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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메모116

종교 현상에서 행위 주체(agent)의 문제 탈랄 아사드의 (Formation of the Secular) 2장에서는 “agent” 개념이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고, 개념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agent”, 어려운 개념이다. 영어 사전이 해석에 도움이 안 되는 단어인데, 나는 사회학 공부하시는 분들을 따라 ‘행위 주체’로 옮긴다. (그렇다면 'agency'는 'agent'가 하는 짓이므로 ‘행위’가 된다.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의미상 그러하다.) 종교학에서 행위 주체 개념이 왜 중요한가를 생각하다가, 최근 몇 년간 내가 물음으로 품고 지냈던 문제를 떠올리게 되었다. 나는 석사논문에서, 한국 개신교 의례 형성 과정에서 나타난 혼합현상(syncretism)은 개신교 대중 전통(popular traditio.. 2023. 5. 16.
신화에서 여성의 목소리 찾기 (Implied Spider) 5장, ‘마더 구스와 여성의 목소리’를 읽으며 든 잡생각. 여기서 도니거는 남성 텍스트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찾고 여성 텍스트에서 남성 목소리를 찾는 교차적인 작업을 보여주는데, 신화에서 화자의 목소리가 남성인지 여성인지를 알아보려는 일은 글을 통해서 미지의 상대방의 성별을 짐작하는 블로그질과 비슷한 면이 있다. 아래는 쿨짹님의 글. + 성별을 밝힐 필요는 없다. 굳이 숨기시는 건 아니라도 되도록이면 드러내지 않으려하는 분들도 계시는 것 같다. + 어딘가에서는 밝혀졌을지도 모르지만 포스팅을 띄엄띄엄 읽는다던지 예전 포스팅을 마스터하지 않았다면 성별을 알게해주는 그런 구절들을 놓쳤을 수도 있다. 물론 중요한 건 아니다. + 가끔 난감할 때가 있다. 꼭 한 블로거가 성별을 숨기려.. 2023. 5. 16.
아사드의 통치술 논의 정치적인 이야기들이 나오면 아무래도 독서 강도가 떨어지는 편인데, 탈랄 아사드의 최근 책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3) 서문을 읽을 때는 정신이 바짝 들었다. 이 사람이 우리나라를 들여다보면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 상황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사드는 서구 이론가들이 이야기하는 민주주의 사회 구성원리에 대해 비판하면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즉 서구 지식인들이 이야기하듯이, 개인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독자적인 자율성을 지니며 이들의 의견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공동의 가치를 창출한다는, 우리가 시민 사회의 원리라고 알고 있는 내용에 대해 아사드는 이야기하고 있다. 그가 롤즈(Rawls)의 중첩적 합의(overlapping c.. 2023. 5. 16.
피에트로 성인의 믿음 화가 모로니(Giovanni Battista Moroni, 1529-78)가 그린 (Martirio di San Pietro da Verona)라는 그림이다. 성 피에트로는 숲 속에서 박해자들을 만나 순교를 앞두고 있다. 이마에는 이미 큰 상처를 입어 갈라진 사이로 피가 나온다. 박해자가 마지막 일격(가슴에 칼이 꽂힐 예정)을 가하려는 찰나, 이 성인은 바닥에 글씨를 남기고 있다. "CREDO"(나는 믿는다)!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믿음을 증거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는 과연 무엇을 믿었던 것일까? 위 그림에서는 그냥 "Credo"라고 쓰는 것으로 나오지만, 다른 전승에서는 "Credo in deum"(나는 하느님을 믿는다)라고 썼다고 전하는데, 이는 사도신경의 첫구절이다. 또 다른 전승에는 "Credo .. 2023. 5. 16.
Whose Bible is it? 기독교 교리사 분야에 있어 대가인 야로슬라브 펠리컨(Jaroslav Pelikan)의 최근 책 는 내 기대에는 어긋난 책이었다. (방금 검색하다가 알게 된 것인데, 이 양반 올해 5월달에 돌아가셨다. 그렇다면 이 책이 그 양반의 많은 저서들 중 마지막으로 쓴 책이 되겠다.) 이 책이 펭귄 북으로 편집되어 저렴하게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진작 알아보았어야 했는데(싸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사기도 한 거지만), 이 책은 일반 대중을 위한 입문서 성격을 지닌다. 이 양반 책 중에서는 가장 눈높이를 낮춘 책이라 생각되는데, 그런 책을 써 본 경험이 적어서 그런지 좀 들쑥날쑥하다. 너무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다가도, 어느 부분에서는 고차원적인 문장이 튀어나온다. 일반인을 상대로 했다고 책이 재미없을 이유는 없는데,.. 2023. 5. 16.
