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작고하신 엘리 위젤의 <나이트>에서 그의 신학적인 언급들을 옮겨놓는다. 나는 이 소설이 ‘고통을 통해 신과 만나는’ 친교의 신정론의 사례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읽어보니 다른 맥락으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대에 매달려 있는 하느님”은 그 분이 인간의 고통 한 가운데 계신다는 감동적인 스토리는 아니었다. 그것은 이러한 고통의 순간에 침묵하시는 그 분에 대한 냉소에 더 가까운 표현이었다. 이 소설은 15세 소년의 아우슈비츠 경험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신과의 역설적인 조우라는 고차원적인 신학보다는, 이런 절대자라면 분연히 맞설 수도 있다는 치기가 더 느껴지는 글이다. 그가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쪽을 택하지 않은 것이 중요하다. 그는 여전히 유대 전통 안에서 사유하였고 그렇기에 하느님에게 화낼 여력이라도 가질 수 있었고 새로운 신학적 성찰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었다.
엘리 위젤, <나이트>, 김하락 옮김 (예담, 2007).
1. 트럭에 싣고 온 어린아이들을 불구덩이에 넣는 장면을 본 후
그때 처음으로 분노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왜 '그'의 이름을 숭앙해야 하는가? 전능한 존재, 지엄하고 영원한 우주의 지배자는 침묵을 택했다. '그'에게 고마워해야 할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76)
그 연기를 결코 잊지 않으리라. 몸뚱이가 고요한 하늘 아래 연기로 화해버린 어린이들의 얼굴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 내 믿음을 영원히 불살라버린 그 불꽃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 살고자 하는 마음을 영원히 앗아간 밤의 침묵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 하느님과 내 영혼을 죽이고 내 꿈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린 그 순간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 하느님만큼 오래 산다 하더라도 이것들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77)
2.
하느님, '그'의 결코 알 수 없는 태도, 유대 민족의 죄, 앞으로 있을 구원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기도를 하지 않았다. 내 생각은 욥과 같았다. 하느님의 존재를 부인하지는 않았으나 하느님이 전적으로 의롭다는 말에는 수긍할 수 없었다.(93)
3.
"자비로운 하느님은 어디에 있는가? 하느님은 어디에 있는가"
누군가가 내 뒤에서 물었다.... 우리는 희생자 앞을 지났다. 두 사람은 이미 숨이 끊어졌다. ... 그러나 세번째 밧줄은 아직 움직이고 있었다. 너무 가벼운 그 아이는 아직도 숨을 쉬고 있었다. ... 내 뒤에서 아까 그 사람이 다시 묻는 소리가 들렸다. "하느님은 어디에 있는가?" 그때 내 안에서 어떤 목소리가 대답하는 것을 들었다.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고? 여기 교수대에 매달려 있지." 그날 저녁 수프는 시체 맛이 났다. (123)
4.
(로시 하샤나 모임에서)
하느님은 무엇을 하는 분인가? 나는 분노에 차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당신은 믿음, 분노, 저항을 증언하기 위해 모여든 이 상처받은 무리와 어떻게 맞서렵니까? 비겁한 사람들, 썩어 없어질 사람들, 불쌍한 사람들 앞에서 우주의 주재자인 당신의 위대함은 무엇을 의미합니까?(125-26)
지난날에는 로시 하샤나가 내 삶을 지배했다. 내가 지은 죄가 하느님을 슬프게 했다는 것을 알기에 용서를 빌었다. 그 시절에는 세상의 구원이 내 행동 하나하나에, 내 기도 하나하나에 달려 있다고 온전히 믿었다.
그러나 이제는 간구하지 않았다. 슬퍼하지도 않았다. 그러기는 커녕 내가 매우 강해진 것을 느꼈다. 나는 고발자였고, 고발당한 쪽은 하느님이었다. 나는 두 눈을 뜬 채 혼자 있었다. 하느님도 없고 사람도 없는 이 세상에 정말 나 혼자 있었다. 사랑도 없고, 자비도 없었다. 나는 잿더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내 삶을 오랫동안 지내한 전능자보다 강하다고 느꼈다. 기도하러 모인 사람들 톰에서 내가 관찰자,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식은 카디시 암송으로 끝났다.(1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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