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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변잡기

5412번 (舊 289-1번)

by 방가房家 2023. 5. 22.

5412번은 꽤 오래 타고 다녔던 버스이고, 올해도 집에 오면서 많이 탔다.

5412번의 노선 양 편에는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권력이 자리한다.
한 쪽 끝에는 서울대가, 다른 한 쪽 끝에는 강남이 있다. 5412번은 서울대와 강남을 연결하는 버스이다. 나는 늦은 시간, 막차보다 너댓대 앞차인 11시 전후(막차는 신림동 녹두거리에 11시 20분 경에 온다) 서울대 부근에서 강남 방면으로 오는 버스를 주로 이용한다. 이 시간에는 젊은 사람들로 버스가 가득 찬다. 그 중에서도 두 부류가 눈에 들어오는데, 하나는 녹두거리에서 술먹다가 집에 가는 서울대생들이요, 다른 하나는 최대한 늦게까지 공부를 하거나 수강을 하다가 집에 돌아가는 고시생들이다.

놀다가 늦게 버스타고 돌아오는 학생들을 보면 내 학창 시절이 눈에 밟힌다. 주의할 것은 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학생 정도면 그냥 노는 학생은 아니라는 것이다. 범생이의 범주에 들기 때문이다. 한국의 음주문화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귀가하는 것은 너무나 모범적이어서 분위기를 깰 정도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이 버스의 막차 타려면 적어도 밤 11시에는 자리를 뜬다는 이야기인데, 이것은 술자리의 1차 막판이나 2차 초입에 해당하는 대단히 이른 시간이다. 제대로 된 술판 멤버라면 적어도 서너시까지는 자리 지키고 택시를 타거나 친구 자취방에 갈 일이다. 나는 11시가 되면 칼같이 일어나는 학생이었다. 타고난 범생이 기질과, 택시를 절대 탈 수 없는 짠돌이 기질이 결합해서,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서도 버스 타고 기어이 집에 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취객들은 성실한 이들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버스를 타고 가는 성실한 술꾼 학생은 수적으로 그리 많지 않으며, 더 많은 이들은 버스 시간이 허용하는 한 최대한 공부하다가 막차 시간 다 되어서야 집에 가는 고시생들이다. 이 버스의 경우, 반포동, 방배동, 서초동, 사당동 등에 거주하는 고시생들이 되겠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란 거 알면서도, 나는 강남 출신의 고시생들을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된다. 공부할 여건을 지니고 태어나 권력의 길을 충실히 따르는, 계급적인 정도를 걷는 이들이라는 선입견을 버리지 못하는 탓이다. 이들이 눈에 띄는 것은 11시경의 버스라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책을 부여잡고 있는 독특한 모습들 때문이다. 고3 때를 회상해야 겨우 이해할 듯 말 듯한 촉박한 시간관, 일분일초 하나라도 더 봐야한다는 강박적인 모습들. 나는 이들이 종말론적인 시간관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눈버리기 십상인 어둡고 흔들리는 버스에서 단어장이나 법조문들을 외우거나 강의 테이프를 듣는 모습들은, 고스란히 그들의 삶을 보여주는 디테일들이다. 절대 찬성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웃어넘길 수는 없는 그 삶의 긴박성을 구경하는 것이 그 시간 5412번을 타고 집에 올 때 하는 일이다.

 
5412번은 사당동, 이수교를 지나 구반포를 거쳐 내 목적지인 반포 터미널로 간다. 구반포에서는 반포 치킨 앞을 지나게 된다. 반포 치킨, 20년도 훨씬 더 된, 작고 낡은 가게이지만 유명한 곳이다. 일본인들 관광 책자에까지 소개된다는 이 집의 명물은 역시 마늘 치킨이다. 올 여름에도 역시 변함없는 맛을 선보이고 있었다.
반포 치킨은, 강남에서 거의 유일하게, 문학적인 향기를 지닌 곳이기에 지날 때마다 쳐다보게 된다. 여기엔 생전의 김현 선생이 이성복, 황지우와 같은 제자들과 함께 단골로 찾아와서 닭은 뜯으며 문학을 논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문인들이 계속 찾아오고 있다고 한다. 아마 그들이 서울대에서 반포치킨으로 올 때 이 버스(그 때는 289-1)를 타고 오지 않았을까. 그 때의 공간 이동의 흔적은 황지우의 시 “구반포 상가를 걸어가는 낙타”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이 시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이수교에서 고속터미널로 가는 방향으로 오른쪽이 되는 구반포 상가 앞 버스 정류장으로 건너가기 위해 그녀는 건널목에 서 있다.
전화 박스 속에서 보았던, 赤信號에 걸린 거리, 오후 6시 반.

