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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_자료/이미지62

대박(大舶)의 꿈 앞의 글에서 초기 천주교와 정감록 전승의 관련성을 언급한 鈴木信昭의 이라는 논문 중에서 내 관심을 끌었던 작은 대목이 있다. 강이천은 중국으로부터 서학 자료를 많이 구해온 사람이고, 그래서 그의 집에는 서학책과 세계 지도가 있었던 모양이다. 강이천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은 김건순은 강이천 집에 있는 세계지도를 토대로 서양 선박에 대한 확신을 깊게 하였다고 한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강이천은 정감록적인 예언 전통을 천주교의 도래와 연결지어 생각하였는데, 그 중요한 매개가 된 것이 당시 서해와 남해에 출몰한 이양선(異樣船)이었다. 정감록 전승에서 진인이 오는 경로는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가장 많은 것은 진인이 서해나 남해의 어느 섬으로부터 군사를 이끌고 들어온다는 내용이었다. 강이천을 비롯한 신자들은 서해 쪽.. 2023. 6. 1.
개신교회의 약광고(1920년대) 1880년대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언론에서 가장 활발한 광고주가 되었던 것은 제약업자들이었다. 학질에 신효(神效)한 ‘보화단’, 콜레라를 쫓는 약을 광고한 ‘북해산인’의 광고, 종기치료제 ‘이명래고약’ 등의 약 광고들이 개화기 신문에 등장했다. ‘팔보단’을 파는 이응선의 화평당약방, 이경봉의 남대문 제생당약방이 주요 광고주였다. 최고의 전통을 자랑하는 ‘활명수’를 동화약방에서 내놓은 것은 1897년이었다.(동화약국의 활명수 정보) 부채표를 로고로 사용한 것은 1912년경부터였다. (마정미, (개마고원, 2004), 25-34 참조.) “한국광고 100년”이라는 글에도 구한말과 일제시대의 광고 자료들이 정리되어 있다. 다른 종교들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약은 기독교의 전통적인 은유의 하나이다. 예를 들어서 1.. 2023. 5. 29.
어디에나 있는 그 분 얼굴 우리에게 예수님은 어떤 모습일까? 신학적인 질문을 던지려는 게 아니다. 우리가 예수를 시각적으로 어떻게 상상하는가를 묻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흔한 답은 아마 다음 그림일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만나왔던 예수님 얼굴이다. 교회나 교회 단체들은 물론이고 기독교인 가정에서, 그리고 각종 기독교 용품이나 서적에 널리 이용되어온 도상이다. 도대체 이 그림은 누가 언제 그린 것일까? 별로 유명한 화가는 아니다. 이 그림은 미국 시카고에서 활동했던 워너 살만(Warner Sallman, 1892-1968)이 1941년 그린 (The Head of Christ)이다. 살만은 20세기 중엽에 활동한 일러스트 제작가로 이 작품이 인기를 끄는 바람에 비슷한 이미지의 작품을 더 만들었다. 이후에 제작된 라든지 .. 2023. 5. 29.
피터즈의 성화 피도수(皮道秀)라는 미국 선교사가 있었다. 미국 이름은 피터즈(Victor Willington Peters)이다. 1928년에 내한하여 지금의 철원 지역인 김화읍 교회에서 목회하다가, 1941년 일제가 선교사들을 모조리 추방할 때 한국을 떠난 선교사이다. 그렇고 그런 많은 미국 선교사들 중에서, 이 사람은 굉장히 특이한 선교사였다. 이 사람이 특이한 이유를 몇 가지 들어보도록 하겠다. 1. 그는 국내의 신비주의의 운동가들과 친분이 있었다. 김익두에 관한 글을 연재하기도 하였고, 특히 이용도와의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용도에 관한 이야기를 대표적인 선교잡지인 "Korea Mission Field"에 “시무언, 한국의 신비운동가”(Simeon, A Christian Mystic)라는 글을 장장 1.. 2023. 5. 27.
사트라피의 이슬람 만화 는 애니메이션 보다 깊숙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애니메이션에서 간단히 표현된 부분의 의미를 알게 된 부분도 많았다. 예를 들어 제목 ‘페르세폴리스’는 이란이라는 나라의 문화적 다양성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라는 저자의 의도를 서문에서 읽을 수 있었다. 만화에서 묘사된 이슬람의 모습들 중 인상적인 장면 몇 가지를 꼽아보았다. 1. 주인공 사트라피는 서구 문화와 교육의 영향을 많이 받은 편이고 현재는 프랑스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억압적인 이슬람 정권에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그럼에도 이슬람의 종교적 배경은 엄연히 존재한다. 그녀의 어릴 적 꿈은 ‘최후의 선지자’였고, 생애의 중요한 순간마다 하느님(알라)과의 대화는 이어진다. 정통적인 입장에서는 이슬람이라고 쳐주지도 않을 신앙이다. 선지자를 자임하는 것이나 이.. 2023. 5. 17.
