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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메모116

히포크라테스 학파의 종교적 발언 히포크라테스 학파는 주술적 치료를 거부하고 합리적 의학을 제창하였지만, 그들에게 현대 과학의 태도를 지나치게 뒤집어씌우면 오해가 생기는 부분이 있다. 그들은 합리성을 추구하였지만 반종교적 태도를 취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이 내세운 것은 새로운 종교적 태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래는 전집에 나온 인상적인 내용으로, 다음 책에서 재인용한 것이다. 반덕진, (휴머니스트, 2005). 유명한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시작은 이렇다. 그들이 신을 거명한 것은 면피용이거나 관습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진심이 담겼다고 생각된다. 그들은 ‘아스클레피오스 신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을 지닌 이들이다. “나는 아폴론 신, 아스클레피오스, 건강의 여신 히기에이아, 파나케이아, 그리고 모든 남신과 여신을 두고 그들을 나의 증인으.. 2023. 5. 2.
종교적/세속적 물질 경험 현대인과 종교적 인간의 물질 경험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엘리아데는 재치 있게 ‘communion’(교감/성만찬)을 사용한다. 현대인들은 물질을 다루면서 성스러움을 경험할 수 없게 되었다. 기껏해야 미적인 경험을 얻는 정도이다. 그는 ‘자연 현상’으로만 물질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원시의 종교 체험과 현대의 ‘자연 현상’ 경험을 갈라놓는 거리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빵과 포도주라는 성만찬의 요소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종류의 ‘물질’로 확장되는 교감(communion)을 상상하기만 해도 충분하다. (미르체아 엘리아데, , 이재실 옮김(문학동네, 1999), 146-147, 번역 수정) 엘리아데의 패기 넘치는 지적. 그는 현대인과 종교인의 단절을 강조하는 입장인데, 이 부분에서는 살짝 (변형된) 연속성을 주장한다.. 2023. 5. 2.
새로운 죽음 전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죽음에 대한 해석의 전권을 위임하는 일은 당연했다. 중세에는 이러한 죽음의 예술(ars moriendi)을 담당하는 주체가 영적 대리인, 즉 목사나 신부였으며, 현대에는 의사가 전권을 위임받아 ‘백의白衣를 두른 반신半信’으로까지 일컬어지는 추세이다.……성직자들이 죽음의 순간이 도래했다고 확신하였을 때 그 사람에게 영원한 안식을 부여한다는 의미로 성스러운 ‘마지막 향유’를 이마에 떨어뜨리는 행위는 사망 직전 단 한 번 이루어졌고, 이는 수백년 간 절대불변의 임종 예식 절차로 인정받아왔다. 그러나 오늘날 천주교뿐만 아니라 개신교에서도 ‘마지막 향유’는 더이상 언급되지 않는다. ……어찌 되었든 의사가 가지는 전지적 후견자로서의 태도는 특히 임종과 관련해서 볼 때 근본적.. 2023. 5. 2.
조선 사찰과 기생 한 일본인이 1932에 쓴 조선 기생관광에 대한 책에서 사찰 이야기가 나온다. 사찰이 유흥의 장소로 사용된 것은 조선 시대부터 있었던 일인데, 일제강점기에는 기생 관광과 관련된 곳들도 있었던 것 같다. 통상 기생과는 세 곳에서 놀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조선의 사찰이다. 불사와 주색은 꽤 인연이 먼 구색이나 사실이므로 잘잘못을 가릴 필요가 없다. “산 있고 절 있고 꽃 있고 한국 기생 나오니 우토”라는 시구가 있다. …… 경성 부근에는 왕십리나 청량리 방면에 몇몇 사원과 암자가 있으며 또 한강의 남쪽 강변에서 산으로 들어간 곳에도 온천 숙박시설과 연락을 취하며 손님을 맞는 절이 있다. 하지만 가장 유명한 곳은 뭐니 뭐니 해도 청량리로 이어진 간선 도로에서 좌측으로 들어간 〇〇사일 것이다. 절을 중심으로.. 2023. 5. 2.
슈바이처의 선교 경험 슈바이처의 선교 회고록에서 인상 깊은 몇 구절을 발췌. 원서를 확인할 수 없어 대부분 번역서를 따름. 2016년 출판된 책이지만 사실상 1976년 번역이어서 옛 어투가 정겹다. ‘토인’(土人)이 ‘native’의 번역인 것은 이번에 새삼스럽게 알게 된 사실이다. ‘자연아’(自然兒)는 무엇을 번역한 것인지 모르겠다. 알베르트 슈바이처, , 송영택 옮김 (문예출판사, 2016). 1. 주술의(呪術醫)로 불린 슈바이처 토인들 사이에서 나의 이름은 ‘오강가’라 불린다. 갈로아 말로 ‘주술사’라는 뜻이다. 흑인의 의술자는 모두 동시에 주술사가 되므로, 의사에 해당하는 다른 말이 없는 것이다. 나의 환자들은 병을 고치는 자는 또한 병을 멀리서 일으키는 힘도 가지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의사가 좋은 사람이.. 2023. 5. 1.
