마셔버렸다... 2023. 6. 2.
한국 오순절교회에 대한 콕스와 몰트만의 논쟁 저명한 신학자들이 한국 교회에 대해 논쟁한다. 그런데 매우 사소해 보이는 것 갖고 신경전을 벌인다. 몰트만은 2005년 논문에서 순복음교회 신학이 정통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자기 입장이 ‘기독교 무교’ 따위를 언급한 하비 콕스와는 다르다고 넌지시 언급한다. 다음 해에 콕스가 반박하는 글을 발표한다. 순복음이 비정통적이라고 할 의도는 없었다는 것이다. 이 논쟁에는 묘한 대목이 있다. 서로 자기들이 한국에서 얼마나 대접을 잘 받았는지를 말하고 있다. 몰트만 글에서도 그런 부분이 있고, 이에 대한 반론에서 콕스도 자기도 얼마나 대접을 잘 받았는지를 자랑하듯 말한다. 서울의 좋은 호텔에서 숙박하고 인천순복음교회에 초청되어 환영받은 이야기를 한다. 이것이 자신의 책이 순복음교회에서 환영받았음을 말하기 위한 근거라는.. 2023. 5. 30.
아미시와 외부 세계 미국 아미시Amish 교단을 잘 소개한 책이 있어 흥미로운 내용들을 정리해 놓는다. 임세근, (리수, 2009). 1. 현대 사회와의 만남 아미시는 외부세계와 떨어진 삶을 살지만, 그러한 삶을 후속세대에 절대적 의무로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아미시 아이들이 청소년기가 되면 “럼스프린가”라고 해서 외부사회를 자류롭게 경험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 기간 후에 아이들은 아미시 공동체에서 살 것인지 외부세계에 나가 살 것인지를 스스로 선택한다. 약 10%정도가 바깥세상을 선택한다고 한다. 아미시로 교육받은 아이들이 외부를 선택하는 것은 모험이라는 점에서, 이 선택이 진정 자유로운 것인지 의의를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자기 결단의 기회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공동체를 유지하는 현명한 방법인 것 같다. 또한.. 2023. 5. 30.
아미시의 용서 2006년 10월 찰스 칼 로버츠라는 남성이 펜실베니아 주 니켈 마인스에 있는 아미시 학교에 침입하여 아이들을 인질로 잡고 있다가 총으로 학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일어났다. 5명의 아이가 사망하고 5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 남성은 평소 아미시 농장의 우유를 배달하던 트럭 운전수였다. 비폭력주의자로서 평화로운 삶을 살던 이들에게 닥친 이 사건은 “아미시의 911”이라고도 불린다. 놀라운 일은 이 사건에 대한 아미시 공동체의 반응이었다. 사건이 있은 후 아미시들은 범인 로버츠의 가족과 접촉하였다. 가족들은 로버츠의 아버지를 안고서 ‘당신을 용서합니다’라고 말했다. 로버츠의 가족들 역시 이 사건의 희생자라고 인식한 것이었다. 로버츠 가족들은 아미시 희생자들의 장례식에 참석하였으며, 아미시 가족들은 .. 2023. 5. 30.
동아시아에 울려퍼진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어쩌다가 출판사 회보에 서평을 하나 쓰게 되었다. "침묵"을 출판한 홍성사에다가. (우리나라에 "침묵"은 성바오로출판사에서 나온 것과 홍성사에서 나온 것 두 가지가 있다. 그러나 저작권 계약을 홍성사에서 하였다. 앞으로는 홍성사 것이 정식적으로 유통될 것으로 보인다. 얼핏 본 바로는 두 출판사의 번역은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홍성사 판에서 신부님이 '하나님'이라고 자꾸 말하는게 조금 거슬리긴 하지만.) 이 유명하고 평도 많은 이 책을 어쩌자고 내가 평을 한다고 하였던가. 솔직히 말하면, 결심만 해놓고 아직도 이 책을 읽어보지 못해 이번 기회에 읽고 싶은 욕심이 컸다. 써놓고 보니 괜한 짓을 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분량의 제약이 심해서 쓰는데 애를 먹었고, 개신교 독자를 위한 서평이라는 점도 좀 작.. 2023. 5. 26.
종교에 관한 50가지 오해 존 모리얼 & 타마라 손, , 이종훈 옮김 (휴, 2015). 1. 볼 만한 종교학 책이 늘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보통 종교학을 가르치는 일은 종교에 관한 상식과 싸우는 데서 출발한다. 그래서 상식 차원의 질문에 대해 그 생각의 잘못된 전제를 지적하는 이 책의 형식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질문에 대한 해설도 수준이 높다. 2014년에 저술된 만큼 최신의 학문적 논의도 담겨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수준급 번역자를 만나 2015년에 번역되어 나왔으니 고마운 일이다. 2. 질문을 어떻게 던지는가가 이런 작업의 핵심이다. 이 질문들은 미국의 종교학 교실에서 형성된 것이다. 미국인을 위한 것이다 보니 우리 처지에선 불균형해 보이는 것이 있다. 유대교 내용이 많은 것에 비해 불교를 비롯한 동아시아 종교에 관한 질.. 2023. 5. 18.
