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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_자료/문헌

유길준의 세계대세론(1883)의 종교

by 방가房家 2023. 4. 17.
학계에서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 자료가 한국에서 종교라는 단어가 사용된 첫 사례라고 생각한다. 유길준이 일본 책에서 옮겨왔을 것으로 보이는 종교론이 완전히 이해되지는 않는다. 종교에 관한 여러 견해가 들어있다. 이것이 초기 종교 개념을 깔끔하게 요약한 글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되어 실어놓는다.
 
이 글은 개화사상가 유길준(兪吉濬, 1856~1914)이 1883년에 세계정세와 문물을 소개한 글인 <<세계대세론>>의 일부이다. 종래 종교학계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종교’가 언급된 최초의 사례는 1883년 11월에 발간된 <<한성순보>> 기사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세계대세론>>은 1883년 상반기에 미국으로 출국하기 이전에 집필되었기 때문에 시기상으로 <<한성순보>>에 앞선 것으로 보이며 한국에서 종교 개념을 언급한 최초의 자료로 볼 수 있다. 이 글은 종교 간의 차이[殊異]를 밝히는 비교의 시선으로 세계 각국 종교를 서술한다. <<한성순보>> 기사의 종교 개념 역시 창간의 실무책임을 맡은 유길준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에 앞선 <<세계대세론>>에서 종교에 대한 그의 생각을 더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다.[이예안, “유길준 『세계대세론』의 근대적 개념 이해와 개항기 조선: 우치다 마사오 『여지지략』과의 비교를 단서로”, <<한국학연구>> 64, 2018, 144쪽.]
유길준은 1881년 우리나라 최초의 일본 유학생이 되어 후쿠자와 유키치가 운영하는 게이오의숙에서 공부하고 1883년에 귀국하였다. <<세계대세론>>은 일본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저술되었다는 점에서 미국 유학과 유럽 방문 경험을 바탕으로 1895년에 저술한 <<서유견문>> 내용과는 차이가 있다. 따라서 그가 세계 종교에 대한 지식을 들여온 경로는 일본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책 제목은 후쿠자와 유키치가 1882년 4월에 연재한 논설 “시사대세론(時事大勢論)”에서 따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우치다 마사오의 1882년 저술 <<여지지략(輿地誌略)>>의 내용을 발췌한 것이 대부분이며, “종교수이” 항목의 대부분은 몇몇 첨가된 부분을 제외하고는 <<여지지략(輿地誌略)>>의 교법(敎法) 항목을 발췌하거나 재배치한 것이다.[박한민, “유길준 『世界大勢論』(1883)의 전거(典據)와 저술의 성격”, <<한국사학보>> 53, 2013, 53-54쪽; 이예안, 위의 글, 143-47쪽.] 유길준은 당시 일본에서 ‘religion’의 번역어로 유통되던 단어 중 ‘교법’ 대신 ‘종교’를 의식적으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본문:
종교의 특성[宗敎殊異]
 
종교의 특성[殊異]은 국가의 이해에 관련되는 일이 적지 않다. 대체로 인간 생활의 신령스럽고 빼어난 이치를 분별해보면 정신과 형체의 크나큰 두 가지를 갖추고 있다. 종교는 정신에 속하고 기술은 형체에 속한다. 이 때문에 기술로 형체를 관할하여 다스리고 종교로 정신을 관할하여 다스린다. 형체를 관할하여 다스리려는 자는 기술을 가려 쓰는 정도에서 그치지만, 정신을 관할하여 다스리려는 자는 종교의 노예가 된다. 그래서 종교를 위해 나라를 잊어버리며 집안을 잊어버리는 데까지 이르는 자가 있다. 종교의 특성이 이 같으니 어찌 국가 이해에 관련되지 않겠는가? 따라서 간단히 말하면 각 나라에는 본래부터 전해지는 종교가 있어 교육을 힘써 장려하여 윤리와 기강을 문란하게 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각 나라는 유독 본래부터 있었던 종교를 굳게 지키고 다른 나라의 종교가 전파하는 것을 막아 자국의 인민에게 다른 나라 종교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니, 이 일이 어찌 뜻 있는 사람의 임무가 아니겠는가?
세계에 종교 종류가 열 가지, 백 가지 뿐만이 아니다. 나라가 있으면 반드시 그 나라에는 원래 전해 내려오는 종교가 있다. 간혹 그 나라에 원래부터 전해 내려오는 종교가 없고 다른 나라의 종교를 채용하여 오랜 세월이 지나 본국의 종교라 말한다. 우리나라의 유교는 중국에서 가져온 것이며, 일본의 불교는 인도에서 가져온 것과 같이 세대가 오래되고 인민이 받들어 믿게 되면 본국 종교와 다름이 없으니, 어찌 본국 종교가 아니라 하겠는가?
대개 각 종교의 가르침을 세운 본뜻을 보게 되면 선한 일을 권장하고 악한 일을 벌하는데 지나지 않다. 그런 이유로 반드시 하늘을 말하고 신을 말하여 알지 못할 까마득한 곳에 재앙과 복을 맡겨서 정하고, 인민의 착하지 않거나 의롭지 못한 행실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충(忠)이라 하고 효(孝)라 하는 윤리를 힘쓰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유행하는 것을 아래에 싣는다.
유교는 우리나라와 중국[中原] 등지에서 성행한다. 원래 우리나라와 일본 불교는 인도의 실론[錫蘭島]과 인도차이나[後印度], 중국, 우리나라, 일본 등에 성행하고 브라만교[婆羅門敎]는 인도[前印度]에 성행한다. 야소구교(耶蘇舊敎)는 또 천주교라 부르며, 신교가 유행하는 땅에 같이 유행한다. 야소신교(耶蘇新敎)는 유럽[歐羅巴]과 아메리카[亞墨利加] 두 대륙에 성행한다. 그리스정교회[希臘敎]는 러시아[魯西亞]에 유행하며 또 터키[土耳其]와 그리스 인민이 높이 받드는 자가 많다. 유대교[猶太敎]는 유럽과 아메리카[歐美]의 서양 가운데 유대인이라 부르는 인민이 이 종교를 받드니 두 대륙의 각국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을 각 나라의 인민이 매우 천대한다. 이슬람교[回回敎]는 터키와 아라비아[亞拉比亞] 등지에서 성행한다. 그밖에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작성시기: 1883년 상반기
작성자: 유길준(兪吉濬)
제목: 宗敎殊異
출처: <<世界大勢論>>, 兪吉濬全書編纂委員會編, <<兪吉濬全書>> Ⅲ, 一潮閣,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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