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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5

1890년 중국 선교사들이 벌인 제사 관련 논의 1890년 상하이에서 열린 선교사 회의에서는 이전과는 달리 제사 문제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다음의 마틴의 글이 그것이다. W. A. P. Martin, "The Worship of Ancestors: A Plea for Toleration," (American Presbyterian Mission Press, 1890): 619-31. 뒤이은 블로젯의 글은 마틴에 대한 반대 입장이다. H. Blodget, "Attitude of Christianity toward Ancestral Worship," (American Presbyterian Mission Press, 1890): 631-54. 이어서 다른 선교사들의 토론이 진행되었다. 대부분 제사 용인에 대한 반대 입장이다... 2010. 5. 8.
Yates, "Ancestral Worship" 1877년 중국 선교사 협의회에서 발표된 선교사 예이츠의 글로, 제사를 엄격하게 반대하는 당시 중국 개신교 선교사들의 입장이 잘 정리된 글이다. Yates, A. S. B. C., "Ancestral Worship", , (Presbyterian Mission Press, 1878). 2010. 5. 8.
주재용, <先儒의 天主思想과 祭祀問題> 주재용, (경향잡지사, 1957). 가톨릭 교회 입장에서 제사 문제를 정리한 1950년대 글. 제사는 지내는 것은 극단적인 효의 실천으로만 간주되기 쉽지만, 저자의 입장에서는 유고의 오륜(五倫)을 지키는 것은 하느님을 섬기는 것에 연결되기 때문에 결국 제사는 하느님으로 향한 것이라는 결론으로 유도된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제사를 이단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단이라 함은 천주에게 드릴 양식을 부적당한 방식으로, 혹은 천주가 아닌 타자에게 바쳐, 피조물을 마치 천주처럼 섬기는 것을 말하는데 제사는 하느님에게 향한 것이기 때문에 이단은 아니라는 것이다. 제사에서 섬기는 것은 하늘이지 부모가 아니다. 이러한 점은 고대의 순수 제사 전통에 잘 드러난다고 주장된다. 다만 제사를 확립한 공자의 잘못은, 하늘에 대한.. 2009. 2. 11.
개신교와 제사문제 개신교와 제사문제 18세기 말, 천주교라는 새로운 사상이 민중들 사이에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면서 ‘진산사건’에 비롯되는 제사문제가 야기되었다. 이렇듯 새로운 사상, 타문화의 유입・수용과정에서는 고유 전통이나 민족 감정과의 갈등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 뒤 다시 조선에서 제사문제가 큰 논란이 된 것은 20세기 초, 즉 일제 강점기이다. 이때는 일찍이 천주교를 민중 스스로가 수용하고 국가권력에 의한 탄압이 가해진 것과 달리, 일본의 국가권력에 의해 신도(神道)가 장려되는 과정에서 갈등이 일어난 것이었다. 이 시기의 제사문제를 논하려고 할 때, 키워드가 되는 것으로서 1) 조선총독부에 의한 포교규칙 및 신사사원규칙의 발령, 2) 동아일보에서의 논쟁과 삼종신기 모독사건, 3) 신사참배의 거부와 수용 등을 들을.. 2007. 5. 30.
제사 문제 자료 1. 총독부 시정 연감 중 "제사조" 91년에 국립국학원에서 단행본으로 출판한 게 있어서 그걸 참조하렵니다. 2. 韓晳曦(한석희) 저 『日本の朝鮮支配と宗教政策』 여기에 김승태 논문에 나오는 동아일보 기사(삼종신기 숭배 비판)와 관련해서 신사참배 강요와 기독교인들의 거부 반응, 운동에 대한 기술, 그리고 1915년에 공포된 "포교 규칙"의 원문이 나옵니다. 당시의 시대적 맥락을 아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3. 김승태 논문에 기재된 동아일보 기사. 그외 연람이 가능한 당시 동아일보 기사. 2007. 5.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