미국 대중문화에서 묘사된 힌두교 Sheila J. Nayar, “Hinduism,” (Routledge, 2015), 440-59. 마무리는 아쉬웠지만 재미있는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된 글. 1. 단일한 힌두교는 없다. 하나의 푸라나는 다른 시대에 생겨나는 이야기의 불일치를 충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이야기의 다양한 판본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준다. 인도인들에게 궁극적인 것은 정통(正統)보다는 정행(正行)이다. 다르마(의무)를 강조한다는 것은 행위, 의무의 중요성을, 종교를 수행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2. 인도 전통에서 신과 신도 간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만남의 초점이 되는 것이 다르샨(darshan), 즉 신을 보고 신에 의해 보여지는 성스러운 행위이다. 그래서 신의 그림을 복제한 칼라 인쇄물(color lithogr.. 2023. 5. 13.
음식, 먹방, 종교 Benjamin E. Zeller, “Food and Cooking”, (Routledge, 2015). (음식-대중문화-종교에 대한 글이라 기대가 컸는데, 저자의 분석은 대부분의 사례에서 피상적이다.) 대중문화에서 음식이 기능하는 종교적 측면들은 다음과 같다: 의례, 쇼(spectacles), 텍스트, 새로운 식사 형태로의 개종과 배교, 공동체, 정체성과 도덕성의 감각 등. 글 전체를 통해 저자의 분석은 “유사종교이다”, "종교와 비슷하다", “종교로서 기능한다” 등이다. 그러고 나서 마지막에 던지는 질문은 “유사종교에서 '유사'라는 딱지는 필요한가?”이다. 하나마나한 질문. 내가 보기엔 여전히 '유사'종교라는 표현 이상의 분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 종교적 쇼로서의 먹방 중세 수난극(passion.. 2023. 5. 13.
미국 대중문화의 불교 James Mark Shields, “Buddhism”, (Routledge, 2015), 401-18. 미국인이 생각하는 불교가 우리 생각과 왜 어떻게 다른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이 많이 소개된 글 1944년에 출판된 의 표지에 불상은 일본 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등장했다. 2011년 영화에서 캡틴 아메리카는 불교를 실천하는 인물로 밝혀진다. 미국 대중문화에서 붓다는 특정한 문화적, 역사적, 정치적 맥락에 좌우되어 등장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불교는 여전히 선Zen이고 점차 티벳 불교와 테라바다 불교가 되어가고 있는데, 분명한 건 현대 미국 대중문화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는 ‘밈’이라는 사실이다.(불교의 문화적 밈으로는 자유, 자연스러움, 평화, 조화, 웰빙, 소박함, 그리고 저항, 불응, 정의를 꼽을.. 2023. 5. 12.
빠직, 세계종교를 말할 때 나는 소리 마르흐레이트 데 헤이르, 정지인 옮김, (원더박스, 2014). 이 책의 장점은 솔직하다는 데 있다. 보통 이런 책이면 객관적인 척 하며 지식들을 나열하는 게 보통인데, 이 책의 저자는 매우 자기성찰적이다. 자신이 기독교 문화에서 성장한 것을 처음부터 드러내고 있으며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경험한 종교에 대해 말한다. 저자는 부모 모두가 네덜란드 개혁교회 목사인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했고 신학도 공부했지만 현재는 적극적으로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상태이다. 부모는 교리를 강요하기 보다는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신에 대해 열린 사고를 하게 유도하였으니 한국의 모태신앙과는 분위기가 다르긴 하다. 이 책의 핵심은 “빠직”에 있다. 종교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종교에 대한 수많은 견해들을 거스르는 것이기도.. 2023. 5. 12.
사진을 거부하는 이유 "화식조는 촬영될(되지 않을) 것이다: 원시인, 일본인, 그리고 잡히지 않는 성스러움" Patricia Spyer, “The Cassowary Will (Not) Be Photographed,” (2001), 304-19. 의례의 한 장면에 대한 사진 촬영을 거부하는 인도네시아 아루 섬의 사람들 이야기. 저자는 원주민의 사진 거부에 대한 현대인의 신화를 정면으로 다루고 싶어 한다. 사진에 대한 태도에는 ‘근대의 언저리’에 위치한 사람들이 감수해야 했던 외부 세계의 권력의 개입에 대한 그들의 반응이 함축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1. 사진에 반응하는 두 인간 유형이 있다. “원시인”: 사진 찍히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열대 원주민들은 사진에 대한 거부, 공포, 무능력을 갖는다는 견해가 널리 유포되어 있다. 영혼.. 2023. 5. 12.