미국이 불교에 던지는 질문들 Thomas A. Tweed, The American Encounter with Buddhism: Victorian Culture & the Limits of Dissent (Chapel Hill: The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2000[1992]). 미국의 불교 수용 과정을 다룬, 잘 정리된 책이다.(번역서가 나와 있지만 번역 상태가 좋지 않아 인용하기 힘들다.) 우리는 보통 서양 종교가 아시아에 어떻게 선교되었는가에 대해서 연구하지 그 반대의 경우는 많이 생각해보지 않는다. 미국에 불교가 어떻게 선교되었는가를 다루는 이 책은 그 반대 상황에 대해 여러가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1. 불교라는 새로운 사상에 19세기말 미국 사회가 어떻게 반응하였는가가 핵심 내용이다.. 2023. 5. 18.
책: 고아에서 일어난 힌두교와 가톨릭의 만남 지난 달에 책 한 권의 내용 정리하고 평가한 발표를 했다. 알렉산더 헨(Alexander Henn)의 『고아에서 일어난 힌두교와 가톨릭의 만남: 종교, 식민주의, 근대성』(2014)이라는 책. 아래 첨부한 PPT파일이 발표 내용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발표 내용을 짐작할 수 없기 때문에 최근에 쓴 글 중 관련된 내용을 그 아래 실었다. Alexander Henn,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2014). 이 책은 동서 종교가 만나는 혼합의 흥미로운 사례를 세밀하게 연구한 동시에, 혼합현상에 대해 이론적으로 주목할 만한 주장들을 제시하고 있다. 인도 고아지역은 포르투갈 항해사 바스쿠 다 가마가 진출한 1510년부터 꽤 최근인 1961년까지 여러 정치적 변화에도.. 2023. 5. 18.
윌슨의 진화한 뒤르케임주의 데이비드 윌슨, , 이철우 옮김 (아카넷, 2004). 이번 주에 에드워드 윌슨의 책을 봐야 하는데, 그 김에 책장에 꽂혀 있던 이 책부터 먼저 읽었다. 그런데 책을 다 볼 때쯤에야 깨닫게 되었다. 아, 이 윌슨이 그 윌슨이 아니구나... 이 분야에서 내 무식함을 절감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떠나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1. 진화론적인 성과를 바탕으로 종교이론은 어떻게 재설정될 수 있을까? 어떤 새로운 이론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기대는 솔직히 김이 빠진다. 그의 주장은 결국은 상식적인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김빠짐이 이 책의 미덕과 연결된다. 2. 데이비드 윌슨은 매우 성실하게 종교 연구들을 검토하였다는 점에서 종교를 논하는 다른 진화생물학자들보다 탁월하다고 생각된다. 검토.. 2023. 5. 17.
친절하고, 멋대로 쓰지 않고, 현재 연구의 추세도 놓치지 않는 개론서 이번에 강의 교재로 이 책을 읽었는데 전과는 꽤 다른 인상을 받았다. 이전 판본(일곱 이론)을 읽을 땐 새로운 정보를 찾는 대학원생의 입장이었고, 그냥 밋밋한 개론서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가르치는 입장에서 개정판(여덟 이론)을 번역본으로 읽은 것인데, 책의 진가를 느낄 수 있었다. 학자들의 이론체계 전반의 그림을 보이는 것, 요약하되 핵심이 빠지지 않도록 어떤 부분에서는 상세히 설명하는 것, 해당 학자의 언어에 함몰되지 않으면서 쉬운 언어로 전달하는 것. 나로서는 할 수 없는 그러한 일들을 이 책은 하고 있다. 예컨대 엘리아데의 방대한 사유를 주저서와 함께 수십 페이지 안에 이야기할 수 있을까? 막스 베버는 또 어떤가? 이런 면에서 이 책의 저자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다. 게다가 해당 학자와 관련된 최.. 2023. 5. 17.
인간 중심적 의료: 종교와 의미 종교를 통한 인간 이해가 의료 행위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 다음 글은 이런 문제에 대해 꽤 잘 정리되어 있다. 필요한 내용이라 일부를 번역하였다. 글에서는 다음 세 항목에 걸쳐 서술한다. (1)의미의 원천으로서의 종교 (2)가치의 원천이자 틀로서의 종교 (3)인간 다양성 평가에서 중요한 맥락으로서의 종교. 아래는 이 중에서 첫 번째 항목의 번역이다. “Toward a Person-centered Medicine: Religious Studies in the Medical Curriculum,” 70-9 (1995), 807-8. (1) 종교와 의미 병은 몸이 아니라 사람에게 닥친다. 그러므로 병의 의미는 생물학적으로biologically 뿐 아니라 일생사적으로biographically 이해되어야 한다... 2023. 5.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