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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_자료/문헌

[번역] 타일러의 애니미즘 논의중에서 2

by 방가房家 2023. 4. 16.

<<원시 문화Primitive Culture>> 11장에서 내가 읽은 부분의 일부를 꾸역꾸역 번역한 이유는 감동(!)을 받은 대목들이 있어서인데, 앞글에 이어서 두 번째 부분에서 그런 대목을 짚으면 다음과 같다.

-앞에서 종교 없음 논의의 부적절함을 논파하였기 때문에, ‘종교 정의’의 필요성이 자연스럽게 요청된다. 이렇게 해서 나타나는 “영적 존재Spiritual Beings에 대한 믿음”이라는 ‘최소한의 종교 정의’는 이론화 작업의 필연성을 보여주는 멋진 등장이리라.
-모든 사람이 종교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우리가 아는 사람은 모두 종교가 있다는, 얼핏 겸손해 보이면서도 전혀 그렇지 않은 단언. 종교의 보편성은 종교학의 중요한 전제이다. 하지만 보편성이 확립되기까지의 논의과정은 쉬이 망각되곤 했다.
-애니미즘이 당대의 심령술과 관련된다는 내용은 전에 메모한 부분이기도 하다. 
-애니미즘은 하등 부족(거슬리기는 하지만 그 시대의 표현이니...)의 종교현상이지만 근대 서구에 이어지는 연속성을 지닌 현상이다. 이 연속성의 인정에서 종교학의 핵심적인 인식이 정초됨을 보게 된다. 그것을 어떻게 설명하느냐는 그 다음의 문제일 것이다.
-타일러가 종교현상을 교리와 의례의 측면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고 윤리적 측면은 현대적 관심이므로 배제한 부분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Edward B. Tylor, <<Primitive Culture: Researches into the Development of Mythology, Philosophy, Religion, Art, and Custom>> (London: John Murray, 1871), 1: 383-87
 

하등 민족의 종교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 첫 번째로 요구되는 것은 기본적인 종교 정의를 제시하는 것이다. 절대 신에 대한 믿음, 사후 심판에 대한 믿음, 우상 숭배, 희생제의 실천, 기타 부분적으로 분포하는 교리나 의례를 갖고서 이런 정의를 규정한다면 분명히 종교 범주에서 제외되는 부족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좁은 정의에는 종교를 어떤 발달된 부분과 일치시키지 그 발달에 내재한 심층적인 동기와는 일치시키지 못하는 잘못이 있다. 최상의 방법은 핵심적인 자료에 직접 의거해서, 영적 존재Spiritual Beings에 대한 믿음을 최소한의 종교 정의로 간결하게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기준이 하등 민족 서술에서 종교에 적용된다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예상된다. 존재하는 모든 부족들이 영적 존재에 대한 믿음을 가진다고 긍정적으로 단언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점에 대해 상당수 부족의 본래 조건이 어땠는지 불명확하고, 급격한 변화와 소멸을 겪고 있어 그대로 남아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에서 언급된 모든 부족들, 고대 유적의 발견으로 알려진 모든 부족들이 필수적으로 최소한으로 정의된 종교를 갖는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아직 더욱 불확실할 것이다. 게다가 그런 기본적인 믿음이 전시대의 모든 인류에 자연적인 본능이라고 선언하는 것은 더더욱 현명치 못한 일이 될 것이다. 대단한 지적인 발전을 성취할 능력이 있는 인간이 비종교적인 조건으로부터 발달해서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으며, 그 이후 우연히 우리가 아는 범위 내에서 분명하게 보이는 현재 상태인 종교적 조건에 속하게 된 것이 아니라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추정보다는 관찰에 우리 연구의 기초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수많은 자료들을 갖고 판단해 보건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는 모든 하등 종족들에서 영적 존재에 대한 믿음이 나타나며, 그러한 믿음이 없다는 단언은 고대 부족이나, 다소 불완전하게 서술된 현대 부족에서나 나타난다. 이러한 사실을 말하는 것이 종교 기원의 문제에 대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간단히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만약 비종교적인 야만인이 존재하거나 존재했다는 사실이 증명된다면, 이것은 문화의 종교 단계가 도달하기 이전의 인류의 상태를 표현해주는 것이라고 주장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제시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앞서 보았듯이 문제가 되는 비종교적인 부족의 존재에 대한 주장은 흔히 잘못되고 포괄적이지 못한 자료에 근거를 둔 것이기 때문이다. 현시점에서 너무 미약해서 제대로 도와줄 수 없는 아군을 저버린다고 해서 인류의 종교 사상의 자연적 진화에 대한 주장이 무효화되는 것은 아니다. 비종교적인 부족들은 우리 시대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이 종교 발전에 대해 결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현대 영국에서 가위나 책, 성냥이 없는 마을을 찾아낼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은 그러한 물건이 이 나라에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나 할까.

