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잡기36 환상, 현실, 그리고 꼴데 0. 아래의 동영상 ‘꼴셉션’은 환상에 관한 것이다. 이 영상을 소개한 기사에 달린 베스트 댓글은 (아마 SK팬이 쓴 것으로 기억되는데) “꼴데팬, 느그들이 드디어 미쳤구나.”였다. 외부자의 입장에서 정확한 표현이다. 냉정하게 말해 현실도피로 보일 수밖에 없다. 1. 내가 원래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다음과 같다. 때로는 환상이 우리의 삶을 구원해주는 힘을 가진다는 것. 환상이 현실의 변화를 가져오는 실재로서 기능한다는 것. 이것은 ‘의미 있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실재적인real 것, 실재reality 개념을 사용하고, 그것을 종교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 종교학의 용법과 맞닿아 있다. 엘리아데는 이렇게 말한다. “신화는 오로지 실재realities에 대해서, 무엇이 실제로really 일어났는가에 대해서, .. 2023. 5. 22. 하늘로 난 문 내가 사는 원룸을 바깥쪽에서 찍은 모습이다. 산 지 한참 후에 안 것인데, 내 방 바깥벽에는 문(!)이 달려 있다. 얼핏 보면 내 방 바깥에 슬레이트 테라스(?)가 딸려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문이 아니다. 문짝일 뿐이다. 문이 있는 위치는 내 방 화장실이 있는 곳이다. 세면대 거울이 달려 있는 그 위치의 벽에 문이 있는 것이다. 안에서 사는 사람은 있는 지도 알 수 없는 문이다. 가까이 보면 가짜 문인 주제에 손잡이에는 열쇠까지 달려 있다. 이것이 기능이 없는 문이라는 점은 위층 방의 문을 보면 확실해진다. 이것은 하늘로 난 문이다. 그 위층 방에도... 이런 문이 있는 것은 기이한 건축가의 기호 때문은 아닐 것이다. 나는 이런 황당한 문을 고시원 건물에서도 본 적이 있다. 아.. 2023. 5. 22. 구조주의적 사유 소쉬르의 에는 통시언어학과 공시언어학을 구분하고 공시언어학을 강조하는 내용이 제시된다. 통시언어학의 의미가 없다고까지는 하지 않아도,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보다는 한 시점에서 본 구조적인 의미를 본질적인 것으로 파악한다는 책의 내용은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소쉬르는 통시적인 것에 대한 공시적인 것의 우선성을 체스의 예를 들어 기가 막히게 설명한다. [체스판의] 말 하나의 이동은 그 전의 균형과 그 후의 균형과는 전적으로 구별되는 현상이다. 일어난 변화는 이 두 상태의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단지 상태뿐이다. 체스 놀이에 있어서 그 어떤 특정 형세건, 그것은 선행된 형세로부터 해방되어 있다는 기묘한 특성을 지닌다. 즉, 어떤 경로를 통해서 그러한 형세에 다다랐는가는 전혀 중요하지 .. 2023. 5. 22.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면서 때론 짙타를 받기도 하지만, 나의 지론은 ‘사랑=소유욕’이라는 주장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전제를 깔고 있는 모든 연애 담론과 실천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런 나에게 의 그리스 현인이 펼치는 사랑론이 좀 뜻밖의 것이어서 간단한 기록을 남긴다. 에로스(사랑)에 관해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나눈 후 책의 중간쯤부터 소크라테스가 끼어들어 자신 특유의 논리적인 방식으로 대화를 이끌기 시작한다. (1)여기서 그가 대뜸 던지는 물음은 다음과 같다. “에로스는 특정 대상을 사랑하는 것인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사랑하는 것인가?” (2)문답의 결과 “사랑은 어떤 대상에 대한 것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에로스는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 바로 그것을 욕구한다.”고 할 수 있다. (3)“에로스는 자신.. 2023. 5. 22. 웹 공간에서 잃어버린 것들 1. 내가 제일 처음으로 사용한 메일 계정 주소는 “방가@3dot.co.kr”이었다. 국내 최초로 3차원 검색결과를 제공한다는 사이트였는데, 검색기능과는 상관없이 기능도 나쁘지 않은 것 같고 무엇보다도 주소가 독특한 것이 마음에 들어 메일 계정으로 선택하였다. 한메일처럼 누구나 갖고 있는 그런 주소보다는 개성 있는 주소를 갖고 싶어서 한 이 선택은, 2년도 안 되어 이 기업이 망하는 바람에 참담한 선택으로 끝났다. 계정은 폐기되었고, 내가 웹상에서 처음으로 주고받았던 이메일들이 모두 날아갔다. 그래서 대신 사용하게 된 계정은 “방가@orgio.net”이었다. 오르지오는 당시로는 꽤 많은 메일 용량을 제공하던 서비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이 서비스도 얼마 안 가 제공 용량을 줄여가기 시작하더니 급기.. 2023. 