신화의 망원경 기능 웬디 도니거는 1장에서 신화에는 현미경의 기능과 망원경의 기능이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신화는 일상의 작은 행위들이나 주관적 경험의 의미들을 밝혀준다. 그것이 현미경 기능이다. 반면에 신화는 일상을 초월한 보편적인 의미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것이 망원경 기능이다. 나는 웬디 도니거의 이 표현들을 참 좋아한다. 신화가, 그리고 종교가 우리에게 주는 매력을 너무나도 적절하게 나타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망원경 기능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 도니거가 든 예는 성서의 욥기와 바가바드 기타이다. 욥기는 하느님과 사탄이 욥이라는 사람의 믿음을 놓고 내기하는 이야기인데, 우리에게 중요한 부분은 욥이 고난에 시달리다가 하느님과 마침내 대면하는 장면이다. 그 전까지 욥은 재산을 잃고, 병을 앓고, 자식까지 .. 2023. 5. 16.
성서로 보는 미국 노예제 두 얼굴을 가진 하나님 : 성서로 보는 미국 노예제 미국에서 노예제를 놓고 벌어진 교회내의 논쟁은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다. 교회가 성서를 현실에 적용하는 방식에 대해 많은 교훈을 제공하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우리나라 학계에서 기대할 수 있는 주제는 못 된다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미국 뉴 멕시코 대학에서 이 문제를 전공한 학자의 책이 나와 있다. [두 얼굴을가진 하나님] (김형인 지음, 살림, 2003). 얇고 쉽게 쓰여진 책이지만 담고 있는 정보는 유용하다. 노예제 찬반을 놓고 미국 종교인들이 어떤 구절을 동원하고 어떤 논리를 구사하였는지를 잘 정리해주고 있고, 아울러 미국 노예제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들도 요약되어 있다. 게다가 이 내용으로 박사논문을 쓴 학자답게 노예제와 관련된 학술적 논쟁들.. 2023. 5. 15.
미국 종교사의 잡다한 상식들 를 읽다가 새로 알게 된 짜투리 이야기들. 미국 역사와 문화 구석구석을 다루는 책이다보니, 막힐 때도 많다. 미국 사람들에게 상식일 이런 이야기들을 미리 좀 안다면 책이 술술 읽힐 텐데, 그래도 책 읽다 막히는 부분 있으면 찾아보는 것도 요즘처럼 시간이 남으니 가능한 일이다. 학기중이라면 엄두도 못낼 일이다. 책의 주된 논의는 제쳐 놓고, 새로웠던 사실 몇 개를 정리해 본다. 1. In God We Trust "In God We Trust"라는 슬로건. 너무 유명해서인지 책에서 제대로 설명도 안하고 넘어가는 내용이었는데, 한참 읽고서야 감이 잡혀서 얼른 내가 갖고 있는 미국돈들을 살펴보았다. 그렇다. 모든 미국 화폐와 지폐들에는 "In God We Trust"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미국의 공공생활에.. 2023. 5. 15.
Touchdown Jesus 학교 서점을 구경하다가 요즘 미국 종교사 교과서로 널리 사용되는 이 책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미국 종교사 분야에서 인정받는 저자가 쓴, 매우 흥미로운 주제의 책, "터치다운 지저스"라는 책을 사고야 말았다. 제목은 알쏭달쏭하지만, 부제를 통해 책의 내용을 알 수 있다. "미국사에서 성스러움과 세속적인 것의 뒤섞임." 터치다운은 미식축구 용어로, 골을 넣었다는 것이다. "터치다운 지저스"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책의 처음 부분을 읽으면 나온다. 미국에서 가장 큰 가톨릭 학교인 노틀담 대학은 유명한 미식축구팀을 갖고 있다. (나도 텔레비젼에서 이들의 경기를 몇 번 본 적이 있다.) 이 학교의 미식축구 경기장은 우연히도 도서관 건물과 맞닿아 있는데, 그 도서관 벽면에는 손을 올리고 있는 예수가 그려져 있.. 2023. 5. 15.
조선 초 유교와 불교 조선 초기 유교와 불교의 관계에 대한 논문들을 읽고 간단히 메모. John Jorgensen, "Conflicts between Buddhism and Confucianism in the Chosŏn Dynasty," 15(1998). 요르겐센은 (제목에 나온 충돌보다는) 조선시대 불교에 끼친 유교의 영향에 대해 두 가지 흥미로운 논점을 제시한다. 하나는, 조선시대 불교에서 선이 대세를 이루게 된 것은 성리학이 조선사회의 이념이라는 점과 무관치 않다고 것. 신유학이 선불교 형이상학과의 대화를 통해 형성되었음을 주지시키며, 저자는 선불교에 성리학과 공유하는 언어와 관념 체계가 존재하고, 그래서 대화가 되는 파트너였다는 점을 강조한다.(199) 둘째, 불교가 성리학으로부터 도통(道統) 개념을 수용하였다는 것.. 2023. 5. 6.
