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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_자료/문헌

나바호족의 말의 노래

by 방가房家 2023. 4. 19.

신기루로 만든 발을 가졌습니다.
걸음걸이는 무지개입니다.
태양끈 고삐를 매고 있습니다.
심장은 붉은 돌로 되어 있습니다.
내장은 온갖 종류의 물로 되어 있습니다.
까만 비의 꼬리를 가졌습니다.
멀리서 치는 번개가 그의 귀입니다.
반짝하며 퍼지는 별이 그의 눈이 되고 얼굴의 줄이 됩니다.
뒷다리는 새하얗습니다.
밤에 구슬이 그의 입술이 되었습니다.
햐이얀 조가비가 그의 이가 되었습니다.
검은 피리가 입속으로 들어가 나팔이 되었습니다.
새벽이 그의 배가 되어, 한쪽은 하얗고, 한쪽은 검습니다.
(Sam Gill, Native American Religions, p.140)

 
말에 대한 나바호족의 노래이다. 엉성한 번역을 때문에 아름다운 느낌이 전해졌을런지 모르겠다. 나바호족의 세계관에서, 말은 태초와 연관된 중심적인 동물이다. 여기까지는 아름다운 신화 한 편 소개하는 것이었고...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신화가 사유의 대상으로 삼는 역사이다. (여기서부터 종교학은 산통을 깨기 시작한다.) 말은 나바호족에게 원래부터 있던 동물이 아니다. 약 사백년 전에 스페인인들로부터 수입된 것이다. 그 몇백년 동안 말은 나바호족에게 필수적인 운송수단이 되었고, 우주론에서도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메리카 토박이들에게 위협이 되었던 유럽의 영향이 이처럼 신화의 형태로 남게 되었다. 신화는 태초를 이야기하지만, 현실을 재료로 한다. 이것은 종교학자 조나단 스미스가 누누이 강조하는 테제이다. 신화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성찰의 결과물이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예가 있다. “옛날 옛날에,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라는 옛이야기 도입부 말이다. 굉장히 오래된 옛날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 담배는 17세기 초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태초를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발밑엔 근대의 현실이 자리한다. 아직도 우리에겐 역사와 신화가 대립적이라는 근대의 논리가 강하게 뿌리박혀 있고, 이런 자료들을 만나도 그냥 지나치기 쉽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에 대한 성찰의 흔적은 신화에서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것이다.
(위의 사진은 나바호족의 모래 그림으로, 태초의 창조를 그린 것입니다. 모래 그림은 드림캐처와 함께 대량생산해서 많이 팔리는 나바호 상품 중 하나죠. 제 집에도 냉장고 자석으로 되어있는 저 그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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