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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얻어배우는 것36

건물과 종교 1. 종교 개념과 건물이 긴밀하게 결합한 것은 우리 언어의 특징이다. 우리는 종교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교회에 다닌다”, “절에 다닌다”, “성당에 다닌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교회, 절, 성당이 그 종교 자체처럼 받아들여진다. 우리말에만 있는 표현이다. 예를 들어 영어에 “go to church”라는 숙어가 있는데, 이것은 “예배를 본다”는 의미이지 개신교 소속을 의미하지 않는다. 게다가 영어 단어 ‘church’는 개신교와 천주교 건물 모두를 가리킨다. 한국어에서만 교회와 성당이 엄격히 분리된다. 언제부터 이런 표현이 자리 잡았을까? 2. 천도교 교당 건축에 관한 발표를 듣던 중에 이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건축물이 종교를 구성하는 핵심이라는 생각은 한국에서 종교 개념이 형성되는 초기부터 .. 2023. 6. 4.
종교 개념의 세번째 영역 얼마 전에 피터 바이어(Peter Beyer) 교수의 강연을 직접 들을 기회가 있었다. 서구적인 종교 개념이 비서구사회에 적용된 과정을 개괄하는 강연이었는데 나에게 너무 익숙한 내용이어서 그런지 다소 실망했던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그가 청중들의 수준을 다소 낮게 설정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차돌같이 단단한 논의 전개는 인상적이었지만, 내용은 다소 평범해서, 도대체 그의 대표적인 이론 작업인 지구화(globalization)에 대한 논의가 종교에 대한 이론적 논의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회의만 느낀 채 강연장을 떠났었다. 오늘 종교 개념에 대한 다음 논문을 읽고서 그의 학자로서의 저력을 느끼게 되었다. 최근 종교학자들의 종교개념 논쟁을 깊이 있게 정리하고 자신의 대안도 설득력 있게 제시한 글이다. 그의 대표.. 2023. 6. 3.
베트남 전쟁에 대한 한국 개신교회의 태도 1960년대 말 1970년대 초, 베트남 전쟁 파병 때 한국 개신교회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을 하였는가? 다음 인용문들은 한국기독교역사학회 2004년 학술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류대영 교수의 “베트남 전쟁에 대한 한국 개신교의 태도”에서 뽑은 것이다. (처음 참전한 부대의 부대장이 공교롭게도 개신교 신자였다) 이소동 백마부대장은 “하나님을 공경하고 선한 싸움”을 싸울 것이라고 다짐하였다. NCC 전도부장 김활란은 “인간의 자유”를 지키고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위장 없는 영구한 평화를 아시아에 심고자” 몸 바치고 나선 그들을 “자유의 십자군”이라고 부르며 신의 가호를 기원했다... 김활란은 백마부대 장병들이 “우리가 곤고할 때” 위로하고 도와준 “우방들의 태산 같은 신세”를 갚기 위해 “.. 2023. 5. 27.
종교인구 문제의 황당함 김진호 선생의 “종교인구 문제의 ‘황당함’과 ‘곤혹스러움’”은 작년에 나온 2015년 인구총조사 종교통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생각을 열어준 글이었다. 발표를 들으며 들었던 ‘도움 받은 생각 + 혼자 들었던 생각’을 정리해본다. 1. “황당한 개신교 신자 수, 종교학의 곤혹스러움” 2015년 통계가 발표되기 이전 개신교에 대한 국내의 인식은 좋지 않고 교단 통계도 감소세를 보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자는 큰 폭의 감소를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는 967만명으로 국내 최대 종교를 기록. 학자들로서는 예상 못한 결과였다. 나 역시 이전 통계를 기반으로 뻘소리를 한 적이 있어 후끈거리는 결과. 황당하고 곤혹스러운 것이 맞다. 비유하자면 여론조사 갖고 딴소리 하던 정치평론가들이 작년 총선 이후 할 말이 없어진 상.. 2023. 5. 19.
“분단 70년, 한국 기독교의 성찰과 반성” 발표문에서 “분단 70년, 한국 기독교의 성찰과 반성”(2015년 한국기독교역사학회 정기 학술심포지엄)을 들으면서. 이하는 전체 요지에 대한 것이 아니라 부분적인 내용에 대한 메모들이다. 이만열, 윤경로 두 발표자는 최근 사회적 쟁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는 노학자들이다. 최근의 경험들이 배어들어 글과 말에 더욱 힘이 실린다는 느낌을 받는다. 1-1. 이만열 선생은 1970년대까지 활발했던 기독교 운동권이 89년대 들어 퇴조하며 운동권의 주도권이 비기독교 운동권으로 넘어갔다고 지적하는 대목에서, 이런 견해를 밝혔다. “기독교적 정체성을 유지하였는가?” 운동의 퇴조를 기독교 정체성 상실과 연결했는데, 이는 선후관계를 따지기 어렵거나 초점이 다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확인할 사안이다. 1-2. 한국 기독교.. 2023. 5. 19.
