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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얻어배우는 것

비엔나 학회(AKSE) 후기

by 방가房家 2023. 5. 19.

제26회 유럽 한국학회(AKSE)에 참석하러 비엔나에 와 있다. 이제 이틀간의 느낌을 간명하게 정리해보고자 한다.

 
1.
학회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의 느낌은 정확하게 이랬다. “Welcome to the jungle!” 
학자들은 일인 기업이다. 지 혼자의 힘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공교롭게 나 혼자 참가하게 되어 그런 느낌이 더 강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만나자마자 동료 학자들과 웃고 떠들기에 여념이 없다. 다행히 아는 학자 몇 명이 있어 인사를 나누기는 했지만 멀거니 구경하는 시간이 더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학회는 학자들이 거래하는 장터이다. 서로 간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나 계획을 교환하고 흥정하는 곳이다. 나는 이 장터에 내보일만한 물건을 만들어오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학자여야 했다. 어느 분야가 내 전공이고 요즘은 어떤 주제에 관심이 있어 어떤 작업을 진행 중인지 말할 수 있어야 했는데, 별로 그러지 못했다. 먹고 살기 바빠 논문 쓸 연구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는 우는 소리를 할 수는 없지 않는가.
학회가 이런 곳인지 예상하지 못했기에(내가 경험한 국내 학회나 심포는 독백이지 대화가 없었다) 내 발표 준비도 미진했다. 새로 작업하는 것의 진행상황을 보여주고 토의하는 것이 아니라, 박사논문 요지나 요약하는 발표였기 때문에, 지금 하고 있는 것으로 내놓기에는 부족했다. 
내가 느낀 것은 내가 이번에 이 모임에 초대된 것이 행운이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행운이 여기까지라는 것은 명확하다. 준비되지 않는다면 다시 이 자리에 오기 쉽지 않을 것이다. 스타 학자들을 구경하는 것은 한 번이면 족하다. 다음에는 그들에 끼어들 자세가 되어야 할 것이다.
 
 

2. 

“요즘 학문 트랜드가 어떤 거지?”
“경계, 공간, 물질, 젠더……”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뭐 한 바퀴 돌아서 같은 얘기 하지 않겠어?”
 
멋있는 친구들이 이런 대화를 나눈다. 이들은 이런 트랜드에 맞추어 한국종교의 자료들을 사용한 논문을 발표한 학자들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최근의 내 관심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대부분 해외 학계의 흐름을 어설프게 따라간 것임을 느낀다.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학문적 유행을 논하는 이런 대화는 미국 대학원생들이 나눌 법한 성격의 것인데, 한국어로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어쨌거나 열심히 연구하는 학자들의 작업 상황을 들으면서 학문적 유행이라는 것을 강하게 체험한다는 것, 그것이 학회의 존재 이유일 것이다. 
 
이하는 여러 패널에 들어가 그 자리에서 메모한 것들을 나열한 것이다.
 
3.
“누가 불교에 속한 자들인가/오늘날 불자는 어떤 사람들인가?”(Who is a Buddhist?)라는 주제의 패널. 박노자 선생이 사회자를 맡았다.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연구자들을 느끼는 자리였다. 솔직히 발표 내용을 속속들이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발표 태도와 진지한 분위기로 전달되는 바가 있다. 새로운 학문적 조류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감이 온다.
 
제1발표는 조선시대 재가승 부락(在家僧村)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며 한국 불교에 포함되지 못했던 존재들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학문적 해석을 다룬 것이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라 소개 자체로 꽤 충격적. 제2발표는 불교와 결혼의 관계라는 주제가 현대 불교에서 어떻게 전개되는지 진각종을 다루면서 조명하였다.
제3발표는 대형 도심사찰(봉은사)의 불자 조직화가 어떻게 전개되며 대형 교회의 운영방식이 불교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명품 불자’라는 표어가 소개되기도 하였다. 기독교의 ‘번영 신학’이 제기하는 물음은 한국 불교에서도 심각하게 제기된다. 도대체 시험에서 잘 되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과 어떤 상관이 있는가? 제4발표는 최근 한국 불교계의 국제 선원 조직과 대중화 과정에서 간화선이 어떻게 재조직화되는지를 다룬다. 발표가의 문제의식은 원래 재가자를 위한 것이 아닌 간화선 전통이 이 대중화 과정에서 어떻게 변모하는가에 대한 것. 
 
4.
공교롭게 내가 비교해서 서평(한국종교사에 대한 책)을 했던 두 선생이 조선 종교사를 놓고 논쟁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이 패널에서 두 발표를 메모해둔다.
돈 베이커 선생, “신유교 흥기와 불교의 사사화”
베이커 선생의 장점은 학계의 상식에 따라 사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그는 밋밋하게 이야기하는 법이 없기 때문에 논쟁과 생기를 불러일으킨다.) 그는 이성계가 ‘유교인이자 불교인’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조선 왕조가 초기부터 불교를 어떻게 이용하고 꽤 긴밀한 관계를 가졌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중에는 ‘지원을 중단’하였다. 그는 강조한다. “(천주교의 경우와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에) 탄압persecution이 아니었다.” 그는 (불교의) 탄압을 학문적 신화라고 부르고 다만 조선조의 의례적 헤게모니에 의한 제어와 그에 대한 반응이 있었음을 강조한다. 
 