회복 의례의 부재 회복한 사람에겐 의례를 치를 자격이 있다. 여러 원시 부족에게는 재진입 의례가 있었다. 낙인이 찍힌 사람을 정화하여 다시 사회로 받아들일 때 치르는 의례다. 이 의례는 부활을 뜻한다. 의례 후에 삶은 새로이 시작된다. 내가 겪은 두 번의 심각한 질병은 병원에서 받은 검사나 처치로 마무리되었고, 이런 결말은 의례의 가치를 지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현대의 대사제라고 할 수 있는 의사들은 한낱 의료 기술자로만 남기를 택했다. 자신들이 개입함으로써 몸의 상징적인 가치가 변하지만 의사들은 이런 자기 힘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리하여 환자나 의사 모두 질병에서 영적인 차원의 경험을 놓친다. 의례에 뒤따르는 명료한 자기 인식을 의학의 세계에서는 찾기 힘들다. 그리하여 아팠던 사람이 다시 일상의 삶으로 재.. 2023. 5. 1.
자살테러와 희생 최근에 번역된 책에서 탈랄 아사드는 이슬람 관련 자살테러를 논하는 종교학자, 구체적으로 자살테러에 ‘희생’을 적용하는 이반 스트렌스키의 설명에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 이슬람 전통에서 짐승의 도축을 수반하는 희생제의(다비하)를 행하는 경우는, 신의 명령에 응할 때, 신에게 감사를 표할 때, 특정한 잘못을 뉘우칠 때, 이렇게 세 가지 경우다. 이 중에 자살테러자에 해당되는 것은 없다. 희생제의를 통해 뭔가가 ‘성스러워진다’라는 스트렌스키의 생각은 보기보다 막연하다.……희생제의를 통해 ‘성스러워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희생제물을 받는 신, 희생제물을 바치는 인간, 희생제물, 셋 다 성스러워지지 않기는 마찬가지다.……희생제의가 희생제물을 바치는 사람을 성스러운 존재로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탈랄 아사드, (창.. 2023. 5. 1.
침묵하는 하느님에 대한 냉소, 하지만 그를 버리지 않음 며칠 전 작고하신 엘리 위젤의 에서 그의 신학적인 언급들을 옮겨놓는다. 나는 이 소설이 ‘고통을 통해 신과 만나는’ 친교의 신정론의 사례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읽어보니 다른 맥락으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대에 매달려 있는 하느님”은 그 분이 인간의 고통 한 가운데 계신다는 감동적인 스토리는 아니었다. 그것은 이러한 고통의 순간에 침묵하시는 그 분에 대한 냉소에 더 가까운 표현이었다. 이 소설은 15세 소년의 아우슈비츠 경험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신과의 역설적인 조우라는 고차원적인 신학보다는, 이런 절대자라면 분연히 맞설 수도 있다는 치기가 더 느껴지는 글이다. 그가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쪽을 택하지 않은 것이 중요하다. 그는 여전히 유대 전통 안에서 사유하였고 그렇기에 하느님에게 화낼 여.. 2023. 5. 1.
메모, "무당, 여성, 신령들" 로렐 켄달, , 김성례&김동규 옮김 (일조각, 2016). 1970년대 한국 무교의 흥미로운 모습들 중에서 몇 개만 옮겨 놓는다. 1. 펌프와 기우제 가뭄이 들었을 때는 각 가정에서 돈과 곡식을 추렴해 만신을 고용하고 도당 나무 옆에 있는 용왕의 우물가에서 굿을 했다.……1977년 여름 가뭄이 찾아왔을 때 노인들은 현재 마을에 펌프 시설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굿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94) 2. 마을 주민들의 열광적인 ‘미신 활동’은 새마을운동의 지도자들과 그 지역 교회 목사들에게는 끊임없는 불만거리이다.……이곳에서 텔레비전 세트는 나무 동법을 옮겨와서 축귀의례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휴대용 녹음기는 무당이 긴 무가를 익히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105) 3. 논문 준비의 대가 향로 .. 2023. 5. 1.
함께 살았던 세월 이언 아몬드, 최파일 옮김, (미지북스, 2010). 따라가기 벅찬 복잡한 사연들이지만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저자의 필치는 참 매력적이다. 이런 일(무슬림과 기독교인이 한데 뭉쳐 싸우는 일)을 가능케 한 무수한 변수들이 존재하지만, 저자가 강조하는 소박하지만 힘 있는 쟁점은 그저 “함께 있음”이 그런 일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오랜 기간 이웃으로 함께 지내고 같은 언어와 문화를 지닌다는 것이 종교를 넘어 연대하는 힘이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터키의 한 민가에 남은 그리스인의 흔적을 보며 “무슬림과 기독교가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마을의 소문을 주고받으며 같은 신문을 읽고 같은 커피하우스에서 같은 악기로 연주한 같은 가락에 맞춰 함께 춤추던 시절에 대한 증언”(322)을 읽어낸다. 그는 이러한 증언을 .. 2023. 5. 1.
