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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이라는 이름을 넣고 싶은 마음이 있긴 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인터넷에서 만나는 종교학이라는 언어가 내가 그리는 방식이 아니라 신학적이거나 요상한 색깔이었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식으로 그 이름을 부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벌레라는 말은 그 자체로는 소박한 어휘라서 또 괜찮았다. 그런데 벌레라는 말이 공부랑 결합하면 “하버드의 공부벌레”에서 보듯 괴물같은 말이 되어버린다. 경쟁사회의 충실한 하수꾼같은 그런 모습은, 적어도 내가 그리는 모습은 아니다. 그래서 종교학 벌레라는 제목은 내가 꿈꾸는 이름도 아니요, 나의 상태에 부합하는 이름은 더욱 아닌, 마음에 들지 않는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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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름을 왜 갖고 있냐고? 답은 귀찮아서이다. 나는 이름짓는 것을 정말 귀찮아한다.
홈페이지 만들기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논문을 쓰던 나는 며칠을 밤새워 딴 짓을 하다가 내 홈페이지를 하나 만들어 보았다. 내가 가진 콘텐츠라곤 세미나하던 발제문뿐이었으므로 종교학 페이지로 하기로 하고, 이름을 “방**의 종교학 독서마당”이라고 했다. 촌스럽기 그지없는 이름이지만, 누가 찾아올 거라 생각한 것도 아니고, 홈페이지 이름에 그 내용을 담는 게 보통 이름짓는 방식인 것 같아 그냥 그렇게 했다.
그런 이름을 왜 갖고 있냐고? 답은 귀찮아서이다. 나는 이름짓는 것을 정말 귀찮아한다.
홈페이지 만들기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논문을 쓰던 나는 며칠을 밤새워 딴 짓을 하다가 내 홈페이지를 하나 만들어 보았다. 내가 가진 콘텐츠라곤 세미나하던 발제문뿐이었으므로 종교학 페이지로 하기로 하고, 이름을 “방**의 종교학 독서마당”이라고 했다. 촌스럽기 그지없는 이름이지만, 누가 찾아올 거라 생각한 것도 아니고, 홈페이지 이름에 그 내용을 담는 게 보통 이름짓는 방식인 것 같아 그냥 그렇게 했다.
몇 년 후, 나는 다시 딴 짓을 하다가 홈페이지 리뉴얼을 한다. 디자인과 메뉴를 바꾸다가 첫 메뉴 그림으로 쓸만한 그림을 발견했다. 무당벌레 그림이었다. 그래, 그걸 첫 화면 메뉴로 하고 홈페이지 이름도 상투적인 이름 버리고 “종교학 벌레”라고 했다.
몇 년 후, 나는 미국에서 딴 짓을 하다가 나름대로 홈페이지 정리를 한다. 이제 홈페이지 손 볼 시간은 없기 때문에, 나름대로 깔끔하게 해두고 방치할 요량이었다. 이제 업그레이드 안하는 대신에 대문에 큰 게시판 하나 걸어놓고 거기다 가끔 소식이나 올리려 했다. 첫화면에 걸어놓을 게시판 찾다가 엠파스에서 선전하는 블로그가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 난 블로그가 뭔지 몰랐다. 다만 엠블이 아무것도 없이 썰렁하면서도 화면 큰 게 쓸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걸 대문에 걸어놓았다.
반 년 후, 대통령 탄핵의 정신적 공황에 또 딴 짓을 하던 나는 마음 달래느라 블로그에 글 몇 편 끄적이다가 거기에 완전히 맛을 들이게 된다. 이제 홈페이지는 말 그대로 방치이고 블로그가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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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이름이 종교학 벌레인 것은 블로그(사실은 커다란 게시판)를 걸어놓을 홈피 이름이 그랬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는 그다지 멋진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그대로 있을 뿐이다. 종교학 벌레와 같은 정보 위주의 작명은 블로그 이름짓기는 아니다. 블로그는 개인의 공간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은유적인 방식의 작명이 어울린다. 자기를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대신에 자신의 특성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대상을 잘 포착해서 이름으로 올리거나, 사이버 상에 제2의 자아를 형상화라는 별칭을 부여하는 것이 마땅한 방식이다.
종교라는 분야에서 쓸 만한 이름은 많을 것이다. 세상에 좋은 말이란 좋은 말은 다 모여있는 게 이 분야이다. 어느 종교의 성스러운 대상의 신비로운 이름을 찾아오든지, 성경이나 영지주의 문헌이나 고대 바빌로니아 문헌이나 북미 원주민의 어록에서 아름다운 경구를 찾아오든지, 더 나아가 라틴어, 희랍어, 산스크리트어, 한문 등에서 중요한 말을 따오든지, 방법이 너무 많아 탈이다. 신비한 언어야말로 블로그 이름으로 적격이며, 그 중에서 내 세계관에 부합하는 것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내 언어 세계는 지나치게 산문적이어서, 시적인 언어를 구상하거나 적절한 상징적 언어를 찾는 게 너무 안 된다. 그래서 오늘도 똑같은 이름을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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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달 사이에 방문자 수가 미친듯이 늘었다. 하루에 200은 우습게 넘기는 카운터를 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요즘 글을 자주 올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용이 충실하거나 재미있는 글이 올라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옛날 글을 보면 내가 봐도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것도 가끔 있는데, 요즘 글들은 밋밋하기 그지없다는 것을 내 자신이 더 잘 안다. 방문자 수의 변화는 내적인 게 아니라 외적인 것이다. 하나는 엠파스 열린 검색이 생긴 이후 변화로, 검색을 통해 오는 경우가 더 생긴 것 같다. 둘째는 요즘 여기저기 RSS 구독해주는 서비스들이 늘어난 게 다른 이유인 것 같다. RSS 구독한다고 카운터 오르는 것은 아닐텐데, 기술적인 부분은 잘 모르겠다. 설치형 블로그라면 레퍼러(이 블로그로 오게 된 링크가 있는 페이지) 보고 어느 정도 파악할텐데, 엠블에서는 바랄 수 없는 거고. 어쨌든 이 방문자 숫자는 순전히 사람 숫자가 아니라 기계의 농간이 들어있다고 확신한다. 방문자 수에 비해 글 조회 수는 크게 변하지 않으니까.
그래도 방문자 수는 부담이 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이제 종교학계에 계신 적지 않은 선후배들이 여길 봐준다는 것을 이런 저런 계기에서 알게 된 것은 더 큰 부담이다. 무슨 부담이냐면, 무슨 종교학 도사나 되는 양, 아니면 종교학을 열렬히 공부하고 있는 양 타이틀을 걸어놓은 것에 대한 부담말이다. 어차피 방문자 없는 심심풀이 홈피 시절이라면 무슨 상관이겠느냐만, 지금은 어쩌자고 저런 이름을 달아놓았는지 낯이 뜨거워질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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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고 이전의 방가’와 ‘사고 이후의 방가’를 구분지어 생각한다. 몸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꽤 에너제틱한 면도 있었다. 뭐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게 아니라, 무엇을 하든 미친듯이 빠져들어 하는 측면도 있었다는 거다. 지금의 나에겐 분명 에너제틱한 측면은 사라졌다. 삶의 균형에 무엇보다도 신경쓰며 살아야 하는 시점이다. 그래서 벌레라는 이름은 지금 내 삶에서 더더욱 생뚱맞다. 그럴싸한 이름이 떠오르면 바로 바꾸어버릴 거다. 모르지, “애리조나에 피는 꽃”같은 촌스러운 이름이 어느 날 갑자기 걸려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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