피에르-엠마누엘 루, “경신년(1800)의 대담한 개종자들”(제목의 센스!)
경신회는 중국에서 주문모에 의해 창설된 명도회(회장 정약종)와는 다르다는 내용.(한국의 한 자료에서 이 둘을 부정확하게 동일시한 것이 논문의 동기가 됨.) 경신회는 한국의 평신도들에 의해 창설되었으며 김건순을 회장으로, 강이천을 임원으로 두고 30명 이상으로 구성된 단체(내가 특이한 천주교인으로 알고 있는 두 사람이 주동자라는 점이 눈에 띈다.). 경신회규범과 경신회서라는 문헌 자료가 있음.
 
5. 
매끈한 미국식 발표를 하나 듣고 묘한 느낌이 들었다. 반박할 거리는 없으나 뭔가 상쾌한 맛은 없다. 주목을 유도하는 오프닝멘트 – 현실감 있는 자료 제시 – 삼빡한 이론을 통한 결론 제시. 뭔가 느끼하다.
“너의 자료는 무엇이며, 너의 방법론은 무엇이냐, 누구의 이론을 사용하느냐?”
미국 대학원에서 교육받는 방식이다. 이렇게 훈련받은 발표자들은 매끈하게 자신의 이론을 정리하여 제시한다. 좋은 교육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꼭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이러한 교육은 방법론 뽑아내기 위한 메마른 독서를 강요하는 것이 아닐까? 내 경우에 좋은 책을 읽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통찰을 뽑아내기 위해서이다. 그게 방법론과 일치하는 걸까? 방법론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해봐야겠다.
 
 
6.
이 패널은 조선 성리학자의 인간적인 면을 주제로 한 것 같다. 외국인 학자의 장점은 성현에 대한 존경심이 결여되어서 우리로선 생각 못한 흥미로운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장점이 충분히 발휘되었는지는 못 들은 부분이 많아 잘 모르겠다. 마지막의 조광 선생님의 발표는 개인 발표.
 
Diana Yuksel, “Toegye as a Teacher”
외국 학자의 독특한 접근(문제 제기): 딱딱한 일반적 인식과는 달리 퇴계의 인간적인 이미지에 주목. 우계 성혼의 글에서 “fascinated with 퇴계”라는 표현에 주목하면서 발표를 시작한 것이 인상적이다. 
선생님으로서, 그리고 단순한 선생님을 넘어 도道를 전하는 성인聖人의 모습으로서의 퇴계를 조명한 발표.
 
Vladmir Glomb, “The Dark Side of Yulgok”
율곡 사후 문묘에 배향되는 문제로 논쟁이 있었는데, 이 때 반대자들의 주장을 자료로 율곡의 문제점을 논한 발표였는데 내용은 잘 듣지 못했다.
청중이었던 도이힐러 선생의 코멘트가 인상적이었다. ‘도덕성morality’에 의한 판단은 주관적인 것(그리고 현재의 문화적 관점을 반영하는 것)이며 흔히 정치적으로 사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것.
 
조광, “19세기 전반기 조선 유교사회에서 그리스도 혼인의 의미”
천주교의 일부일처제가 초기 신자들에게 엄격하게 수용되었다는 발표. 조선 사회에서는 축첩과 이혼(불효의 경우에)이 유교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용인되었는데, 천주교 교리서, 시노드 결정, 그리고 실제 공동체 운영에서는 일부일처제 원칙이 철저하게 지켜졌다. 결혼을 성사로 보는 천주교의 입장이 조선 사회에서 어떻게 충동하였는지 잘 정리한 발표였다. 처음 뵌 조광 선생님의 내공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결론의 한 부분: 천주교인들은 “수신修身의 차원에서 강조되고 있던 천주와의 대면을 제가齊家의 일부일처제의 준용으로 연결시켜서 이해해 나가고 있었다.”
 
7.
조선후기 유불관계를 새로 조망하기 위한 패널.
김대열 선생이 새로운 연구 성과들을 정리하고 방법론적 제안을 제시한 발표를 하였고, 조은수 선생이 율곡의 저술(경연일기)에서 나타나는 왕-대신의 논쟁과 불교의 관련성에 대한 발표를 하였다. 사회자 얀닉 선생은 조선 시대 종교사를 연구할 때 유교와 불교를 따로 연구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 현재 학계의 흐름이라고 정리하였다. 정확하게 무엇을 불교라고 부를 것인가, 조선 왕정의 성격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이어졌다.
 
김대열, 조선 후기 유불 관계에 대한 새로운 성찰에 대한 발표
종전 연구들은 유학자와 불교와 관계를 개인적 성향으로만, 사상적으로만 다루어 왔지만, 2천년 이후의 연구들에서 다음과 같은 면들이 지적되고 있다.
-역사적 맥락: 왕실의 불교 비호, 양반 부녀자의 불교, 승병의 공헌 인정, 불교계의 부흥, 열린 공간으로서의 사찰, 여러 계층 간의 문화적 교류
-개인적 배경(유가 지식인과 불가의 접촉): 정치적 배제, 가족 관계, 글을 부탁할 때 등
비교조주의적 태도, 불교의 근원적인 가치 인정, 수양 방식의 하나로 인정, 불교의 내재화 
발표자의 제언: 검토해야 할 방대한 문집들이 있음. 지식인literati 개념을 확대할 것(몰락 양반, 평민 지식인). 종교 개념 재검토하고(자기 고백에 기반한 종교, 일인 일종교 식의 개념으로는 곤란). 종교문화 개념 도입하여 지식, 표상세계 등으로 서술 대상을 확대할 것. 접촉 지점, 상호관계의 요인과 유형. 일생 전반에 거쳐서 관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검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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