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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얻어배우는 것36

신, 궁극적 실재의 방편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신을 믿는 것”이라고 종교를 정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것이 기독교 위주의 종교 개념이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런 정의는 계속 상식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신을 강조하는 기독교식의 정의를 교정하는 가장 좋은 사례는 뭐니 뭐니 해도 불교이다. 유럽의 불교인들은 서구적인 종교 개념의 문제를 가장 민감하게 알아차린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독일의 불교”라는 김명희 선생님의 발표의 한 대목이다. 달케(Paul Dahlke, 1865-1928)는 종교가 인격신에 대한 믿음과 동일시되면 종교로서 불교를 정의할 때 불교가 ‘신 없는 종교’의 구조를 갖게 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는 점을 문제시하였다. 그리하여 달케는 종교는 ‘신에 .. 2023. 4. 27.
생활난의 원인을 말해주는 창세기 일본 그리스도인과 ‘생활’이라는 특이한 주제에 끌려 들어갔던 발표회. 일본 여성 근대교육가로서 유명한(유명하다는 것을 알게 된) 하니 모토코(羽仁もと子)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가계부라든지, 가정잡지, 교육 등 다소 독특하면서도 우리 생활과 무관하지 느껴지지 않는 흥미로운 내용들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내게 흥미로운 것은 그녀의 ‘타이트’한 생활 관념이 기독교 신앙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 발표자는 하니 모토코의 신앙이 ‘독특하다’고 표현하였는데, 그 독특함은 창세기에 대한 그녀의 독창적인 해석에서 잘 드러난다. 그녀가 창세기에서 읽어내는 주제는 ‘진보를 위한 싸움’이다. 그녀에 따르면 태초에 아담과 이브에게 요구되었던 것은 “영성의 눈을 떠서 자신들의 ‘생활’을 돌아보고 어떻게 하면 하느님 아버지.. 2023. 4. 27.
'천도'와 기독교 며칠 전 참석한 포럼에서 와타나베 교수의 발표 중 메이지 시대 지식인의 재미있는 입장을 소개한 것이 있어 간략히 옮겨놓는다. (한편 와타나베 교수는 답변하는 도중에 동아시아인들이 동도(東道)를 이야기한 순간, 그것은 유교에서 이야기하는 보편적인 도(道)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였는데, 좋은 가르침이었다.) 1. 메이지 초기 일본 지식인들 중 일부는 기독교가 ‘문명개화,’ ‘문명,’ ‘개화,' 즉 ’civilization'의 일부를 이룬다고 생각했다. 2. 나카무라 마사나오는 “우리나라 인민으로 하여금 그 성질을 개조하게 하여 구미 제국의 인민의 고등한 수준과 같게‘ 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기독교의 보급을 주장한다. 현재 구미 번영의 근간은 기독교이며 따라서 우선 천황이 세례를 받아 친히 교회의 주(主)가 되.. 2023. 4. 25.
청일전쟁 때 일본 불교 많은 사람들이 종교가 전쟁을 말리지는 않을망정 앞장선다는 비판을 한다. 그런 예는 세계 도처에 수도 없이 깔려있지만,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이슬람교와 기독교이다. 요즘에는 부시 덕분에, 그리고 보수 개신교단의 집회 덕분에 우리나라에서 기독교의 전범 이미지가 증대되는 것 같다. 친구들 중에는 종교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운 것은 유일신 종교들이 판을 쳐서가 아니냐고 하는 이들도 있다. 불살생의 불교가 받아들여진다면 세상이 조용해 질 것 아니겠냐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종교에 있어서의 본질적인 속성을 이야기하는 것에 반대한다. 본질, 속성, 정수. 그런 것을 믿지 않는다. 심심풀이 이야기에서나 가능한 논의라고 생각한다. 종교와 폭력에 대한 .. 2023. 4. 20.
김인서를 다룬 논문들 한국 기독교에 관련된 공부를 하다보면 “선교사 혹은 신학자 누구의 신학 사상(혹은 어쩌구저쩌구론) 연구”라는 형식의 논문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신학교나 기독교 관련 역사학계에서 그런 식의 논문이 많이 나온다. 특정 인물의 신학 사상을 다루는 논문들을 만나면 나는 일단 긴장을 하게 된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첫째, 그런 제목의 글은 논문이라는 형식의 학술 저작을 생산하기에 편리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한 인물에 대한 자료 죽 찾은 뒤, 대략 체계를 잡아서, 선행 연구들과 비교해 가며 나름의 평가를 약간 덧붙이는 식으로 서술하는 이런 글쓰기는 비교적 편한 논문 만들기라고 생각한다. 해당 인물의 저작 몇 권을 읽고, 관련된 평을 찾아 읽는 식으로 자료조사의 방식이 어느 정도 뻔하다. 그리고 글쓰기의.. 2023. 4. 19.
한국인의 종교 경험 어제 하루만에 광주에 갔다왔다. 전남대에서 열린 한국종교학회(http://www.kahr21.org)에 참석하였는데, 주제 발표인 차옥숭 선생님의 “종교경험과 종교연구”는 참으로 아름다운 발표였다. 얼핏 보면 거의 종교인들과의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는 이 논문은 그저 “해석 이전”의 자료들의 나열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문에서 그런 오해의 잘못이 여지없이 지적된다: “종교 경험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이미 체험 그 자체가 아니며, 그 체험을 나름대로 해석해서 언어로 표현해낸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언어화된 형태로 갖고 있는 자료는 이미 해석이다. 학자들이 생각하는 해석은 사실 해석된 것을 다시 해석하는 일이다. 손수 인터뷰한 내용들에서, 한국 사람들이 어떠한 구체적 삶 속에서 자신의 종교 경험.. 2023. 4.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