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에 어울리지도 않는 노래 하나가 듣고 싶어졌다.
그런데 왜 “방가의 음악사”에 대한 고찰이 나오는 건지...
1.
아버지는 클래식 매니아시다. 20년 전부터 시디 열심히 사 모으시고, 요즈음엔 진공관이며 전선을 바꿔가며 커다란 스피커를 열심히 관리하신다. 주말이면 빵빵한 스피커로 베토벤 음악을 들으신다. 이렇게 고전음악을 애호하는 분위기의 집안에서 자라난 아이의 성향은 두 가지로 예상해볼 수 있겠다. 하나는 음악에 대한 소양이 몸에 배여 귀가 열리고 자연스레 클래식 문화를 향유하는 법을 알게 되는 경우이다. 다른 하나는, 나의 경우인데, 집안의 클래식 소리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 쪽으로는 귀가 완전히 막혀버리고 다른 종류의 음악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나는 안티-클래식 매니아이다. 그 쪽으로는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 전혀 없다. 대신에 나는 우리 부모님들도 잘 알지 못하는 7,80년대 가수들을 줄줄 외운다. 부모님이 김추자라는 이름 입 밖에 꺼내는 거 본 적도 없지만, 나는 김추자 음악의 세계에 심취해 있는 식이다. 음악에 대한 나의 B급 지향성은 어린시절 트라우마의 결과라 하겠다.
아버지는 클래식 매니아시다. 20년 전부터 시디 열심히 사 모으시고, 요즈음엔 진공관이며 전선을 바꿔가며 커다란 스피커를 열심히 관리하신다. 주말이면 빵빵한 스피커로 베토벤 음악을 들으신다. 이렇게 고전음악을 애호하는 분위기의 집안에서 자라난 아이의 성향은 두 가지로 예상해볼 수 있겠다. 하나는 음악에 대한 소양이 몸에 배여 귀가 열리고 자연스레 클래식 문화를 향유하는 법을 알게 되는 경우이다. 다른 하나는, 나의 경우인데, 집안의 클래식 소리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 쪽으로는 귀가 완전히 막혀버리고 다른 종류의 음악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나는 안티-클래식 매니아이다. 그 쪽으로는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 전혀 없다. 대신에 나는 우리 부모님들도 잘 알지 못하는 7,80년대 가수들을 줄줄 외운다. 부모님이 김추자라는 이름 입 밖에 꺼내는 거 본 적도 없지만, 나는 김추자 음악의 세계에 심취해 있는 식이다. 음악에 대한 나의 B급 지향성은 어린시절 트라우마의 결과라 하겠다.
2.
음악과 상관없이 살던 나는(전혀 상관없다고 할 수는 없다. 중간에 피아노 레슨을 끊기 위한 치열한 투쟁이 있었으니...) 중학교 1학년 때 한 친구가 이문세 3-4집을 녹음해 준 게 빌미가 되어 테이프를 한 두 개씩 사게 된다. 해적판이 절반 이상이기는 했으나, 나는 열렬한 10대 음반 구매자가 되어 수십 개의 음반을 소유하게 된다. 내가 사모은 가수들은 대충 이러했다. 해바라기, 유열, 신형원, 박학기, 이승환, 정태춘, 조덕배 등. 그리고 이연실, 양병집, 박인희, 둘다섯과 같은 다소 고풍스러운 음악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이 상 전형적인 서태지 세대이지만, 그의 음악은 나의 학창시절과 상관이 없다.)
3.
고딩 1학년 때, 취향에 맞는 음악을 발굴하러 열심히 음반 시장을 뒤지던 나에게, 그 당시 컨셉은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였다. 가요 중에서 전통적인 요소를 결합한 작품을 열심히 찾았던 것인데, 그 결과는 김수철이나 김도향이 아니고, 예상치 못했던 “강병철과 삼태기”였다. 강병철과 삼태기를 발굴했을 때의 감동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 장소는 학교 앞 레코드 가게였고, 강병철과 삼태기 앨범을 품에 안고 나오던 나는 반 친구들과 마주치게 된다. 나의 취향이 엽기적으로 비춰진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고, 이 일로 나는 약간 유명해졌다. 이 일을 계기로, 나중에 양로원을 방문했을 때, 나는 애들한테 “함사시오”를 가르쳐서 공연하게 된다.
