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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변잡기

환상, 현실, 그리고 꼴데

by 방가房家 2023. 5. 22.

0. 아래의 동영상 ‘꼴셉션’은 환상에 관한 것이다. 이 영상을 소개한 기사에 달린 베스트 댓글은 (아마 SK팬이 쓴 것으로 기억되는데) “꼴데팬, 느그들이 드디어 미쳤구나.”였다. 외부자의 입장에서 정확한 표현이다. 냉정하게 말해 현실도피로 보일 수밖에 없다.

 

 
1. 내가 원래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다음과 같다. 때로는 환상이 우리의 삶을 구원해주는 힘을 가진다는 것. 환상이 현실의 변화를 가져오는 실재로서 기능한다는 것. 이것은 ‘의미 있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실재적인real 것, 실재reality 개념을 사용하고, 그것을 종교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 종교학의 용법과 맞닿아 있다. 엘리아데는 이렇게 말한다.
“신화는 오로지 실재realities에 대해서, 무엇이 실제로really 일어났는가에 대해서, 무엇이 완전히 현현되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들 실재는 성스러운 실재sacred realities이다. 탁월하게 실재적인real 것이 성스러운sacred 것이기 때문이다.”(<성과 속>, 85)
 
2. 이 영상은 <인셉션>의 패러디인데, 나는 원작 영화는 보지 못하고 도리어 패러디물을 통해 원작의 성격을 유추하고 있는, 약간은 한심한 상황에 있다. 내가 유추한 바에 따르면 여기서 전제된 세계관은 우리가 믿는 바의 현실은 여럿이 실재할 수 있다는 것으로, 원래 이야기하려던 것보다도 더 나아간 내용이다. “내가 나비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나비가 나를 꿈꾸고 있는 것인가”를 묻는 장자 이야기[莊周之夢]와도 같은 상황, 즉 가상과 실재의 경계가 흐릿한 상황은 이미 <매트릭스>를 비롯한 여러 영화에서 보여진 바 있다. <인셉션>도 그런 상황을 상정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3. 그런데 이 패러디물의 성격은 이보다도 복잡하다. 
여기서 이야기되는 ‘꼴데의 데칼코마니’는 강력한 실현가능성을 지닌 예언이다.(이미 생각보다도 빠르게 실현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앞부분에서 제시된 현실성은 로이스터 감독의 못다 이룬 꿈이라는, 후반부에서 제시되는 상실된 꿈과 결합하면서 강렬한 효과를 낸다. 나는 이 동영상을 볼 때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현실 인식은 정확하며, 반면에 로감독에 대한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분명했기에(동영상이 로감독 해임된 작년 말에 제작되었다), 우승에 대한 환상은 불가능한 꿈인 동시에 우리의 강렬한 열망의 내용이었다. 우리는 이미 예견된 절망적인 미래를 향해 가고 있음을 그때 느꼈으며, 지금은 실제로 가고 있다. 로감독과 함께 한 우승의 환상은 좌절된 미래이자 과거의 향수이다. 우리는 그가 선물한 행복했던 3년을 추억하며 절망적인 현재를 살아갈 힘을 얻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행가 가사처럼. 
혼자 살아갈 수 있다면
이별 뒤에 떠오르는 많은 추억을
사랑하기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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