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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변잡기

웹 공간에서 잃어버린 것들

by 방가房家 2023. 5. 22.

1. 내가 제일 처음으로 사용한 메일 계정 주소는 “방가@3dot.co.kr”이었다. 국내 최초로 3차원 검색결과를 제공한다는 사이트였는데, 검색기능과는 상관없이 기능도 나쁘지 않은 것 같고 무엇보다도 주소가 독특한 것이 마음에 들어 메일 계정으로 선택하였다. 한메일처럼 누구나 갖고 있는 그런 주소보다는 개성 있는 주소를 갖고 싶어서 한 이 선택은, 2년도 안 되어 이 기업이 망하는 바람에 참담한 선택으로 끝났다. 계정은 폐기되었고, 내가 웹상에서 처음으로 주고받았던 이메일들이 모두 날아갔다.


그래서 대신 사용하게 된 계정은 “방가@orgio.net”이었다. 오르지오는 당시로는 꽤 많은 메일 용량을 제공하던 서비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이 서비스도 얼마 안 가 제공 용량을 줄여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문을 닫았다. 나의 두 번째 메일함도 날아갔다.


2. ‘일인 일 홈페이지 갖기 운동’이라는 구호가 나올 정도로 홈페이지 만들기가 유행하던 90년대 말, 나는 이 블로그의 전신이 된 홈페이지 종교학 벌레를 만들었다. 무난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생각되는 드림위즈에 계정을 마련하였다. 주소는 http://my.dreamwiz.com/b813. 그러나 현재 이 주소에 접속하면 그림과 같은 화면이 뜰 뿐이다.
당시에 나름대로 애써 올렸던 종교학 책에 관련된 자료들은 웹상에서 사라졌다. 내 하드 안에 있기는 하지만 그걸 블로그에 다시 올릴지는 미지수이다. 올 겨울방학 때 몇 편 골라 올릴 수는 있겠지만, 상당히 귀찮은 작업이고, 무엇보다도 그땐 열심히 올렸지만 지금 시점에서 볼 때는 그렇게 가치가 있는 자료인지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25메가 제공하는 계정을 정리하는 것이 얼마나 큰 이득을 주는지는 나로선 판단할 수 없는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내 것을 비롯해 드림위즈의 적지 않은 홈들이, 그들이 일군 문화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내가 했던 것은 홈페이지 만들기 연습 한 번 해서 웹 공간의 구조를 학습한 것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3. 급성장한 우리나라 인터넷 문화의 이면에는 지속성의 결여라는 치명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넷 공간은 인터넷 기업의 사업 계획에 따라 언제든 날아간다. 지속되지 않아 축적되지 않는 문화는 필연적으로 얕고, 천박할 수밖에 없다.
블로그를 시작할 때 가졌던 느낌은 이유 모를 안정감이었다. 처음에는 그림과 텍스트만 저장할 수 있는 무한한 공간이 주어진다는 간단한 형식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하다못해 퍼머넌트 링크(permanent link)라는 용어조차도 어찌 그리 마음에 들던지... 책에 인용해도 좋을 정도로 지속적이고 고정된 공간이 글 하나하나에 부여되는 안정성의 느낌이 좋았던 것이다.
그렇게도 안정적으로 보이던 이 공간에도 최근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엠파스라는 명칭이 사라진다는 보도만 언뜻 들릴 뿐 아무런 공식입장도 나오지 않았지만, 그동안 공짜로 쓰던 공간을 하루아침에 뺏기던 악몽은 언제든 재현될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 이 공간이 허무하게 사라지리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이름이 바뀌든 어찌 되었든 블로그를 없애지는 않겠지만, 하다못해 주소만 바뀌더라도 엄청난 타격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예상할 능력이 없는 것을 미리 걱정하고 대비하는 성격은 아니다.)

최근의 풍문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엠블러 중 하나를 잃었다. 자일님이 본거지를 옮기게 된 것. 이젠 정말로 남아있는 엠블 친구는 손에 꼽을 정도일 뿐이다.



(추가)
4. 2009년에 이글루스로 이사가서 14년을 지냈지만 2023년 6월에 폐쇄되는 바람에 티스토리로 옮겨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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