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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메모116

종교학 성공담? 요즘 내가 일하는 곳에서 인문학이 왜 필요한지를 ‘설득’해야 하는 일이 왕왕 있다. 그래서 이런 책도 찾아보게 된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정보는 많지만 건질 것은 많지 않은 책이었다. 정말 중요한 내용(인문학이 어떻게 그들의 성공에 기여했는가?)은 조금 언급된 내용으로 유추할 수밖에 없다. 저자의 인문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에 핵심에 대한 취재가 잘 되지 못한 탓이다. 게다가 종교학 사례가 책의 1장에 조금 나오는데 그친 아쉬움도 있다.(사실 내가 책을 산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는데). 종교학 사례는 다음과 같다. 1. 종교학 전공자 마이클은 프로그래머가 되었다. 그는 "당신이 알지 못하는 어떤 분야의 일을 전반적으로 준비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인문학을 전공해야 한다고 강력히 추천한다. 그는 2학년.. 2023. 6. 4.
감염된 언어, 감염된 종교 고종석의 를 읽으면서 내가 느낀 저항감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워낙 깔끔한 문체와 유려한 논리로 쓰인 책이기 때문에 그런 점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비슷한 전제를 갖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한국어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은 내가 종교 영역에서 혼합현상(syncretism)에 대한 논문을 썼을 때 이야기하고 싶었던 내용이기도 하다. 그땐 내게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을 남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무척이나 힘겨웠다. 당연한 이야기를 당연하게 풀어내는 것은 고도의 글쓰기 능력이다. 그때 이 분의 글을 읽었다면 흉내라도 낼 수 있었을 것을. 나는 종교학(사실상 신학)에서 ‘혼합주의’에 쏟아지는 욕설을 막아보려고 했다. 그래서 이름도 ‘혼합현상’으로 고쳐 짓기도 했다. 그러면서 언어학에서 크레올화(-化, cr.. 2023. 6. 3.
종교학 고전에 사용된 한국 자료들 한국종교라는 ‘자료’가 서양 종교학 이론에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찾고 있는 중. 종교학 고전들을 읽다가 만나게 되는 코리아. 그다지 중심적인 사례도 아니고 구석진 내용들이지만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전의 글, 한 종교학 책에서 한국에서 출처를 찾지 못했던 것을 얼마 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인용하면, 판데르 레이우의 (분도출판사: 1995) 79-80쪽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사실 원시인들의 세계는 영으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은 한국에서 아직 잘 볼 수 있다: "영들이 하늘 전역과 땅 한치까지 모두 지배하고 있다. 그들은 길가에서, 나무나 바위나 산 위에서, 골짜기와 강에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밤낮으로 영들은 사람들의 말을 엿듣고, 사람들 주위를 배회하며, 그들 머리 위로 날.. 2023. 6. 2.
긍정의 힘 조엘 오스틴 목사의 . 읽다 보니 술술 잘 읽혀 끝까지 읽었다. 이 책이 상징하는 유행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자기 확신에 근거한 노력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서사는 지금 세대도 갈망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장점은 진솔함과 일상적임이다. 설교 메시지는 미국 도시 중산층의 경험으로 번역된다. 이 분의 낙관적 세계관의 근거는 자신의 성공인데, 그래서 자기 교회의 성공담이 사례에 꽤 포함되어 있다. 일상적 사례 중에는 시덥지 않거나 찌질한 것도 있다. 그런 이야기가 권위 있는 목사의 입을 통해 신앙으로 인증된다는 것이 책이 갖는 매력일 것이다. 사례들을 인용하기는 힘들어 몇몇 대목만 메모해둔다. 번영신학을 대표하는 책답게, 가난은 하느님의 방식이 아니라고 선언한다. 이런 생각의 근거는 무엇일까? 그저 미.. 2023. 5. 31.
채무자의 수호성인, 실업자의 수호성인 라틴 아메리카 현실에 관한 풍자가 가득한 책을 읽다가 경제 현실이 빚어낸 종교현상의 사례를 보게 되어 메모해둔다. 읽은 책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르네상스, 1998)이다. 브라질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성인은 빚진 자들의 수호성인인 산타 에두비제스(Santa Eduviges)다. 순례 때에는 수천 명의 빚진 자들이 절망에 허덕거리며 그녀의 제단을 찾아와 빚쟁이들이 텔레비전이나 자동차, 집을 가져가지 않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때로는 에두비제스 성인이 기적을 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채권국이 이미 정부를 가져가버린 나라[IMF 선고를 받은 나라를 말함]들을 그녀가 무슨 방법으로 도울 수 있겠는가?(169-70) 에두비제스 성인은 우리나라에서 성녀 헤드비제스/헤드비히(영어로는 St. Hedwig)라고 불린.. 2023. 5. 30.
