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사_자료/문헌45 치통의 기원 신화 전에 스치듯 읽고 머릿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던 이 이야기가 올해 내게 운명처럼 강렬한 울림을 주게 될 지는 생각도 못했다. 나는 갑자기 치의대학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되었고, 그날 밤 이 신화를 떠올렸다. 종교학과 치의학을 연결해주는 가느다란 끈! 고대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의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에서 발굴된 토판문서에 기록된 이야기이다. 기원전 7세기경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화로 설명되어야 할 근원적 고통 가운데 이빨 아픈 것도 한 자리 차지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한국어 번역은 , 에 수록된 것이 있으며, 다음의 영어 번역을 참조하여 수정하였다. R. Paulissian, "Dental Care in Ancient Assyria and Babylonia," 7-1 (1993). 2023. 6. 3. 마젤란이 파타고니아에서 만난 '귀신' 파타고니아는 남아메리카 남부를 일컫는 지명으로 아르헨티나와 칠레 남부 지역이다(브리태니커 항목). 얼마 전 ‘신데렐라 언니’가 스페인어를 배워서 가고 싶어 했던(제3회, 극중에서는 우수아이아라는 그 지역 도시 이름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 지역이기도 하다. 1519년 스페인에서 출발한 마젤란 선단船團은 대서양을 거쳐 남미 남단을 돌아 태평양으로 가게 된다. 이 때 남미 남단을 돌아가는 것이 이 항해의 첫 고비였다. 그전까지 남미의 ‘남쪽 끝’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 그전의 배들은 긴 남미 대륙을 더듬다 중간쯤에서 포기하고 되돌아가곤 했다. 마젤란 선단 역시 마젤란 해협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약간의 시행착오를 겪느라 남미 남부 지역에서 몇 달간 머무른다. 그 동안 그 지역 사람들과 접촉하였는데, .. 2023. 6. 3. <아트라하시스>의 결정적 장면들 메소포타미아의 대표적인 신화 는 와 더불어 창세기 홍수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가 실려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현대인들의 독서는 대부분 이 지점에 집중된다. 를 통해 안티기독교인들은 성서의 이야기가 이전부터 존재한 신화를 베껴먹은 날조된 것이라는 증거를 잡았다고 흥분하며, 어떤 기독교인은 성서의 이야기가 그 이전의 역사책(?)에 기록된 문자 그대로의 진실임이 증명되었다고 감사드린다. 그러나 는 창세기가 형성되기 천년 이전(기원전 1700년 경)에 기록된 문헌이고, 그 자체를 이해하는데 있어 성서와의 관련성이라는 현대 독자의 논쟁들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성서의 유사한 대목과의 비교는 우리에게 ‘재미’를 주는데, 여기서 재미란 같은 신화적 재료를 갖고 고대의 신화저자들이 자신의 지적인 맥락에서 .. 2023. 6. 2. 메소포타미아의 질펀한 이야기와 창조 모티브 신화에서 창조신화를 가장 우선적인 것으로 놓는 것은 성서 차례에 익숙한 사람들이 갖기 쉬운 착각이라고 생각한다. (우선성의 문제와는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엘리아데도 창조신화를 가장 중심적인 신화로 보았는데,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창조신화는 가장 먼저 상상된 신화가 아니다. 신화는 삶의 문제에 대한 설명으로 출발하며, 창조신화의 우주론을 생각할 정도로 인식이 추상화되는 것은 후대의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창조신화는 신화적 사유의 열매에 해당하지 뿌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후대에 집성된 신화 자료에서 창조 이야기는 첫머리에 온다. 그것은 성서뿐만 아니라 많은 신화 자료들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그것은 형식논리상 창조 이야기가 우선하는 것이지, 실제 신화 형성의 차원에서는 그러하다는 것은 아니다. 성.. 2023. 6. 2. 사도신경 아는 분께 요즘 사도신경에 변화가 있는지 물어보았는데, 진척이 없나보다. 작년에 한기총과 KNCC에서 공동으로 새 번역을 내놓았는데, 이것이 각 교단 총회에서 인준을 받지 못하여 해를 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흐지부지 될 모양인갑다. 새 번역 중에 주기도문에 대한 저항이 더 심한 편이다. 