5. 22. 세상의 원일이들 1. 작가 김원일(65세)은 2007년에 장편소설 을 내며 꾸준한 활동을 보였다. 지금까지 내 독서 목록에서 이 중견작가의 작품은 없었다. 다만 드라마로 을 본 것이 전부다. 내 독서 성향상 앞으로도 이 분의 책을 읽을 일은 드물지 않을까 싶다. 지하철 3호선에서 계속 보게 되는 성형외과 광고가 있다. 위드 성형외과. 남자 셋이서 부담스러운 얼굴을 들이밀며 성형외과 광고를 하는 역발상이 참신한 이 광고의 주인공 중 하나는 원장 유원일이다. 압구정동에 있는 성형외과 원장이니, 뭐, 잘 살고 있겠지. 원일이들 중에서 꽤 유명한 원일이가 나온 쪽은 손씨이다. 손원일(孫元一, 1910~1980)은 대한민국 해군을 건설했고, 초대 해군 참모총장을 지낸 군인이다. 또 성우 손원일이 있다. 손원일은 문화방송 성우극회.. 2023. 5. 22. 저 별은 방(房)의 별 지난번에 에 방씨 성이 혁명과 연관된 긍정적인 이미지로 사용된다는 데 대한 흥분을 글로 표현한 적이 있었다.(에 등장하는 방씨) 그런데 이번에는 비결 전승을 이용한 종교 운동들의 역사적 사례들을 살펴보다가, 그러한 혁명적 방씨 이미지를 실제로 사용한 방씨가 있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평소부터 방씨의 이미지에 대해서라면 광적인 관심을 가지던 나로서는(어여쁜 방가), 눈이 번쩍 뜨이는 발견이 아닐 수 없다. 이로써 나는 소중한 방가(房哥)의 존재를 하나 더 품에 안게 되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1898년에 발생한 제주도 농민항쟁인 방성칠의 난을 주도한 방성칠(房星七)이다. 내가 읽은 책에서 관련된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화전민들로 이루어진 남학당(南學黨)을 이끌며 항쟁을 주도한 방성칠(房星七)은 “제.. 2023. 5. 22. 자해성 프리셀 글을 쓰면서 시간에 쫓겨 피를 말리는 상황에서 나는 별 의미 없는 짓을 하면서 시간을 죽이는 버릇이 있다. 예를 들어, 책을 다 읽고 나서 세 시간 안에 내용을 정리해 글을 작성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윈도우에서 프리셀 게임을 실행시켜서 (심한 경우엔) 거의 한시간 남짓 시간을 소비해서 남은 시간을 두 시간으로 만들어 버린 후에나 글쓰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두 시간의 경우엔 한시간 반으로 만들어 버린다. 혹자는 내가 여유를 부리는 것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지만, 남은 두 시간 동안 내가 하는 꼴을 본다면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세 시간 동안 여유 있게 작업할 수 있는 상황에서,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하며 세 시간을 두 시간으로 만들 때 하는 그 게임을 나는 “자뻑성”(자해적이라는 의미에.. 2023. 5. 22. 드라마를 보며 드라마를 공부하는 것 에 실린 의 작가 이기원의 인터뷰를 읽다가 다음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가급적이면 현실적인 상황에서 모티브를 얻으려고 하죠... 이런 현실적인 소재 중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 장준혁이 엘리베이터에서 소리지르는 장면이에요... 열 받아 있는 데 들어와서 층마다 버튼을 다 누르면 짜증이 나거든요. 이 때 장준혁이 화난 것을 어떻게 보여줄 것이냐. 소설 같으면 ‘아, 화났다’ 하면서 두 페이지는 쓸 수 있죠.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그걸 어떻게 보여주느냐. 이런 걸로 보여주는 거죠. 소리지르고 나서 자기도 흥분해서 내린 후 계단으로 내려오고, 이걸로 사람들이 장준혁이 진짜 흥분했음을 알게 되잖아요. 이런 부분을 찾지 않으면 드라마가 클리셰 투성이가 돼요. 다른 작가들한테 욕먹을 얘기인지도 모르겠지만, 그.. 2023. 5. 22. 방씨에 대한 새로운 이론: <정감록>에 등장하는 방씨 조선후기 정감록 신앙에 대해 읽다가 ‘방씨’ 언급에 필이 꽂혀 써버린 글. 이걸 그대로 수업시간 독서에 대한 논평 과제로 제출해 버렸는데, 뒷탈은 없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성씨에 대해 불타오르게 된 것은 어제 우연한 계기에 다시 읽은 "가"씨에 대한 딴지일보의 초기 명작인 "한국을 지킨 사람들-정보통신편"을 다시 읽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성씨에 대한 이미지의 역사가 연구된 적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있으면 큰 도움이 될 터인데... 나는 지금껏 한국사에서 남양(南陽) 방씨(房氏)의 존재는 미미했다고만 생각했다. 현대 한국사회에서는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투수 방수원과 만화가 방학기(房學基)를 통해 어느 정도 알려져 있지만(지금 방씨에 대한 나의 생각으로는 “房家의 房氏 이야기”를 참조할 것), 고려와 조선.. 2023. 