징조, 신호, 예감 어느 선생님께서는 내가 전에 큰 사고를 당했을 때의 정황을 가끔 물어보신다. 그런 큰 일이 생긴다는 것은 나를 둘러싼 삶의 보호막이 붕괴되었다는 것인데, 자신의 삶의 균형이 무너졌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느냐고 물어보신다. 그런 나의 무감각은 큰 문제가 있는 거라고 하시면서. 처음에는 무슨 점쟁이같은 말씀이냐고 웃어넘겼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 삶의 큰 사건이 닥칠 때 내게 신호를 보내오는 체계가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쉽게 넘길 이야기가 아니라는 감이 온다. 뚜렷한 근거를 찾은 것은 아니나 삶에는 내게 무언가를 이야기해주는 징조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된다. 무감각은 나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지만, 이제는 감각을 계발해야겠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발터 벤야민은 의 “두 번째 .. 2023. 5. 22.
자랑 ... 그 과정에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애리조나 주립대학교에서 기독교 교회사를 공부하고 있는 房家는 번역원고의 앞부분을 꼼꼼히 읽고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기독교 교회 관련 정보를 제공해 주었고, 적절한 기독교 교회 용어 등을 알려주어 큰 도움을 주었다... (이종경, “옮긴이 후기,” 피터 브라운, (새물결, 2004), 512-513쪽.) 올해 귀국해서 처음 책방에 들렀을 때, 이 출판되어 나와있는게 첫 눈에 띄었다. 작년 12월에 출판되었으니 아직 따끈따끈한 책이다. (책을 사지는 않았지만) 책을 보니 마치 선물을 받은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이 책이 나왔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몇 년 전에 좀 도와드린답시고 들쑤셔놓고 간 일이었.. 2023. 5. 22.
이름 없는 대상 10·29 참사 이후 정부가 주도한 추모에서 논란이 되는 것은 이름 없는 대상을 추모할 수 있느냐이다. 직감적으로도 구체적인지 않은 숫자만 앞에 놓인, 그것도 사망자라는 용어 앞에서 우리의 슬픔은 제대로 표현되기는 힘들 것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는 그 대답은 명확하다. 위패 없는 제사는 불가능하고, 이름 없는 존재가 제대로 된 의례적 대상이 될 수 없다. 한 진오귀굿 이야기에서 이름 없음의 의미(혹은 무의미)가 무엇인지 드러난다. 아래는 김동규 선생의 발표에서 소개받은 사례를 약간 수정하여 소개하는 것이다. 사례 속의 인간관계는 복잡하다. 내가 주목한 것은 마지막에 예기치 않게 나타난 여인의 존재이다. 그의 이름을 알 수 없기에, 그는 메인 무대인 ‘본과장’에서 달래질 수 없었고, ‘뒷전’에서 임시적으로.. 2023. 5. 19.
디지털 세상의 가톨릭 전례 필립 테레사 베르거, , 안선희 옮김 (CLC, 2020). 디지털 예배에 대한 최신 논의를 알기 위해, 정보 습득의 차원에서 집어든 책인데, 이론적으로도 깊이 있게 정리되어 있어 많은 공부가 되었다. 저자는 가톨릭 전례학자로서 디지털로 매개되는 가톨릭 미사가 가능하다는 낙관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마치 코로나 이후의 일을 예측이라도 한 듯한 통찰력 있는 견해이다. 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의 가톨릭이 ‘모인 회중에 대해 과도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평가하면서, 이제 거기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최근(책이 쓰여진 2018년 이전) 프란체스코 교황의 행보가 그의 낙관론의 근거가 된다. 그리고 그가 예측한 대로 2020년 현재 성사의 효력이 디지털로 매개될 수 있다는 입장이 되돌이킬 수.. 2023. 5. 18.
원시문화로 배운 종교학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 , 유기쁨 옮김 (아카넷, 2018). 온갖 사례로 가득한 이 두꺼운 책을 읽으며 행복했다. 이 변태 같은 감정은 무엇일까? 유럽과 세계 각지로부터 수없이 쏟아지는 자료들, 자료의 엄밀성이 확인되지 않은 무방비 상태에서 자료들에 압도당할 때면 생각의 길을 잃고 무엇을 읽어내야 할지 멍해지기 마련이다. (다시 읽으면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를 읽을 때는 확실히 그랬다. 그런데 타일러의 글은 자료의 홍수 속에서도 신기하게도 종교학사를 장식하는 주요 주제들이 도드라져 보이는 신비한 경험을 했다. 특히 애니미즘 서술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번역판의 2권을 읽을 때 황홀감이 극에 달했다. 종교가 없는 민족이 있다는 보고를 논박하면서 종교의 기본적인 정의를 제안하는 애니미즘 이론의 첫 부분은 전.. 2023. 5. 18.