4.
“고려청자”도 좋고 “함”도 좋고 (좀 체체순응적이긴 하나) “88아리랑”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사로잡은 곡은 “낚시터의 즐거움”이었다. 삼태기 특유의 빨래판 같은 타악기의 소리가 나를 감싸안는 가운데, “디기디기디기”를 비롯한 현란할 정도로 다양한 추임새하며, 강병철의 부드러운 보컬과 곡의 경쾌한 진행에 완전히 압도되었다. (다만 곡 중간에 “송사리 죠스다”하는 나래이션은 좀 부담스럽다.)
학창 시절 우리의 소리를 찾아 만난 이 노래가 번안곡임을 알게 된 건 얼마 전이다. 이 노래는 “Marino Marini”의 “Ciccio o Piscatore”라는 라틴 음악의 번안이다. 이 때 느끼게 된 것은 배신감 같은 것이 아니라 번역에 있어서의 창조성이었다. 번안 가요의 놀라움에 대해서는 전에 언급한 적이 있지만, 강병철의 이 번안 역시 완전히 새로운 노래의 탄생이다. 원곡을 듣다보면 심심해서 도저히 끝까지 들을 수가 없다. 빨래판도 없고, 두루두루, 아 차바차바, 디기디기디기도 없는 이 노래, 밋밋하다. 부담스럽던 나래이션까지 그리워질 정도이다. 번역을 통해서 우리 정서를 담아내는 작업, 이 포스트모던적인 상상력이 이 노래에서 살아숨쉬고 있다.
5.
“행운을 드립니다. 여러분께 드립니다. 삼태기로 퍼드립니다”라는 후렴구 정도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어제 “삼태기 메들리”를 들어보니 이거 장난이 아니다. 당시 유행하던 노래들이 백곡 가까이 들어있는 것 같다. 강병철과 삼태기의 음악 맥락 안에 완전히 소화된 형태로 각 노래에서 한 두줄 가량 뽑아낸 가사들이 수려하게 흘러간다. 그 흐름은 압도적이다! 나는 메들리가 그저 노래 이어부르는 형식이겠거니 했는데, 이처럼 놀라운 창작품인지는 처음 알았다. 메들리의 역사를 모르겠지만, 강병쳘과 삼태기가 초기 작품에 속하지 않을까 예상된다. 그럼에도 삼태기를 뛰어넘는 메들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행운을 드립니다. 여러분께 드립니다. 삼태기로 퍼드립니다”라는 후렴구 정도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어제 “삼태기 메들리”를 들어보니 이거 장난이 아니다. 당시 유행하던 노래들이 백곡 가까이 들어있는 것 같다. 강병철과 삼태기의 음악 맥락 안에 완전히 소화된 형태로 각 노래에서 한 두줄 가량 뽑아낸 가사들이 수려하게 흘러간다. 그 흐름은 압도적이다! 나는 메들리가 그저 노래 이어부르는 형식이겠거니 했는데, 이처럼 놀라운 창작품인지는 처음 알았다. 메들리의 역사를 모르겠지만, 강병쳘과 삼태기가 초기 작품에 속하지 않을까 예상된다. 그럼에도 삼태기를 뛰어넘는 메들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 역시 포스트모던 시대에 와서야 인식되기 시작한 상상력의 형태이다. 제본만 해 놓고 부담스러워 읽지는 못한 호미 바바가 이야기하는 잡종(hybrid)의 상상력이 완벽하게 구현되어 있다. 20분이 넘는 이 노래를 웹에 올리는 것은 내 여건상 무리이다.
내가 나중에 대학원에 가서 종교에 있어 잡종이라고 할 수 있는 혼합현상(syncretism)에 대한 논문을 쓰게 될 것이 강병철과의 만남에서 이미 예견되어 있기라도 했나... 삼태기 메들리를 들으며 썼더라면 더 좋은 논문이 나오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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