요즘 여성신학계에서는 주기도문의 하느님에서 아버지라는 부성(父性)을 제거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개신교회에서는 이것을 철저하게 거부하려고 작정을 했는지, 번역 작업에는 여성 신학자를 한 명도 끼워주지 않더니, 급기야는 원문에 두 번밖에 안 나오는 아버지가 다섯 번 나오도록 하는 유래없이 마초적인 주기도문 번역을 내놓았다. (이 글 참조) 이에 대한 반발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사도신경으로 다시 돌아가서.. 2023. 5. 29. 숨은 종교 모델과 혼합현상 이론 ‘기독교 인류학’이라는 연구 흐름을 대표하는 학자 중 한 명인 조엘 로빈스의 논문의 대략의 내용. 그는 이 글에서 과거 인류학에서 비서구인의 선교와 관련해 많이 사용해온 ‘숨은 종교’ 모델을 비판하고 혼합현상 개념을 사용하기 위한 대안적 모델을 제안한다. Joel Robbins, “Crypto-Religion and the Study of Cultural Mixtures: Anthropology, Value, and the Nature of Syncretism,” 79-2(2011): 408-424. 1. 인류학에서 기독교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은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타자를 다루는 학문인 인류학에서 기독교는 인류학의 적합한 대상이 되기에는 너무 친숙하다는 것이다. 둘째, 기독교는 인류학의.. 2023. 5. 14. 나바호족의 말의 노래 신기루로 만든 발을 가졌습니다. 걸음걸이는 무지개입니다. 태양끈 고삐를 매고 있습니다. 심장은 붉은 돌로 되어 있습니다. 내장은 온갖 종류의 물로 되어 있습니다. 까만 비의 꼬리를 가졌습니다. 멀리서 치는 번개가 그의 귀입니다. 반짝하며 퍼지는 별이 그의 눈이 되고 얼굴의 줄이 됩니다. 뒷다리는 새하얗습니다. 밤에 구슬이 그의 입술이 되었습니다. 햐이얀 조가비가 그의 이가 되었습니다. 검은 피리가 입속으로 들어가 나팔이 되었습니다. 새벽이 그의 배가 되어, 한쪽은 하얗고, 한쪽은 검습니다. (Sam Gill, Native American Religions, p.140) 말에 대한 나바호족의 노래이다. 엉성한 번역을 때문에 아름다운 느낌이 전해졌을런지 모르겠다. 나바호족의 세계관에서, 말은 태초와 연관된 .. 2023. 4. 19. 위네바고 인의 창조 신화 위네바고 족은 지금의 위스콘신 주 그린 베이 근처에 살았던 아메리카 토박이 무리이다. 자신들의 언어로는 호청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다음은 그들의 창조 신화 한대목이다. 창조주(Earthmaker)가 만물을 창조한 뒤 인간을 창조하였다. 인간은 창조된 것 중 가장 마지막이었다. 앞서 창조된 것들은 영들이 있었고, 창조주는 그들 모두에게 역할을 부여하였다. 심지어 가장 작은 벌레도 나흘 앞의 일을 미리 알 수 있었다. 인간은 창조주의 모든 창조물 중 가장 미약하였다. 인간은 아무 역할도 부여받지 못했고, 하루 앞의 일도 내다보지 못하였다. 인간은 가장 늦게 창조되었고, 가장 열등하였다. 그 후 창조주는 기분좋은 냄새가 나는 풀을 만들었고, 모든 영들이 그것을 원했다. 어떤 영들은 그게 자신에 속한 곳이라.. 2023. 4. 19. 유길준의 세계대세론(1883)의 종교 학계에서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 자료가 한국에서 종교라는 단어가 사용된 첫 사례라고 생각한다. 유길준이 일본 책에서 옮겨왔을 것으로 보이는 종교론이 완전히 이해되지는 않는다. 종교에 관한 여러 견해가 들어있다. 이것이 초기 종교 개념을 깔끔하게 요약한 글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되어 실어놓는다. 이 글은 개화사상가 유길준(兪吉濬, 1856~1914)이 1883년에 세계정세와 문물을 소개한 글인 의 일부이다. 종래 종교학계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종교’가 언급된 최초의 사례는 1883년 11월에 발간된 기사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은 1883년 상반기에 미국으로 출국하기 이전에 집필되었기 때문에 시기상으로 에 앞선 것으로 보이며 한국에서 종교 개념을 언급한 최초의 자료로 .. 2023. 4. 17. 조선 청년이 본 미국 교회 매우 이른 시기에 미국 유학을 하고 영어로 견문록을 출간(1916년)한 김동성이 미국 교회에 가서 느낀 것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처럼 많지 않다는 실망감이었다. 특히 주중 예배에 신도들이 모이지 않는 것, 목사가 신도를 불러내지 못하는 점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 나머지 부분에는 약간의 위트는 있지만 크게 인상적이지는 않은, 그 특유의 에피소드가 곁들여 있다. 아시아인이 미국 여신도를 바래다주려 했는데 잘 안 되었다는 이야기. 젊은 남성의 교회 출석에 대한 풍자적 논평 등. 2023. 4. 17. "혈분경" 동아시아 불교 전통에 이라는 경전이 있다. 혈분血分은 출산 때 피를 받는 그릇에서 온 말이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여성의 피가 가득 찬 연못을 뜻한다. 혈호血湖라고도 한다. 