예루살렘에 중첩된 성스러운 폭력 는 종교와 폭력의 근원적 관계라는 저자 필생에 걸친 물음이 낳은 묵직한 책이다. 희생제의적 폭력이 종교의 근저에 놓여 있다는 르네 지라르의 종교 이론이 종교사를 이해하는데 이렇게 절실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 책을 통해 납득될 수 있었다. 내 생각으로는 (기독교 변증으로 가버리는) 원래의 이론가 지라르보다 오히려 저자 제임스 캐럴의 입장이 더 깊이가 있다고 느껴질 정도이다.저자는 성서 전체가 폭력의 문제와 씨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전장에서 태어나다시피 한 이슬람의 가르침에서 폭력을 억제하려는 최대한의 노력을 읽어낸다. 이 문제로 평생을 고민한 깊이가 담긴 통찰이다. 꽤 두꺼운 책이고,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긴 역사를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을 아우르며 다루기 때문에 범위가 넓지만, 저자의 입장.. 2023. 5. 18.
2011년 종교 분야 서적들 중에서 올해 나온 종교 분야 서적들을 일별할 일이 있어 이런 저런 책들을 살펴보았는데, 이 작업을 하면서 배운 점들이 꽤 많았다. 난 원래 종교 분야 책들은 내용이 뻔할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새로운 시도들과 내가 알지 못했던 고수들의 훌륭한 작품들이 왕성하게 생산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기회가 되어 구경한 책들에 대한 생각을 간단히 남겨 놓는다.(나는 종교 분야 책 중에서도 주로 기독교 관련 서적들 일부를 살펴보았다.) 우선 주의할 점을 먼저 말하면, 나는 이 책들을 일독하지 않았다. 그저 조금씩 만져보고 감각적으로 느낀 점을 말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밑에 쓴 것은 책에 대한 '평'이 아니라 '기대'일 뿐이다. 내가 괜찮다고 생각한 책들이기는 하지만, .. 2023. 5. 17.
괴테의 이파리, 벤야민과 엘리아데의 현상학 조너선 스미스가 엘리아데의 "종교형태론"에 붙이는 주석에서 괴테의 식물 형태론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을 때 좀 황당했다.(의 2장을 참고할 것) 처음 듣는 괴테의 식물학 책도 신기했거니와 엘리아데가 직접 언급도 하지 않은 책을 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이론으로 제시한 것도 낯설었다. 그런데 괴테의 이파리 이야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다른 사상가를 만나게 되면서 그 이야기가 조금 덜 낯설게 되었다. 그 사상가는 발터 벤야민이다. 그가 받아들인 괴테를 통해서 엘리아데가 받아들인 괴테를 좀 더 이해할 기회를 얻었다. 더 나아가 ‘현상학’이라는 전통에 대해서도 전보다 이해하게 되었다. 엘리아데(조너선 스미스가 이해한 엘리아데를 말함. 이하 마찬가지)와 매우 비슷하게도, 벤야민에게 괴테가 영향을 미친 부분.. 2023. 5. 17.
도구상자 은유 6장에는 도구상자(toolbox)라는, 방법론에 대한 은유가 나온다. 내 주변에서 여러번 회자되었던 은유이고, 그게 좋니 나쁘니, 정확하게 말하면 누가 그걸 좋게 보았느니 아니니 말들이 좀 있었던 개념이라서 그 부분을 좀 주의 깊게 읽어보았고 다른 글들도 좀 찾아보았다. 내 입장은 좀 냉소적이다. 그런 논쟁은 하수들의 슬픈 이야기라고. 바둑에선 고수의 기풍(碁風)을 말한다. 조훈현은 발빠르고 이창호는 실리적이면서도 두텁다. 박영훈은 타개에 능하며 최철한은 축, 장문 안 되면 끊고 싸우고 보는 힘바둑이다. 그러나 하수가 고수의 기풍을 안다고 생각하고 무턱대고 따라했다가는 낭패를 본다. 기풍은 바둑이 일정한 경지 이상이 되었을 때 구분가능한 미세한 차이다. 기본이 갖추어진 이후에야 의미를 갖는 언어이다. 하.. 2023. 5. 16.
신화, 집단적 창작물 지난번 글의 연장선상에서 혼합현상에 대한 설명에는 창조적 개인과 비창조적인 대중의 구분이 남아있고, 이를 넘어서 대중의 창조성을 어떻게 설명할까 하는 여러 생각을 해보는 중인데, 에 실린 웬디 도니거의 논문 "Post-modernism and -colonial -structural Comparison"에 눈길이 가는 부분이 있어 옮겨놓는다. 가고일님이 지적한 개미떼가 모여 하나의 ‘초지성’을 만들어 다른 상대와 대화를 한다는 이야기도 귀에 들어오고, 대세 놀이니 드라군 놀이니 하면서 인터넷 공간에서 성원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 개인적 차원과는 다른 집단적인 결과물이 생성되는 과정에도 관심을 갖는 중인데, 웬디 도니거는 “신화는 집단적 창작”이라는 기본적인 사실을 상기시켜주면서 이 문제에 대해 값진 통찰을.. 2023. 5.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