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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 때 일본 불교

by 방가房家 2023. 4. 20.

많은 사람들이 종교가 전쟁을 말리지는 않을망정 앞장선다는 비판을 한다. 그런 예는 세계 도처에 수도 없이 깔려있지만,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이슬람교와 기독교이다. 요즘에는 부시 덕분에, 그리고 보수 개신교단의 집회 덕분에 우리나라에서 기독교의 전범 이미지가 증대되는 것 같다. 친구들 중에는 종교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운 것은 유일신 종교들이 판을 쳐서가 아니냐고 하는 이들도 있다. 불살생의 불교가 받아들여진다면 세상이 조용해 질 것 아니겠냐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종교에 있어서의 본질적인 속성을 이야기하는 것에 반대한다. 본질, 속성, 정수. 그런 것을 믿지 않는다. 심심풀이 이야기에서나 가능한 논의라고 생각한다. 종교와 폭력에 대한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그 종교의 속성이 아니라, 종교와 권력과의 관계이다.


불교가 평화로운 종교라고 생각하는 친구에게는, 나는 스리랑카 불교 이야기를 하게 된다. 스리랑카 불교는 신할리 민족주의와 결합해서, 20세기 내내 힌두교를 믿는 타밀족을 압박하고, 여러 차례 살육했다. 불교의 이름으로 행해진 일이었다. 어느 불교인은, 불국토를 이루기 위해서는 타밀족을 제거하고 실론섬을 정화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스리랑카 상황을 잘 정리한 한글 문서는 잘 검색되지 않는다. 찾으면 나중에 링크하기로 한다.)

근대 일본 불교에 관한 발표에서 다음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청일전쟁 때 일본 불교가 전쟁을 정당화하는 활동을 펼친 대목이다. 살아남기 위한 일본 불교의 움직임이었으리라. 1940년대 한국 불교가 어땠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전시 동원에 한국 기독교계의 활동에 대해서는 좀 알고 있는데, 힘없는 불교 쪽도 비슷한 상황이지 않았을까 싶다. 전쟁이 부처님의 뜻이라는 설법이 많이 있지 않았을까. 나중에 찾아보아야겠다.
이러한 불교의 국가주의적 색채는 제국주의적 침략 전쟁에서 과격한 실천의 장을 획득했다. 1894년 청일전쟁이 발발하자 불교계는 즉각 행동을 개시, 성공적 침공을 위한 협력체제를 구축, 戰地에 종군승을 파견하여 군대에 대한 포교를 실시하고, 전사자의 조문, 파견 군인의 위문, 부상 군인에 대한 병원에서의 위문 활동, 간호용품의 기증, 그리고 출정군인 가족의 위문 등을 실시하였다.
1904-5년의 러일전쟁에 있어서는 전쟁협력을 일층 강화하여 각 종파는 군자금의 헌납, 위문용품의 기증, 군사공채응모의 장려, 전사자의 장례, 종군승의 파견 등 불교의 전쟁후원은 다양한 방면에 걸쳐 전개되었다. <新佛敎徒同志會> 등의 염전적 태도나 전쟁의 정당화에 대한 극히 일부의 소극적 태도를 제외하면, 불교계 전체의 전쟁 미화는 끝가는 곳을 몰랐다. 그 일단을 東本願寺派 河崎顯了의 <戰時佛敎演說, 1900년 간행>에서 엿볼 수 있는 바, 금번의 전쟁은 우리 모두의 종교적 大善知識이므로 슬퍼할 것이 아니라 부처의 고마운 化導의 기회임을 기뻐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금번의 싸움에서 번뇌의 원수 (러시아)를 쳐부수어 승리를 쟁취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무리 적을 많이 살육해도 이는 부처의 뜻에 반하지 않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는 등, 불교는 국민에게 전쟁 상대국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시키고, 이러한 적개심을 부처의 뜻이라고 설파하는 등 급기야 전쟁의 주구로 전락했던 것이다.
(허남린, “일본에 있어서의 불교와 불교학의 근대화,”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05년 상반기 심포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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