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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메모

함께 살았던 세월

by 방가房家 2023. 5. 1.

이언 아몬드, 최파일 옮김, <십자가 초승달 동맹>(미지북스, 2010).
따라가기 벅찬 복잡한 사연들이지만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저자의 필치는 참 매력적이다. 이런 일(무슬림과 기독교인이 한데 뭉쳐 싸우는 일)을 가능케 한 무수한 변수들이 존재하지만, 저자가 강조하는 소박하지만 힘 있는 쟁점은 그저 “함께 있음”이 그런 일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오랜 기간 이웃으로 함께 지내고 같은 언어와 문화를 지닌다는 것이 종교를 넘어 연대하는 힘이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터키의 한 민가에 남은 그리스인의 흔적을 보며 “무슬림과 기독교가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마을의 소문을 주고받으며 같은 신문을 읽고 같은 커피하우스에서 같은 악기로 연주한 같은 가락에 맞춰 함께 춤추던 시절에 대한 증언”(322)을 읽어낸다. 그는 이러한 증언을 무수한 사료들에서도 찾아낸다. 책에서 여러 번 등장하는 이 주제를 마지막에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이웃에 대한 비유가 진솔하다.
 
수세기에 걸쳐 무슬림과 기독교가 공유한 가치와 그들이 서로 어울린 지역 공동체는 내 연구의 드러나지 않는 바탕이 되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에게는 우리 자신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다른 공동체의 사람들과 결국 함께 하기로 마음을 먹기에 앞서 도달해야 하는 일정한 필요, 다시 말해 일종의 문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요소들이 그러한 필요의 문턱을 높이거나 낮출 수 있다. 우리는 옆집에서 사다리를 빌릴 만큼 친하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 집에 불이 난다면 이웃의 도움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많은 경우에 임박한 침략이나 공격이 위협은 그러한 위협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서로 공감하지 않았을 집단들을 하나로 뭉쳐주었다.(3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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