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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얻어배우는 것

김인서를 다룬 논문들

by 방가房家 2023. 4. 19.

한국 기독교에 관련된 공부를 하다보면 “선교사 혹은 신학자 누구의 신학 사상(혹은 어쩌구저쩌구론) 연구”라는 형식의 논문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신학교나 기독교 관련 역사학계에서 그런 식의 논문이 많이 나온다. 특정 인물의 신학 사상을 다루는 논문들을 만나면 나는 일단 긴장을 하게 된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첫째, 그런 제목의 글은 논문이라는 형식의 학술 저작을 생산하기에 편리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한 인물에 대한 자료 죽 찾은 뒤, 대략 체계를 잡아서, 선행 연구들과 비교해 가며 나름의 평가를 약간 덧붙이는 식으로 서술하는 이런 글쓰기는 비교적 편한 논문 만들기라고 생각한다. 해당 인물의 저작 몇 권을 읽고, 관련된 평을 찾아 읽는 식으로 자료조사의 방식이 어느 정도 뻔하다. 그리고 글쓰기의 측면에서도 다른 논문의 순서 참고하며 비교적 쉽게 글의 짜임새를 갖출 수 있다. 논문 지도도 쉽고, 쓰는 입장에서도 편하기 때문에 이런 논문들이 많이 권장되고 생산되는 것 같다. 하지만 읽는 입장에서 볼 때는 특정한 테마를 잡아 쓴 글보다는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글들은 대개 문제제기도 게으르다. “누구누구는 이러이러한 점에서 중요한 사람인데, 아직 그의 이러한 측면은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했다든지, 연구가 아직 많지 않다든지...”하는 식의 서문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글을 접하면 일단 소비자의 입장보다는 생산자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글이 아닌가 하는 의혹부터 갖는다. (물론 많은 예외들이 있다. 하지만 석사논문의 경우라면 십중팔구이다. 그리고, 철학이나 사상사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를 것이다. 지금 내가 얘기하는 부분은 역사적 인물을 신학화하는 논문들에 대해서이다.)

둘째, 그런 제목의 글은 특정 인물을 추켜세우는데 편리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신학을 다루는 논문이라면 더욱 그런 문제가 결부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평범한 이야기라도, 아무리 개뼉다구 뜯는 이야기라도, “누구의 **적 신학”이라는 레테르만 붙이면 그럴 듯한 ‘사상’이 된다. 근사한 작명만으로도 하나의 신학을 태동시키는 일은 흔하다. 그래서 교회나 기독교 재단의 지원을 받는 논문이 그곳에서 원하는 인물을 재조명하는 경우는 흔하다. 꼭 그런 경우가 아니어도, 미화시키는 의도가 없다 하더라도, 특정 인물의 사상을 다루는 논문은 그를 의미있는 인물로 만드는 구성을 따르기 마련이다. “누구의 무슨 신학(사상) 연구”라는 제목 단 연구치고 그 사람을 비판하는 논문 별로 없다. 논문의 형식이 글의 방향을 얼추 결정하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글을 접하면 일단 글이 학술적인 접근을 취하고 있는지를 유심히 살피게 된다.

한 인물을 보는 것은 그 시대를 살피는 훌륭한 통로이다. 예컨대 윤치호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는 한국의 근대사를 보는 하나의 시선을 얻는다. 하지만, 어느 인물의 신학적 고찰의 경우 지금의 신학적 이해가 논문에 반영되기 때문에 까다로운 글읽기가 요구되기도 한다.
전형적인 예라고는 생각되지는 않았지만, 오늘 어느 논문을 하나 읽고 흥분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1930년대부터 활동한 김인서라는 개신교인이 있다. [신앙생활]이라는 잡지를 간행하면서 많은 글을 남긴 인물로, 보수적인 입장을 유지한 인물이기 때문에 지금 한국 개신교회의 입맛에 맞는 인물이다. (내 개인적인 판단이다.) 정치적인 활동(민족주의 운동) 비판하고, 당시 교회에서 이단으로 비판받은 사람들 열심히 비판하고, “오직 복음으로”를 외친 사람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좋게 보자면,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한국 교회를 지킨 인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 “김인서의 복음주의적 민족주의”라는 발표를 들은 적이 있다. 여러 가지로 속이 불편했던 발표였다. 일단 복음주의라는 명칭. 대단히 복잡한 사연이 있는 단어이지만, 일단 요즘엔 (극단적이지는 않은) 보수 개신교라는 뜻으로 통용되는 것 같다. 근본주의라는 말이 불편해서 듣기 좋은 말로 보수적인 주류 기독교를 칭하는 말이 되어 버렸다. 애매하고 사용범위가 넓은 말이다. 발표에서는 용어에 대한 성찰 없이 마구 쓰인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민족주의라는 말. 사실 많은 한국 개신교 연구자들은 ‘민족주의’를 절대 가치로 생각한다. 일제시대 때 좋은 한국 기독교인이기 위해서는 민족주의자이어야 한다. 그 발표는 역시 민족주의 집착을 보여준다. 사실 김인서가 한 말은 “민족보다는 하나님의 뜻이 우선”이라는 식의 이야기인데, 이걸 ‘복음주의적 민족주의’라고 이름붙인다.