신종교와 성소 한국신종교학회 추계학술대회의 주제는 “신종교와 성소 2”였다. 금강대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대순진리회의 성소에 대한 발표가 있었고, 나로서는 새로운 정보가 많았다. 몇몇 내용을 정리해 놓는다. 금강대도 옥화촌(玉華村) 1. 금강대도 본부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금천리에 있다. 창도주 이토암이 이 위치에 금강대도의 터전을 옮긴 것은 1923년이었다. 금강대도는 1941년에 일제의 탄압을 받아 11명의 신도가 옥중 순교하고 ‘강제 기부 승낙서’를 통해 성전과 건물이 헐리게 된다.[신사사변] 주춧돌과 터만 있던 이곳은 개도 100주년인 1973년 재건되었다. 2. 옥화촌은 풍수지리를 통해서 의미화 된다. 이곳은 계룡산의 지맥에 위치한다. 계룡산의 풍수지리적 의미 위에 이 지역의 구체적인 내용이 결합되어 풍.. 2023. 5. 19.
“웰빙 우파와 대형교회”에 대한 논평 운이 좋아서 김진호 선생님에 대한 논평을 여러 번 맡았다. 사실 ‘논평’이라는 말은 무거워서 엄밀히 따지면 내가 하기엔 주제넘은 짓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내가 이해하는 ‘논평’은 발표만 듣기에는 아쉬우니까 무언가 발표자로부터 이야기를 더 청해 듣기 위한 빌미를 제공하는 학술행위이다. 고맙게도 발표자가 풍성한 응답을 해주었기에 여느 때처럼 배울 게 많은 시간이 되었다. 아래의 글은 “웰빙 우파와 대형교회”에 대한 논평문이다. 중간 중간에 그날 논의된 내용을 삽입했다. 논평의 대상이 된 발표문은 내가 올해 안에 출판될 책에 포함될 내용이고 내가 공개할 수는 없다. 대신 선생님 홈페이지에 있는 “대형교회가 추구하는 인간적 삶, 그 삶의 미학은 불온하다”라는 글을 참조할만하다. 발표문과 동일하지는 않지만 발표문.. 2023. 5. 19.
비엔나 학회(AKSE) 후기 제26회 유럽 한국학회(AKSE)에 참석하러 비엔나에 와 있다. 이제 이틀간의 느낌을 간명하게 정리해보고자 한다. 1. 학회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의 느낌은 정확하게 이랬다. “Welcome to the jungle!” 학자들은 일인 기업이다. 지 혼자의 힘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공교롭게 나 혼자 참가하게 되어 그런 느낌이 더 강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만나자마자 동료 학자들과 웃고 떠들기에 여념이 없다. 다행히 아는 학자 몇 명이 있어 인사를 나누기는 했지만 멀거니 구경하는 시간이 더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학회는 학자들이 거래하는 장터이다. 서로 간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나 계획을 교환하고 흥정하는 곳이다. 나는 이 장터에 내보일만한 물건을 만들어오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학자여야 했다. 어.. 2023. 5. 19.
시민K와 초기 개신교사 며칠 전에 (현암사, 2012)의 저자 김진호 선생님을 내 수업 시간에 초청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현재 한국교회 상황에 대해서는 내가 찔끔찔끔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학생들이 이 책 한권 제대로 읽는 것이 천 배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책을 읽히고 저자를 모시는 시간을 마련한 것인데, 너무나 고맙게도 선생님께서 흔쾌히 응해주셔서 흔치 않은 기회가 생긴 것이다. 올해 내가 받은 여러 행운 중 하나였다. 아래 내용은 그날 토론에서 오간 내용은 아니고 이번에 선생님 책을 다시 읽으면서, 특히 제1부 1장(37-48)을 읽으면서 생각한 것을 메모한 것이다. 제1부는 한국 개신교의 역사를 되짚는 부분인데 그 중에서도 1장은 내가 관심 갖는 시대를 다루고 있어서 특히 유심히 읽었다. 이 책에는 .. 2023. 5. 19.
한국 개신교회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논평문 한 행사에 참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글을 남긴다. 얼떨결에 전화를 받고 김진호 선생님의 “교세 감소와 정치 세력화, 위험한 만남”이라는 글을 논평하기로 했는데 알고 보니 이 자리는 쟁쟁한 학자들로 가득 찬 행사였다. 출판사에서 후원하는 행사여서 일반적인 소박한 발표와는 많이 달랐다. 발표회의 화두를 제공한 책 에 대해서는 다른 글로 정리하기로 하고 여기에는 나의 논평문만 남긴다. 사실 발표문이 없는 이 논평문이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발표자의 양해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표문은 실을 수 없었음.) 대부분 발표 내용을 긍정하고 중요한 점을 다시 강조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그냥 기념용 포스팅. “교세 감소와 정치 세력화, 위험한 만남”(김진호)에 대한 논평 1. 한국 개신교의 정치성, 뜨거운.. 2023. 5. 19.
