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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_자료/문헌

포동 당제에서 새로 배운 말들

by 방가房家 2023. 4. 16.

비교적 잘 연구되고 보존된 사례인 시흥시 포동 당제에 대해 소개하는 발표를 듣던 중에 새로 익히게 된 말들을 기록해둔다. 아래 인용문들은 “시흥 새우개 당제 학술조사 보고”(이용범)에서 뽑아온 것이다. 삽입된 관련 사진들은 구형찬씨가 직접 촬영하거나 이전 조사작업으로부터 얻은 사진을 제공해주어 실을 수 있었다.

길지: 
“당집 내부에는 당신도나 신상은 없다. 대신 뒷벽에는 옷을 거는 횃대와 비슷한 것을 여러 개 설치하여 각각에 신의 의복을 의미하는 백지를 걸어두었다. 이 백지를 길지라 한는데, 당제 때는 신의 옷을 새로 해 입힌다는 뜻에서 새 길지를 걸어두고, 이에 대해 배례를 한다. 그러므로 길지는 신체(神體) 자체는 아니지만, 신체의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무교에서 신이 어떠한 모습으로 드러나는가에 대해서는 조사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어찌되었든 백지 자체를 신체로 모시는 것은 나로서는 처음 보았다. 그런데 종이로써 신을 상징하는 것은 경기도와 강원도 당제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추가:
그리피스의 기록을 보다가 종이 신격을 언급하는 부분을 보았다. 길지 풍습에 대한 기록임을 이제야 알 수 있었다. 1884년에 출판된 책인데, 그 이전의 어떤 보고를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출처는 밝혀져 있지 않다.
"새로운 개항장인 인천에서 멀지 않은 한 마을의 사당은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중앙에는  낮은 솔숲이 있고, 아홉 채로 된 마을로부터 200야드 떨어진 언덕 위에는 성스러운 구조물이 있다. 이것은 일본의 신도(神道, 신들의 길 혹은 가르침)와 비슷한 토착 종교의 상징이다. 이 건물은 원뿔형 초가지붕, 9피트의 높이와 같은 직경의 바닥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꼰 지푸라기로 만들어지고 바닥엔 출입을 위해 네모난 구멍을 낸 오래된 벌집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 한국 사원의 입구는 3피트 높이의 삼각형이고 동쪽을 향하고 있었다. 안에는 우상, 향, 그림이 없었다. 천정은 가로놓이고 뒤쪽으로 기울어진 거친 들보로 짜여 있고, 후면으로부터의 평균 높이는 4피트 가량 되었다. 입구를 향하면서 서까래에 붙어있는 뒤쪽 벽에는 흰 종잇조각들의 묶음이 걸려있었다. 이것은 틀림없이 일본 사원의 고헤이(ごへい), 즉 흰 종이가 달린 나무막대기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종잇조각에는 신들의 영이 거한다고 생각된다. 보통 사람이 이 사당에 들어가면 죽는다고 믿는다."
Griffis, William Elliot, <<Corea, Without and Within>> (2nd ed.; Philadelphia: Presbyterian board of publication, 1885[1884]), 163-64.
 
조라치성: 
“[2006년] 3월 6일 저녁 9시 30분[1979년에 새벽 2시였음] 경에 준비된 조라를 먼저 당집 안에 모셔진 신들에게 바치고 당주와 통장이 2번 절을 한다. 당집 밖으로 나와 당집 마당에 짚 주저리 신체를 하고 있는 터주에게 역시 조라를 바치고 절을 2번 한다. 이때 자른 제물을 올리지 않고 조라만을 올린다. 당 밖의 은행나무와 느티나무에 대해서도 조라는 바치나 절을 하지 않고 축원하면서 조라를 버리기만 한다.”
보통 ‘조라’는 술을 가리키는데 시흥 포동의 경우에는 감주(식혜)를 사용한다고 한다.
피고사:
“제일 당일에 본격적인 제의가 이뤄진다.……피고사는 낮에 드리고 메고사는 밤에 드리는 차이가 있다. 피고사는 새우개 당제의 주 제물인 소나 돼지를 잡아 그 피를 선지로 만들어 신들에게 바치는 제의이다. 이처럼 피고사가 새우개 당제의 중요한 절차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당집에서 직접 짐승을 잡는 것은 필수 과정의 하나이다.”
제사가 피고사와 메고사로 나뉘는 것도 흥미로웠다. 특히 선지를 드리는 제사는, “어느 누구도 피를 먹어서는 안된다”며 피를 절대적으로 부정하게 보는 구약 전통과 대조되는 내용이어서 눈길을 끈다. 사진은 돼지를 잡은 후 처리하는 과정인데, 피를 따로 모아 피고사를 준비한다.
부정:
“‘부정’은 굿의 처음으로서 부정을 제치는 절차이다. 부정거리 진행에는 별도의 비용이 필요하지 않다. 다른 악기는 울리지 않고, 장구만 치면서 술 한 잔 따라 놓고 맑은 물(청수)와 잿물을 북어로 찍어서 뿌리며 소지(백지)를 살러 부정을 가시는 것이 이른바 부정거리의 내용이다.”
부정을 ‘제친다’는 표현을 새로 배움.

이하 무교 의례 절차들에 대한 새로운 어휘들. 표현이 재미있어서 메모해 둠.
터자비(터벌림, 터잽이)
화랭이들이 한사람씩 꽹과리를 치며 장고와 징에 맞춰 춤을 추면서 자신의 재능을 보이는 것이다. 흔히 터벌림은 손굿이나 군웅굿과 같은 큰 거리를 진행하기 전에 굿처를 벌여놓는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시루돋움:
‘시루고사’와 ‘시루돋움’은 동일한 절차이다. 꽃반, 술 한자, 북어, 소지용 백지와 함께 ‘불 밝히기용 쌀’ 한 사발(부가기 한 사발)이 놓인 시루를 놓고서 마을과 주민의 평안을 비는 절차이다.
 
똘똘이:
‘똘똘이’는 ‘돌돌이’로서 화랭이가 마을 장승과 우물을 돌면서 간단한 축원을 하는 절차를 말한다. 새우개의 경우 무녀와 화랭이가 두 패로 나뉘어 동편ㄴ과 서편에서 장승과 우물에서 고사를 지낸 다음 동네 가가호호를 돌았다. 각 가정에서는 소반에 쌀을 담은 꽃반을 차려 축원을 받고 음식과 술을 대접한다. 이렇게 동네의 여러 집을 양쪽에서 돌다가 당마당에서 마주치게 되는데, 그때부터 본격적인 굿이 시작된다.
 
공거리/공구리:
이 절차는 무당들이 굿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동네 노인이나 동네 사람들이 무감을 서거나 춤을 추면서 노는 과정이다. 무당이나 화랭이들이 주재하는 절차가 아니어서 ‘공거리/공구리’라 명명한 것으로 짐작된다.
 
양푼띄기:
‘양푼띄기’는 1950년대 후반 도당굿에 새롭게 나타난 절차이다. 이것은 굿의 거리와 거리 사이에 마을주민들의 재수를 알아보기 위해 행해진다. 무당이 큰 놋양푼을 입에 물고 있으면 주민들이 그 속에 돈을 넣고 무당의 입에서 양푼을 떼어본다. 사람들이 떼려고 해도 잘 떨어지지 않는데, 양푼이 떨어지면 재수가 없다고 무당은 굿을 하라는 공수를 준다.

포동 당집의 옛모습과 지금 모습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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