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짙타를 받기도 하지만, 나의 지론은 ‘사랑=소유욕’이라는 주장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전제를 깔고 있는 모든 연애 담론과 실천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런 나에게 <<향연>>의 그리스 현인이 펼치는 사랑론이 좀 뜻밖의 것이어서 간단한 기록을 남긴다.
에로스(사랑)에 관해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나눈 후 책의 중간쯤부터 소크라테스가 끼어들어 자신 특유의 논리적인 방식으로 대화를 이끌기 시작한다.
(1)여기서 그가 대뜸 던지는 물음은 다음과 같다. “에로스는 특정 대상을 사랑하는 것인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사랑하는 것인가?”(2)문답의 결과 “사랑은 어떤 대상에 대한 것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에로스는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 바로 그것을 욕구한다.”고 할 수 있다.(3)“에로스는 자신이 욕구하고 사랑하는 것을 갖고 있지 못하면서 그것을 욕구하고 사랑한다.”(4)“결국 자신이 갖고 있지 않으나 본인이 필요로 하는 것, 바로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만 욕망과 사랑은 존재한다.”[플라톤, 박희영 옮김, <<향연: 사랑에 관하여>>(문학과지성사, 2003), 108-14.]
처음부터 사랑은 한 주체가 상대방을 대상화하여 욕구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상대방과의 상호관계의 문제는 고려되지 않으며 오직 주는 쪽에서의 문제일 뿐이다. 서양 전통에서 주체와 대상간의 관계가 이렇게 일방적인 것임을, 사랑이라는 구체적인 예를 통해서 깨닫게 된다. 한참 연구주체와 연구대상의 관계를 논하는 논문을 쓴 뒤라, 주체-대상이 이처럼 살벌한 것이었는지에 대해 되돌아보게 된다.
짝사랑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하는 이 노인네의 사랑론에는 상호적인 교감은 전혀 안중에 없다. 사랑은 서로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나의 낭만적인 견해를 사정없이 깨는, 자신에 결여된 것을 욕망하는 이 사랑에는 분명 아픈 경험의 페이소스가 드리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예상하게 된다. 이것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과 대비되는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면서’의 감성이다.
1982년에 해오라기는 쓰디쓴 정서를 바탕으로 그렇게 노래했다. 소크라테스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언젠가 당신이 말했었지 혼자 남았다고 느껴질 때추억을 생각하라 그랬지 누구나 외로운 거라 하면서그리고 이런 말도 했었지 지난날이 자꾸 떠오르면애쓰며 잊으려 하지 말랬지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면서……진정한 사랑을 하고 싶다면 오로지 주려고만 하랬지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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