긴 시에서 내가 경험한 공간과 관련된 부분을 뽑아보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다. 반포치킨의 디테일들이 시의 주제를 형상화한다. 치킨집 닭에서 느껴지는 도살 이미지는 고속터미널을 거쳐 미국으로 연결된다. 시의 주제 의식을 잘 따라가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이 시의 공간 이동은 지금 나와 겹쳐지기에 단순한 나도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게 된다. 매일처럼 289버스를 타고 이수교와 구반포를 거쳐 집 근처 터미널에 왔던 반년 정도의 생활이 끝나가고 이제 미국에 가려 한다. 그 도살의 나라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을 무엇일까. 몸이 약해졌는지 이전과 같은 기대감은 고취되지 않는다. 오늘 마지막으로 터미널에 가서 버스 사진을 찍고, 황지우 시에서 일부를 뽑아 옮긴다.

건넌다는 게 뭘까, 그녀는 생각했다. 이수교에서 고속터미널로 가는 그 길은, 검은 페이브먼트 때문이었을까, 자기의 棺을 타고 건너는 검은 강물 같았다.
반포 켄터키 치킨. 냉방완비.
모가지와 발목이 잘린 닭들이 꼬챙이에 꽂혀 전기구이통 속에서 실타래처럼 뱅뱅 돌려지고 있는 것을 그녀는 멍하니 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시체를 기름에 튀겨서 맛있게 뜯어먹는다.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잃어 버린, 황금 비늘로 덮인, 억센 발톱에 대해, 투쟁의 피흘리는 벼슬을 기념하기 위한 붉은 王冠에 대해, 새벽의 숲을 일깨우는, 황금 뿔로 된 부리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아냐, 그게 아냐,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고개가 좌우로 흔들렸다. 먹이만 보면 일렬횡대로 꽥꽥 소리지르며 몰려드는 양계장 폐닭들이었을 거야, 그녀는 생각했다. 치킨집 문이 열릴 때마다 양념으로 가린 닭살의 누린내가 문의 풀무질에 의해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하필이면 정류장이 치킨집 앞에 있을 게 뭐람,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이마에 칼자국같은 주름이 새겨졌다. 반바지 차림을 한 중년 남자가 그의 가족을 데리고 치킨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그녀는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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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야구장을 한바퀴 돌고 오는 289버스가 붉은 '서울대'라고 쓰인 終点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진흙으로 빚은 사람들을 가득 담고. 신나를 끼얹어도 안 탈 사람들을 가득 담고. 불구덩으로 들어가는 진흙 인형.
너 어디 가니? 미국! 미이이이이국!
거기가 네 터미널이니? 아냐, 터미널은 사람들이 떠나는 곳을 의미하지 않니?
이수교에서 고속터미널로 가는 방향으로 오른쪽이 되는 반포치킨집 앞 버스 정류장에 그녀는 서 있었다. 그녀는, 버스 정류장 옆, 사람들이 담배꽁초를 버리거나 가래침을 뱉도록 되어 있는 쓰레기통이 눈에 들어 오는 것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 쓰레기통에 부착된, 이장호 감독, 안성기 이보희 주연의, 철 지난 '무릎과 무릎 사이'가 눈에 들어오는 것을 그녀는 거절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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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는 너무나 찬란해서 만져지지가 않았다. 너무 선명했기 때문에 낙타는 냄새도 소리도 가 닿을 수 없는, 다만 빛의 윤곽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낙타는 영화 기법으로 말한다면 '오우버 랩'수법으로 차량들과 사람들과 가두 신문대와 버스 토큰 판매소 속을 그대로 통과할 수 있었다. 그리니지 천문대를 기준으로 하는 지상의 시간으로 피 엠 8:30을 가리키는, 구반포 상가 앞을 통과하는, 영등포-천호동 구간의 21번 버스가, 상계동-봉천동 구간의 303번 버스가, 신세계 백화점-방배동 구간의 42번 좌석 버스가 막 낙타의 몸을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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