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렐 켄달, <<무당, 여성, 신령들>>, 김성례&김동규 옮김 (일조각, 2016).
1970년대 한국 무교의 흥미로운 모습들 중에서 몇 개만 옮겨 놓는다.
1. 펌프와 기우제
가뭄이 들었을 때는 각 가정에서 돈과 곡식을 추렴해 만신을 고용하고 도당 나무 옆에 있는 용왕의 우물가에서 굿을 했다.……1977년 여름 가뭄이 찾아왔을 때 노인들은 현재 마을에 펌프 시설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굿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94)
2.
마을 주민들의 열광적인 ‘미신 활동’은 새마을운동의 지도자들과 그 지역 교회 목사들에게는 끊임없는 불만거리이다.……이곳에서 텔레비전 세트는 나무 동법을 옮겨와서 축귀의례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휴대용 녹음기는 무당이 긴 무가를 익히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105)
3. 논문 준비의 대가
향로 한와 옥수 그릇 하나에는 내[로렐 켄달] 이름도 새겨져 있다. 용수 엄마는 내가 불사와 산신 덕분으로 연구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신령들이 나에게 선물을 요구하고 있다고 약간 난처해 하며 이야기해주었다.(116)
4.
용수 엄마[무당]의 아들 용수는 의정부에 있는 기독교 계통의 사립학교에 다닌다.……신당에 모신 신령들은 용수가 매일 기독교와 접촉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으며, 이 때문에 용수는 학교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용수는 그저 집으로 달려오고만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한다.……[용수 엄마] “부디 이해해주시고 용서해 주세요. 용수는 교육을 받아야지요. 그 아이가 졸업할 때까지만 거기 다니도록 해주세요.”(119)
5. 텔레비전이 일으킨 문제
용수 엄마는 글자가 적힌 종이를 텔레비전에 푸닥거리 부적으로 붙였다. 변씨 부부는 최근에 텔레비전을 구입했는데, 손 있는 날에 집에 들여왔다. 텔레비전과 함께 목신동법이 집에 들어왔으며, 이 때문에 변씨의 병이 악화되는 중이었다.(169)
6. 우리나라에 산후조리원이라는 독특한 문화가 존재하는 것은 이러한 종교문화의 변형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산모와 아기는 출산 후 산실에서 3주간 격리되는 것이 이상적이다. 가족은 부정이 삼신할머니의 기분을 상하지 않도록 산실과 더 나아가 집 전체의 의례적 정결함을 지킨다. 출산을 돕는 사람은 의례적으로 정결해야 하며, 월경 중이거나 상중이면 안 된다. 가정의 구성원들만 산후조리 기간 중의 산실에 들어간다.(220)
7. 몇 년 전이라면 이해하지 못했을 내용
적어도 출산 후 사흘 동안 시어머니는 산모의 베게 옆에 쌀밥과 미역국을 차려 놓고 “젖이 잘 나오도록” 삼신할머니에게 빈다. 그러고 나서 산모는 젖이 잘 나오도록 그 제물을 먹는다.(222-23)
8. 정결 관념
치성을 드리기 전에 여성은 조심스럽게 준비한다.……“3일 동안 생선하고 고기를 먹으면 안 되고 초상을 당한 사람과 접촉하면 안 돼. 아주 깨끗해야지. 월경도 안 돼. 가기 전에는 목욕도 하고 머리도 감아야지. 쌀은 돌 하나 없이 완전히 깨끗하게 씻어야 해.”(226)
9. 가장 흥미로운 내용 중 하나. 현대 의학과의 공존.
용수 엄마는 변씨 집을 떠나면서 어깨 너머로 변씨 부인에세 “약은 꼭 사야 돼요.”라고 소리쳤다. “어떤 약이요?”변씨 부인이 외쳤다. “아무 약이나. 약국에서 어떤 약인지 말해주겠지.”(169)
만신들은 자신의 고객이 병이 나면 약사, 한의사, 침술사, 병원에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신들 스스로가 약사, 한의사, 침술사, 병원의 단골이기도 하다.(172)
용수 엄마놔 그녀의 단골들은 의학적 문제는 의학적 치료를 통해서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의료비 때문에 가족이 주저하거나 환자가 난처해 할 때면 신령들이 만신의 입을 빌어서 그 지출을 허가한다. 그러나 신령들은 다만 가장 일반적인 의료적 조언을 해줄 뿐이다.(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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