 

그런 기억을 갖고 있는 내가 오늘 읽은 글은 김인서의 만주선교론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이것이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만주선교는 한국의 해외 선교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에 지금의 교회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우리나라 개신교회는 한국이 독립하기 이전인 1930년대부터 만주를 시작으로 해외선교를 시작하였다. 물론 일차적인 대상이 만주의 우리 교포들이기 때문에 순수한 해외 선교와는 좀 다르다. 어쨌거나 김인서는 그에 대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사람이다.
내가 보기에 김인서의 선교론에는 종교인 특유의 과대망상이 들어가 있다. 매우 신학적인 역사관이 바탕에 깔린 현실 인식이다. 그에게 만주 선교는 단순히 동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중국 선교의 시작이다. “예수의 도로 만주에 터를 닦자”고 주장한다. 영국인들은 아편전쟁을 일으킨 더러운 놈들이기에 ‘깨끗한’ 우리가 선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만주전도의 大急을 告하는 余輩는 한갓 조선인 榮枯의 문제만을 云謂함이 아니요, 大東전도의 사명이 또한 우리에게 있음을 아는 때문이다.……서양인이 아세아 전도의 적임자가 아니매 大東 전도의 사명이 조선 사람에게 있는 것을 다시금 감사하게 된다. 최초 세계 전도의 대사명이 大로마제국에 있지 아니하고 小邦 유대人에게 있었던 것을 알진대 금일 大東전도의 사명쯤이야 구미인에게 의뢰할 것이 아니고 조선인의 어깨에 지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조선 그리스도 청년들은 大東 전도의 대사명에 출동하사이다.
당시의 민족 역량이나 현실의 관점에서 보면 기가 막히는 얘기다. 1930년대가 조선의 청년들이 동아시아 전도(김인서는 "대동"이라는 일본식 표현을 쎴다.)에 전력을 다해야 하는 시기인지, 의심스럽다. 그 시대를 살지 않은 사람이 당대의 생각을 평하기는 조심스럽지만 말이다. 그런데 논문의 저자가 이런 주장을 어떻게 의미화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최초 세계 전도의 대 사명이 로마의 속국으로서 고통받으며 세계 각지로 흩어졌던 유대인들에게 있었던 것처럼, 일제에 의해 고통받고 있는 조선, 어쩔 수 없이 세계 각지로 흩어질 수밖에 없게 되었던 조선인에게 대동 전도의 큰 사명이 짐 지워져 있다는 것이요, 조선인만이 감당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김인서에게서 만주 전도는 우리 민족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대사업이요, 우리 민족 교회로서 다른 무엇보다 먼저 시행해야할 대사업임을 외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당장 눈앞의 독립과 타도해야할 일제, 혹은 더 나아가서 우리 민족의 영화와 영토의 확대만을 바라보았던 기독교 민족주의자들과의 명백한 차이점이었다.
편협한 민족운동가들과는 달랐다는 주장이다. 더 나아가 그는 김인서가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공했다고 표현하기까지 한다.
김인서에게서 만주와 만주인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즉 이들은 구원 받아야할 귀중한 생명이요 인격이요, 하나님의 구원을 필요로 하는 “이방”이며, 선교를 통해 사랑과 구원을 전하며 죄악으로부터 건져내야 할 대상으로서 자리매김 되어진다. 즉 하나의 수단으로부터 목적으로 바뀐 것이다. 이러한 김인서 선교론의 시야는 일제와 세계에 대한 지평을 새롭게 열어 놓는다. 일제는 현재 조선을 식민지화하고 억압하고 수탈하고 있는 억압자이지만 역시 세계의 일원 가운데 한 부분으로서 구원받아야 하고, 구원을 필요로 하는 “이방”의 하나로 대치된다. 세계의 여러 나라들도 조선의 독립이라는 절대적 가치 기준에 영향을 주거나 관련 없는 ‘주변’으로부터 ‘복음’과 ‘사명’을 감당해나가야 할 곳으로 바뀌어 진다. 그리고 조선이 이방에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한 조선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이 세계의 한 당당한 일원으로 재인식된다. 독립과 관련된 한 변수로 취급받을 뿐이었던 세계도 비로소 한 객체로서 자신의 위상을 되찾게 된다. 이것이 김인서의 ‘선교론’이 당시 한국 교회와 조선에게 주는 가장 큰 공헌 가운데 하나이다.

한 신학자의 포부--나쁘게 얘기하면 과대망상--가 이렇게 포장되어 칭송받는다. 더 험하게 표현하면, 김인서의 과대망상을 연구한 것이 아니라 논문의 형식으로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이 논문은 역사학회지에 실려 있지만, 감히 내 생각을 얘기하자면, 반역사적인 발언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신학 논문이다.
한국의 기독교 역사 연구는 역사와 신학이라는 두 영역이 겹쳐 있다. 그쪽 분들의 말씀으로는 역사와 신학이라는 두 영역 사이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 입장에 찬성하지 않는다. 둘 사이의 균형이라기보다는 이질적인 두 영역의 삼투라고 보인다. 그리고 그 삼투가, 신학이 역사를 이용하는 양상으로 나타날 때는 결코 아름답게 보이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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