미국 개신교의 시각적 실천 미국 개신교 시각문화를 연구하는 데이비드 모건의 다음 글에 대한 발제. 그림이 많이 사용된 글인 만큼, 사용된 도상들을 위주로 요약하였다. David Morgan, “Protestant Visual Practice and American Mass Culture,” in Lynn Schofield Clark & Stewart M. Hoover (eds.),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2), 37-62. 제2장 개신교의 시각적 실천과 미국 대중문화(데이비드 모건) 종교 매체로서의 이미지 설교자의 자리에 놓인 인쇄기, 말씀을 읽고 있는 군중들이 새로운 시대 분위기를 보여준다. [그림1] 인쇄는 근대의 상징으로, ‘진보+영적 변화’라는 당대 레토릭의 좋은 예이다. .. 2023. 5. 12.
강남의 종교와 강북의 종교 서울의 종교인구 분포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자료. 기본 데이터는 서울서베이에서 제공되며, 2015년 자료를 정리한 내용이 (나남, 2017), 108-109에 나와 기록해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강남이 종교인의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는 것. 강남구와 은평구의 대비가 선명하다. 표본이 충분치 않아서 일수도 있지만, 대형교회들이 많은 강남권의 종교 인구 비율이 높은 것은 뚜렷한 추세이고, 서울 다른 지역과의 차이가 상당함은 부정할 수 없다. 또 은평, 도봉, 동대문, 관악과 같은 30%대의 종교인구를 가진 지역의 종교문화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더 확인하고 설명할 것이 많은 자료이다. 2023. 5. 2.
고통의 시각적 표현 고통의 시각적 표현의 역사를 고찰한 다음 논문에서 필요한 대목 둘을 정리함. Suzannah Biernoff, "Picturing Pain," In Anne Whitehead & Angela Woods (eds.), The Edinburgh Companion to the Critical Medical Humanities (Edinburgh: Edinburgh University Press, 2016), 163-185. 1. 은유, 문화, 고통 고통을 “행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은유를 사용하여 고통을 객체화하는 것, 즉 고통을 내리치는 망치, 칼, 벌겋게 달군 부지깽이, 옥죄는 바이스, 전기 쇼크, 동여맨 실, 개미 부대, 물어뜯는 짐승, 악마 무리 등으로 상상하는 것이다. 19세기의 월코트의 즉석 .. 2023. 5. 2.
초기 성공회 수녀들 사진 양화원에 묻힌 성공회 선교사들을 정리하면서 찾으면서 유난히 자료 찾기가 어려웠던 인물들이 웹스터, 노라, 로이스와 같은 수녀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들은 영국 성베드로수도회 소속으로 선교 초기부터 헌신했던 이들이다. 이번에 이들의 생활과 활동에 관련된 사진들을 찾을 수 있어서 기뻤다. 글로는 찾을 수 없었던 그들의 노고가 사진으로 전해져 온다. 또한 내 눈길을 끈 사진들로는 당시 한국 고아들의 모습. 잘 돌보아져서 그런지 비슷한 시기 조선 아이들 사진보다 훨씬 좋은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1. 성베드로 수녀회 단체 사진 수녀회에서 사용한 건물(서울) 2. 수녀들의 병원 활동 3. 한국 고아들 4. 수녀원과 고아원의 수녀들 바바라 수녀 웹스터 수녀(1895) 노라 수녀 노라 수녀 노라 수녀 노라 수녀 세실.. 2023. 4. 11.
터너 주교의 사진들 대한성공회 2대 주교였던 터너, 약력은 다음과 같다. 주교 재임 기간이 길지 않아 자료가 많지 않은데, 그에 관련된 사진들을 최대한 모아 보았다. 아서 버레스포드 터너(Arthur Beresford Tuner, 단아덕端雅德)는 1862년 영국 솔즈베리에서 태어나 1885년 옥스퍼드 키블(Keble)대학, 커데스돈(Cuddesdon) 신학교를 졸업하고 1888년 25세에 사제서품을 받았다. 1896년 33세에 한국에 입국해 서울과 인천을 오가며 서울 낙동성당과 인천 내동성당에서 사목 활동을 했다. 터너는 코프 주교의 신임을 받아 그를 보좌하는 역할을 했다. 1904년 코프 주교가 사임한 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주교 서품을 받고 1905년부터 1910년 서거할 때까지 제2대 주교로 활동하였다. 가장 잘 나.. 2023. 4.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