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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얻어배우는 것

건물과 종교

by 방가房家 2023. 6. 4.
1. 종교 개념과 건물이 긴밀하게 결합한 것은 우리 언어의 특징이다. 우리는 종교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교회에 다닌다”, “절에 다닌다”, “성당에 다닌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교회, 절, 성당이 그 종교 자체처럼 받아들여진다. 우리말에만 있는 표현이다. 예를 들어 영어에 “go to church”라는 숙어가 있는데, 이것은 “예배를 본다”는 의미이지 개신교 소속을 의미하지 않는다. 게다가 영어 단어 ‘church’는 개신교와 천주교 건물 모두를 가리킨다. 한국어에서만 교회와 성당이 엄격히 분리된다. 언제부터 이런 표현이 자리 잡았을까?
 
2. 천도교 교당 건축에 관한 발표를 듣던 중에 이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건축물이 종교를 구성하는 핵심이라는 생각은 한국에서 종교 개념이 형성되는 초기부터 있었던 관념이다. 우선 1905년 12월 1일 제국신문과 대한매일신보에 손병희가 ‘천도교’를 알린 광고를 보자. “천도교 대고천하(大告天下)”라고 불리는 광고이다.
 
夫吾敎 天道之大原일새 曰天道라. 吾道之創明이 及今四十六年에 信奉之人이 如是其廣며 如是其多호대 敎堂之不遑建築은 其爲遺憾이 不容提說이오 現今 人文이 闡開야 各敎之自由信仰이 爲萬國之公例오 其敎堂之自由建築도 亦係成例니 吾敎會堂之翼然大立이 亦應天順人之一大標準也라 惟我同胞諸君은 亮悉홈. 敎堂建築開工은 明年 二月노 爲始事.
天道敎 大道主 孫秉熙
 
동학(東學)이 천도교(天道敎)라는 종교의 틀을 갖게 되었음을 선언하는 중요한 문서이다. 그런데 종교 선언이 바로 교당 건축 선언으로 이어진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일본을 유람한 손병희는 근대적 종교 질서를 배워왔을 것으로 기대되었는데, 그가 ‘종교다움’의 내용으로 내세운 것이 위의 문서에서는 신앙의 자유와 건축의 자유 두 내용이었다. 교당 건축은 종교의 ‘표준’을 따르는 것이다. 어엿한 종교라면 자신의 종교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 종교가 되기 위해서는 교당을 지어야 한다는 생각이 1900년대에 강하게 존재했음을 볼 수 있고 대중들도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명동성당, 정동교회 등의 건축을 보면서 종교라는 새로운 제도의 수용을 경험한 것이 이러한 생각에 반영된 것은 아닌가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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