나는 여기서 애니미즘Animism이라는 명명을 통해 영적 존재에 대한 뿌리 깊은 교리를 탐구할 것을 제안한다. 이 교리는 유물론적 철학과 반대되는 영적인 철학의 본질을 구체화한다. 애니미즘은 지금은 잘 사용되지 않지만 새로운 전문용어는 아니다. 영혼 교리와 특별한 관계를 지닌 용어이기 때문에, 애니미즘은 인류가 신학적 사유를 통해 발전시킨 양식에서 취해진 관점을 나타내는데 특별히 적합할 것이다. 심령술spiritualism이라는 말이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될 수 있고 또 그렇게 사용되기도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기에는 분명히 결점이 있다. 이 말은 특정한 현대의 종파에 대한 지칭이 되었기 때문에 세계 전체에 존재하는 관점을 유형으로서 대표하는 식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영적 존재에 대한 일반 교리라는, 넓게 받아들여진 심령주의의 의미가 여기서 애니미즘에 부여되어 있는 것이다.
애니미즘은 인류 단위에서 매우 하등한 부족의 특징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로부터 상승하여, 매우 수정된 형태로 전승되면서도 깨어지지 않은 연속성을 유지한 채, 고도의 현대 문화의 와중에도 유지되고 있다. 사람들이 애니미즘에 반대하는 교리를 지지하는 곳에서, 애니미즘은 초기 문화의 하등함으로 설명되기보다는 지적 성장에서 나타난 후대의 변형, 혹은 조상의 신앙으로부터 탈선한 것이나 그것을 거부한 것으로 설명되곤 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후대의 발전이 인류의 근본적인 종교적 조건에 대한 현재의 탐구에 중요한 것일 수 없다고 설명되곤 하였다. [그러나] 사실 애니미즘은 야만인으로부터 문명화된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종교 철학의 기반이다. 얼핏 보기에 보잘 것 없고 빈약한 최소한의 종교 정의에 불과하다고 보일지 몰라도, 실질적으로 애니미즘은 충분한 정의임을 알게 될 것이다. 뿌리가 있는 곳에서 가지가 풍성하게 자라나는 법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애니미즘 이론은 두 개의 주요 교의로 나누어지고, 그 둘이 하나의 일관된 교리의 일부가 됨을 볼 수 있다. 첫째는 사후나 육체의 파괴 이후에도 지속되는 개인의 영혼soul에 관한 교의이다. 둘째는 힘을 지닌 신격의 위치까지 격상되는 다른 정령spirit들에 관한 교의이다. 영적 존재들은 물질세계의 사건을 조정하거나 영향력을 미친다고 믿어진다. 그들은 사람들과의 접촉을 유지하고 있어 인간의 행동에서 기쁨이나 불쾌함을 얻는다고 간주된다. 그들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자연스럽게, 아니 필연적으로 조만간에 경배와 속죄 행위로 이어진다. 그래서 완전히 발달한 상태의 애니미즘은 주재하는 신격들과 하위의 정령들, 영혼, 미래의 상태에 대한 믿음을 포괄하며, 이 믿음은 실제적으로 모종의 예배 행위로 귀결된다. 우리에게는 종교의 가장 중대한 부분을 이루는 종교의 중대 요소인 도덕적 요소는 하등 종족 종교에서는 사실상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은 이들 종족에 도덕적 감수성이나 도덕적 기준이 결여되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공식적인 격률의 형태는 아니지만, 이들에게는 여론이라고 할 만한 사회의 전통적인 합의의 형태로 도덕성이 뚜렷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 합의에 따라 어떤 행위가 선하거나 악하고, 옳거나 그르다고 선언된다. 이것이 말하는 것은, 고등문화에서는 긴밀하고 강력하게 나타나는 윤리학과 애니미즘 철학의 결합이 하등문화에서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종교의 순수 도덕적인 측면을 다루지 말 것을 제안한다. 우리가 연구해야 할 것은 믿음이 이론에 해당하고 예배가 실천에 해당하는, 동서고금에 걸친 철학을 구성하고 있는 세계의 애니미즘인 것이다. 지금까지 이상하게도 저평가되고 무시되었던 자료들에 대한 연구를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내게 주어진 임무는 하등 종족의 근본적인 애니미즘을 될 수 있는 대로 명확히 하는 일과 미약하나마 고등한 문명지역에서 그것이 어떻게 진행되었나를 추적하는 일이다. 이 지점에서 이 연구가 수행되는 데 중요한 두 조건을 말하고자 한다. 첫째, 종교 교의와 실천의 연구에 대해서 말하면, 그것들은 초자연적 도움이나 계시 없이 인간 이성에 의해 고안된 신학 체계에 속한 것으로 다루질 것이다. 다른 말로 자연 종교의 발달로서 다루어진다는 것이다. 둘째, 야만인과 문명 세계의 비슷한 관념이나 의례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서 말하면 다음과 같다. 하등 종족의 교리와 제의에 대해 상세하게 말하고 간혹 특별한 이유에서 고등 국가의 연관된 교리와 제의를 언급하기는 하지만, 기독교의 철학과 신조와의 연관을 암시하는 문제를 자세히 다루는 것은 나의 작업 범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원시 문화에 대한 직접적인 작업 범위를 넘어서는 그러한 적용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용어로 간단히 언급되거나 가볍게 비유로 다루어지거나 특별한 언급 없이 당연하게 주어질 것이다. 수준 높은 독자들이라면 신학에 대한 일반적 함의에 대해 연구할만한 정보를 갖고 있을 것이며, 더 전문적인 논의는 전문 신학자들의 몫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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