5. 22. 인식론과 행위 어제 봄비가 왔다. 오랜만에 들은 배따라기의 노래. 男: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女: 나는요 비가 오면 추억 속에 잠겨요 男: 그댄 바람소리 무척 좋아하나요 女: 나는요 바람 불면 바람 속을 걸어요 ................ 男: 그댄 낙엽 지면 무슨 생각하나요 女: 나는요 둘이 걷던 솔밭 길 홀로 걸어요. 배따라기,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동문서답이다. 그는 무엇을 좋아하느냐는 인식론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는데, 그녀는 이미 무언가를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기에 따라서 그것은 대답일 수도 있고, 질문이 채 담지 못하는 삶의 현상을 드러내보임으로써 인식론의 틀을 바꾸어놓는 것일 수도 있다. 첫번째 떠오르는 것은 교리와 실천을 놓고 벌어진 종교사의 다양한 대립들이다. 엘리트와 사제 쪽에서는 교리를 .. 2023. 5. 22. 어여쁜 방가 요즘 한국에서 호평받고 있는 베스트극장 태릉선수촌 2회는 다음과 같은 민기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이 드라마의 미덕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사실 방가를 만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냐... 방가는 계속 천재였어, 캔디 매니아에... 재수 없었지. 극에서 양궁선수로 나오는 방수아(최정윤)를 회상하는 홍민기(이민기)의 대사이다. 이것은 역사적인 순간이다. 한국 드라마에서 방씨가 극의 중심에서 다루어지는 최초의 사례이기 때문이다. “방가”라는 호칭은 홍민기의 괄괄한 성격을 드러내기 위한 설정이다. 그말고 아무도 방수아를 그런 식으로 부르지 않는다. 덕분에 방가가 드라마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고, 그 방가가 평소에 예뻐하던 여인 최정윤이라는 점이 나를 들뜨게한다. 내가 아는 중에서 가장 예쁜 방가를 .. 2023. 5. 22. 착한 얼굴 세나 때문이다. 한국 드라마를 다운로드받아 보는 나쁜 버릇이 생겼다. 에 마취되어서이다. 우연히 빨려들어 갔다가, 이제는 세나를 따라 가슴에 멍이 들고 있다. 시간 쪼개어 드라마를 따라가느라고 내 생활도 고달프다.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세나 얼굴이 수척해지듯이, 내 얼굴도 그렇다. 어느 드라마 팬이 말했듯이, 어서 이 드라마가 끝났으면 좋겠다. 다행히 이제 두 주밖에 안 남았다. 그제서야 마음을 놓고서 시간 날 때 천천히 처음부터 돌려보겠다. 지금은, 볼 때마다 가슴이 쿵쾅거려서, 참 힘들다. 드라마가 내 삶에서 진지한 텍스트가 되는 것은 그리 잦은 일은 아니었다. 순풍을 비롯한 김병욱 피디의 작품들 말고는 없었다. 그런데, 올해만 벌써 세 편째다. , , 그리고 . 얼마 전 한국 영화들을 보며 그런 생각.. 2023. 5. 22. 이름을 버려야 하는데 * 종교학이라는 이름을 넣고 싶은 마음이 있긴 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인터넷에서 만나는 종교학이라는 언어가 내가 그리는 방식이 아니라 신학적이거나 요상한 색깔이었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식으로 그 이름을 부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벌레라는 말은 그 자체로는 소박한 어휘라서 또 괜찮았다. 그런데 벌레라는 말이 공부랑 결합하면 “하버드의 공부벌레”에서 보듯 괴물같은 말이 되어버린다. 경쟁사회의 충실한 하수꾼같은 그런 모습은, 적어도 내가 그리는 모습은 아니다. 그래서 종교학 벌레라는 제목은 내가 꿈꾸는 이름도 아니요, 나의 상태에 부합하는 이름은 더욱 아닌, 마음에 들지 않는 이름이었다. ** 그런 이름을 왜 갖고 있냐고? 답은 귀찮아서이다. 나는 이름짓는 것을 정말 귀찮아한다. 홈페이지 만들기가 유행.. 2023. 5. 22. 5412번 (舊 289-1번) 5412번은 꽤 오래 타고 다녔던 버스이고, 올해도 집에 오면서 많이 탔다. 5412번의 노선 양 편에는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권력이 자리한다. 한 쪽 끝에는 서울대가, 다른 한 쪽 끝에는 강남이 있다. 5412번은 서울대와 강남을 연결하는 버스이다. 나는 늦은 시간, 막차보다 너댓대 앞차인 11시 전후(막차는 신림동 녹두거리에 11시 20분 경에 온다) 서울대 부근에서 강남 방면으로 오는 버스를 주로 이용한다. 이 시간에는 젊은 사람들로 버스가 가득 찬다. 그 중에서도 두 부류가 눈에 들어오는데, 하나는 녹두거리에서 술먹다가 집에 가는 서울대생들이요, 다른 하나는 최대한 늦게까지 공부를 하거나 수강을 하다가 집에 돌아가는 고시생들이다. 놀다가 늦게 버스타고 돌아오는 학생들을 보면 내 학창 시절이 눈에 .. 2023. 5. 22.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