여성은 부정한 피를 가졌기 때문에 사후에 피가 가득한 연못에서 피를 마셔야 하며, 이를 부처님이 구원해준다는 내용의 경전이다. 이 경전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목련目連존자(목건련)가 부처님께 다음과 같이 여쭈었다. 제가 한 지역에 갔을 때 넓은 들 한복판에 생리혈 연못으로 된 지옥이 있었습니다. 연못은 크기가 8만4천 유순由旬이고, 그 안에는 수갑과 발목 사슬을 차고 고통을 받고 있는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이 지옥의 주인인 마귀가 하루에 세 번 와서 죄인인 여인들에게 강제로 더러운 피를 마시게 했습니다. 거부하는 사람이 있으면 쇠막대기.. 2023. 4. 17. <세계대세론>의 종교 서술 한국에서 ‘종교’(宗敎)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1883년 11월 10일에 간행된 제2호라는 것이 종교학계의 정설이다.(나는 아직 이 자료를 확인해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 용어가 최초로 사용된 정황을 밝혀주는 자료가 있어 여기 소개하고자 한다. 유길준이 저술한 이다. 종교에 해당하는 부분 PDF: Yoo_World_power.pdf 유길준은 창간을 준비하던 1883년에 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저작이 과연 신문 준비용이었는지에 대한 논란은 있을 수 있지만, 이전에 쓰여진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 책에서 몇 페이지에 걸쳐 세계의 ‘종교’에 대해 논의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종교라는 단어를 사용한 최초의 자료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성순보가 아니라 이게 최초다”라고 말할 것은 .. 2023. 4. 16. 포동 당제에서 새로 배운 말들 비교적 잘 연구되고 보존된 사례인 시흥시 포동 당제에 대해 소개하는 발표를 듣던 중에 새로 익히게 된 말들을 기록해둔다. 아래 인용문들은 “시흥 새우개 당제 학술조사 보고”(이용범)에서 뽑아온 것이다. 삽입된 관련 사진들은 구형찬씨가 직접 촬영하거나 이전 조사작업으로부터 얻은 사진을 제공해주어 실을 수 있었다. 길지: “당집 내부에는 당신도나 신상은 없다. 대신 뒷벽에는 옷을 거는 횃대와 비슷한 것을 여러 개 설치하여 각각에 신의 의복을 의미하는 백지를 걸어두었다. 이 백지를 길지라 한는데, 당제 때는 신의 옷을 새로 해 입힌다는 뜻에서 새 길지를 걸어두고, 이에 대해 배례를 한다. 그러므로 길지는 신체(神體) 자체는 아니지만, 신체의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무교에서 신이 어떠한 모습으로 드러나.. 2023. 4. 16. [번역] 타일러의 애니미즘 논의중에서 2 11장에서 내가 읽은 부분의 일부를 꾸역꾸역 번역한 이유는 감동(!)을 받은 대목들이 있어서인데, 앞글에 이어서 두 번째 부분에서 그런 대목을 짚으면 다음과 같다. -앞에서 종교 없음 논의의 부적절함을 논파하였기 때문에, ‘종교 정의’의 필요성이 자연스럽게 요청된다. 이렇게 해서 나타나는 “영적 존재Spiritual Beings에 대한 믿음”이라는 ‘최소한의 종교 정의’는 이론화 작업의 필연성을 보여주는 멋진 등장이리라. -모든 사람이 종교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우리가 아는 사람은 모두 종교가 있다는, 얼핏 겸손해 보이면서도 전혀 그렇지 않은 단언. 종교의 보편성은 종교학의 중요한 전제이다. 하지만 보편성이 확립되기까지의 논의과정은 쉬이 망각되곤 했다. -애니미즘이 당대의 심령술과 관련된다는 .. 2023. 4. 16. [번역] 타일러의 애니미즘 논의중에서 1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의 를 직접 읽은 전공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인류학에서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두 권의 책 중에서 나한테 꼭 필요한 부분(애니미즘 논의가 시작되는 11장)만 골라 읽었으니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번에 이 부분만 읽으면서도 고전이 지닌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종교학사에서 타일러라고 하면 원시인 철학자에 대한 상상의 논의를 갖고 애니미즘을 제시한 종교진화론자 정도로 알고 넘어가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19세기의 여러 자료들을 대하다가 타일러의 글을 접하니까 비로소 그가 당대의 핵심적인 지적 의제를 제시했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읽은 부분의 일부를 꾸역꾸역 번역한 이유는 감동(!)을 받은 대목들이 있어서인데, 앞부분에서 그런 대목을 짚으면 다음과 같다. -그의.. 2023. 4. 16.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