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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_자료/문헌

"혈분경"

by 방가房家 2023. 4. 17.

동아시아 불교 전통에 <혈분경血分經>이라는 경전이 있다. 혈분血分은 출산 때 피를 받는 그릇에서 온 말이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여성의 피가 가득 찬 연못을 뜻한다. 혈호血湖라고도 한다. 여성은 부정한 피를 가졌기 때문에 사후에 피가 가득한 연못에서 피를 마셔야 하며, 이를 부처님이 구원해준다는 내용의 경전이다. 이 경전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목련目連존자(목건련)가 부처님께 다음과 같이 여쭈었다.
제가 한 지역에 갔을 때 넓은 들 한복판에 생리혈 연못으로 된 지옥이 있었습니다. 연못은 크기가 8만4천 유순由旬이고, 그 안에는 수갑과 발목 사슬을 차고 고통을 받고 있는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이 지옥의 주인인 마귀가 하루에 세 번 와서 죄인인 여인들에게 강제로 더러운 피를 마시게 했습니다. 거부하는 사람이 있으면 쇠막대기로 내리쳤습니다. 멀리서도 그들의 고통의 비명이 들릴 정도였습니다. 나는 이 광경을 보고 몹시 슬퍼하여 지옥의 주인(옥주)에게 물었습니다. “왜 이 여인들이 이러한 고통을 받아야 합니까?” 그가 대답했습니다. “아이를 낳을 때 여인들이 흘린 피가 지신地神을 오염시켰다. 그래서 그들이 오염된 옷을 강물에 빨고, 많은 덕 있는 남녀가 그 물을 모아다가 성스러운 분을 모시는 차를 끓이는 데 사용하였다. 이 오염 행위로 인해 여인들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다음의 논문에 영어로 번역된 것을 성글게 옮긴 것이다. M. Takemi, "" Menstruation Sutra" Belief in Japan," <Japanese Journal of Religious Studies> 10-2/3 (1983): 229-46. menstration-sutra-michael-kelsey.pdf] 

 

<혈분경>은 중세 중국에서 만들어져 일본에 전해진 경전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고 한다. 중국에서 ‘여성의 피’가 출산 때 흘리는 피를 의미한 반면에 일본에서 전승되어 유행할 때에는 월경의 피를 의미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일본 연구자는 이 경전 이름을 “menstruation sutra”로 영역하였고 중국 사례를 다룬 한국 연구자는 “Blood-pot sutra”라고 영역하였다. 

 
경전에서 묘사된 혈분지옥血分地獄은 혈호지옥血湖地獄이라고도 불리는데, 일본에의 지옥도에는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내가 검색으로 찾을 수 있는 그림은 위의 것 하나이다.
지옥에서 생리(혹은 출산) 때의 피를 받아 마신다는 설정은 우리들에게 참으로 낯선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경전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효도이다. 혈호지옥에 빠져 있는 목련존자의 어머니를 구원하고자 하는 효심이 주제이며, 그것이 부처님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여성을 부정한 존재로 보는 관념인데, 이는 당시 동아시아 대중들이 지닌 통념일 것이다. 그러한 통념을 전제로 받아들인 위에 효도라는 주제와 불교식 구원론을 결합하여 이런 경전이 탄생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여성 비하가 경전의 목표라고 볼 수는 없으며 문제는 당대의 ‘깨끗함’ 관념, 여성의 피에 대한 부정 관념인 것이다.
 
이 경전의 구체적인 내용, 유통, 관련된 종교적 행위, 배경이 되는 관념 등을 이해하는 데는 다음의 상세한 연구가 절대적으로 도움이 된다. 이런 생소한 주제에 대해 좋은 연구의 도움을 받은 것에 감사드린다.
宋堯厚, "中國에서 血盆經의 전개에 관하여", <<명청사연구>> 25 (2006년): 351-81.
宋堯厚, "『血湖寶卷』의 宣卷과 그 宗敎ㆍ社會的 의미에 관하여", <<명청사연구>> 27 (2007년): 269-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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