죽음을 음식으로 맞선 유교 죽음을 음식으로 맞선 문화가 있다. 유교는 초월의 세계, 영혼들만의 세계를 꿈꾸지 않는다. 그리하여 현세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세적이라는 말이 합리적이란 말로 대체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종교적이란 말과 대립각을 이룰 필요도 없다. 오히려 유교의 현세성을 지극히 일상적인 삶의 형식을 의례화하여 비일상적인 것을 극복하는 문화 양식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일상성의 의례화가 가장 두드러진 것으로 유교 상례에 나타난 음식의 공궤(供饋)를 들 수 있다. 어느 사회와 마찬가지로 유교 사회에서도 죽음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이별로 현실화되기 때문에 애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 슬픔의 시간 속에서도 유교 상례는 망자에 대한 음식의 제공을 중단하지 않고, 이를 통해 산자와 죽은 자 사이에 .. 2023. 5. 1.
20세기 전반기의 페티시들 판데르레이우는 페티시즘을 설명하면서 어김없이 현대인들을 연결시켜서 이야기한다. ‘원시종교’가 타자의 신앙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기본적인 요소라는 그의 입장은 이러한 식의 설명에서 잘 나타난다. 언급되는 자료들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선교전시회 사례는 기묘하다. 선교사들이 수집해온 페티시는 분명 선교 전리품의 의미이자 미신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것일 터이다. 그러나 그것이 의도치 못한 종교성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었던 듯 하다. 구체적인 자료는 확인해보지 못했다. 심지어 현대인들조차도 자신을 보호하는 힘을 가까이할 필요를 느낀다. 독일군이 파리를 폭격했을 때 네넷트Nénette와 랭땡땡Rintintin이란 유리구슬로 만든 두 종류의 인형이 잘 팔렸다고 한다. 우리 비행가들은 곰 인형을, 우.. 2023. 5. 1.
빅데이터의 부족部族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유력한 방법은 ‘분류’하는 것이다. 무질서한 자료를 연관된 사물을 통해서 분류하는 지적인 작업은 토테미즘을 연상시킨다. 미국의 빅데이터 전문가들이 자신의 분류를 일컫는 말로 ‘부족tribe’을 사용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블로그를 분석하는) 코샨스키의 팀은 블로거를 여러 개의 그룹 또는 ‘부족’으로 분류하기 시작한다. 코샨스키의 머릿속으로부터는 거의 끝없는 부족 분류표가 나온다. 도리토스 먹는 부족, 바이커스-포-오바마Bikers for Obama, 미니쿠퍼 애호가 등 블로거들을 부족으로 분류하고 나면 팀은 부족과 제품과의 상호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블로거를 분석하여 코샨스키는 게토레이족에 운동선수나 피트니스 광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술을 많이 마시는 대학.. 2023. 5. 1.
사진에 관하여 사진에 대한 글을 쓰고 나서 이 책을 읽으니 문장들이 머리에 쏙쏙 박힌다. 사진들을 보면서 희미하게 떠올랐던 생각들이 간결하고 정확한 언어로 잘 정리되어 있다. 사진에 관한 글에서 인용하고 싶은, 하지만 약간은 소화를 거쳐야 할 문장들을 기록해 놓는다. 수전 손택, 이재원 옮김, (이후, 2005)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새로 가르쳐준 사진은 무엇이 볼 만한 가치가 있는가, 우리에게 관찰할 권리가 있는 것은 무엇인가 등을 둘러싼 관념 자체도 바꿔버렸고, 더 넓혀줬다.”(17) “사진을 수집한다는 것은 세계를 수집한다는 것이다.”(18)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사진에 찍힌 대상을 전유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과 세계가 특정한 관계를 맺도록 만드는 것인데, 이 과정을 통해서 마치 자기가 어떤 지식을.. 2023. 5. 1.
"감사합니다, 한국" 이케다 다이사쿠, (조선뉴스프레스, 2012). 한국불교계에서는 SGI에 ‘왜색불교’라는 레테르를 붙이는 경우도 있지만, 정작 이 단체가 갖고 있는 한국에 대한 태도는 일본 종교로서는 독특한 것 같다. 이케다 회장의 이 책에서 한국에 대한 애정은 잘 드러난다.(아직 다른 책이나 글은 보지 못했음) 한 구절을 인용하면 이렇다. “한국은 일본에게 ‘문화대은’의 ‘형님의 나라’입니다. 또 ‘스승의 나라’입니다. 일본은 그 대은을 짓밟고 귀국을 침략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영원히 귀국에 속죄할 것입니다.”(54) 이케다 회장의 이런 발언은 립서비스를 넘어서는 것으로 느껴진다. 적어도 구체적인 사례들을 언급하며 한국과의 우호를 도모하는 그의 성실성만은 틀림없이 드러난다. 홋카이도와 울릉도 간의 행사에서 울릉도의 .. 2023. 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