신화 담론에 대한 반성 “한국 사회 신화 담론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심포를 참관하였다.(이 심포의 취지와 발표 내용에 대해서는 이 글을 참조할 것) 나는 사실 이 연구 집단의 내부자이고 발표 준비 과정도 어느 정도 보아왔던 사람이기도 하다. 해서 오늘 듣거나 읽은 네 발표에 대한 ‘조심스런’ 코멘트들을 기록으로 남겨둔다. 1. 한국의 중국 신화 연구에 대한 비평적 접근은 애초부터 쉽지 않은 기획이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현재 우리나라의 중국 신화 연구자들은 (서구에 편중된 신화 논의에 대해) 꽤나 비판적인 의식을 근간으로 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세부적인 면에서 비판을 할 수는 있어도 기본적으로는 괜찮은 연구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발표자는 이 점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원래의 의도인 ‘비판’보다는 연구자들의 .. 2023. 5. 19.
한국 사회의 시민종교 “한국 사회에서 시민종교의 현상탐구: 종교와 시민사회의 소통가능성과 그 방법론”이라는 심포지엄에 갔다 왔다. ‘시민종교’라는 개념에 관심이 좀 있었고 한국 사회에 적용할 수 있을지 궁금하던 터라, 참석했던 자리. 한국의 시민종교를 논하면서 불교, 천주교, 개신교에 대해 각각 발표하는 자리였다. (이런 메모는 주로 불만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배운 것을 기록하는 데 소홀한 경향이 있다. 배운 것은 다양해서 정리하기 쉽지않은 반면에, 불만은 하나의 줄기로 꿰어지는 일이 많아서일 것이다.) 1. 애초에 심포 제목을 접했을 때 들었던 노파심은 시민종교를 막연히 좋은 것으로 여기고 발표를 기획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나는 시민종교를 중요한 개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자체로 좋은 것일 수는 없다. 우리나.. 2023. 5. 19.
퀴어 신학자의 강연 기독교 내의 동성애 문제에 대한 강연을 들은 지 6년 만에 또 하나의 강연을 듣게 되었다. 퀴어 신학을 이끌고 있는(그렇다고 들었다) 테오도르 제닝스Theodore Jennings 박사 강연 “교회와 동성애: 호모포비아의 극복을 위하여”였다. 핵심을 짚어내는 제닝스 박사의 언어의 힘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던 강연이었다. 이 주제에 대해 내가 주워들은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듣는 정도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막연하게 갔던 나의 기대를 훨씬 넘어서는 자리였다. 이 문제에 대해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고개를 돌리 것이며, 그나마 약간 있는 온정적이고 양심적인 이들의 입장은 같은 피조물인 동성애자들도 교회에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제닝스 박사가 제시한 의제 설정은, 그가 짜놓은 싸움의 구도는 다른 .. 2023. 5. 19.
죽음을 통해 본 일본종교의 생명관 지난 주말에 참석한 학회(사진의 원불교 건물에서 열렸음)에서 박규태 선생님의 “일본인의 생명관: 계보적 일고찰”이라는 발표를 들었다. 울림이 남는 발표였다. 주제는 생명인데 다루어진 것은 주로 죽음이었다. 이것은 일본인들이 삶의 문제를 주로 죽음을 통해 성찰했다는 커다란 전제에 입각해서 이루어진 것이긴 하다. 하지만 다른 생각도 든다. 발표하신 선생님의 삶의 경험에서 죽음의 의미를 해명하는 것이 요즘의 절실한 문제가 아닐까? 그래서 죽음에 대해 심혈을 기울인 이 글을 쓰게 되신 것은 아닐까? 물론 잡생각이다. 일본과 같이 복잡한 문화의 이천년간의 죽음관을 한 편의 논문으로 다루다니, 이건 너무 무모하다는 것이 나의 상식적인 견해다. 이건 책 서너 권을 써도 모자를 듯하다. 하지만 선생님은 이 작업을 했다.. 2023. 5. 19.
민족주의 강연(정수일) 동서문명 교류사 방면에 독자적인 업적을 쌓아올린 학자 정수일 선생의 강연에 갔다가 예상치 못했던 내용을 듣고 왔다. 처음엔 당혹스러웠지만 듣고 나니 그런 불리한 주제를 고수하는 학자의 양심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민족주의, 아시아의 보편가치”라는 제목은 기이하다. 민족주의와 보편가치는 모순되어 보이는 표현이고, 게다가 이 보편가치는 아시아라는 범위로 한정되어 있다. 이 강연은 이것을 모순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통념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작업이었다. 강연 말미에 정선생님은 “민족주의는 보편적 진보주의이며 국제주의와 상치되지 않는다”고 하며 “진정한 민족주의자는 진정한 국제주의자”라고까지 말한다. 최근 학계에서 ‘민족’을 생각할 때 떠올리는 것은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라는 베네딕트 앤더슨의 논의일 것이다. .. 2023. 5.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