미국의 종교 음식 Nora L. Rubel, “Food,” S. Brent Plate (ed.), , London: Bloomsbury, 2015. 1. “이브가 금지된 과일을 먹었을 때 죄가 이 세상에 들어왔다. 기독교인이 성찬대(聖餐臺)에서 하는 의식 중에 하느님을 먹을 때 구원이 온다.” 많은 기독교인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있는 은혜로운 식사를 매주 재연하고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영성체(wafer)와 포도주를, 어떤 이[개신교인]는 원더브레드와 웰치 포도 주스를 먹을 것이다.(96) 2. 음식은 실질적으로 종교 집단 내에서 돈을 끌어모으는 역할(fundraiser)을 할 때가 많다. 이탈리아계 미국인 가톨릭 교구의 스파게티 파티나 네이션 오브 이슬람(Nation of Islam)의 빈파이(bea.. 2023. 5. 2.
석마를 탄 앨리스 아래는 1905년에 대한제국을 방문해 수잔 손택의 후임으로 1년간 황실 ‘서양전례관’으로 일했던 독일 여인 크뢰거가 쓴 조선견문기이다. 1909년 독일에서 출판된 이 책이 논란이 된 것은 아래 내용 때문이다. 여기서 묘사된 앨리스의 행위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엘리스의 남편 롱위즈가 뉴욕타임즈를 통해 책 내용이 허위이고 크뢰벨은 거짓말쟁이라고 언플을 했다. 진위여부는 논란으로 남아있었지만, 최근에 코넬도서관에서 사진기자 월러드 스트레이트의 사진이 발간되면서 사실이 입증되었다. 철없는 여성의 해맑은 모습이 전해지는 사진이다. 문제가 되는 행위가 일어난 곳은 명성황후의 묘소(1919년 현재의 홍릉으로 옮겨졌지만, 1905년에는 청량리의 숭인원 자리였음)였다. 갑자기 뿌옇게 먼지가 일더니, 위세 당당하게 말을 .. 2023. 5. 2.
스타(Starr)의 의상 프레더릭 스타(Frederick Starr)는 1891년부터 31년간 시카고대학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한 인물로, 말년에는 일본에서 주로 연구하였다. 한국에도 관심이 많아 1910년대에 네 차례에 걸쳐 방문하였고 “Korean Buddhism”이라는 저서를 남겼다. 그는 일본에 거주하는 동안 미국 대학교수로서 명망 높은 인물이었다. 정치계, 학계를 비롯해 많은 인물과 교류하였고, 그 영향력은 한국 방문에도 활용되었던 것 같다. 다음 글에서 그의 의상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요약, 인용하겠다. Robert Oppenheim, “‘The West’ and the Anthropology of Other People's Colonialism: Frederick Starr in Korea, 1911–1930,” 64-.. 2023. 5. 2.
종교의 노이로제 세속과 종교가 미신의 제거를 위해 협력하는 관계로 설정되어 있지만, 종교는 끊임없이 세속으로부터 미신의 출처를 마련해준다는 혐의를 받게 된다. 특히 이미 기득권을 획득한 세계종교가 아닐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사이비종교는 미신으로부터 자양분을 받는다.……미신은 전염병과 같다. 언제 어디에나 있고, 항상 잠입 태세를 갖추고 있어서 경계를 늦출 수 없다. 그래서 종교는 늘 미신의 영역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노이로제’ 상태에 처해 있다.……백백교는 최악의 ‘스캔들 메이커’로서 그 위험성을 알려주는 신호등 역할을 하고 있다. 장석만, “1937년 백백교 사건의 의미”, (모시는사람들, 2017), 276-277. 한국 사회에서 백백교와 그 후예들이 계속 호출되는 이유를 선명하게 설명한 글. 종교와 미신이라는 .. 2023. 5. 2.
성인전, 성유골 성인전은 보편적 진리를 예증하기 위해 특수한 사실을 희생하여 쓰여진 글. 성인전의 내용이 오늘날 ‘역사적 사실’이라고 간주되는 것에 근접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중세 성인전 작가가 성인 전기를 집필한 목적은 성인의 인격이나 개성에 관한 모든 것을 독자에게 말해주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인이 모든 시대 모든 성인에게 공통되는 성스러움의 보편적인 특징을 어떻게 보여주는가를 예증하는 데 있었다. 이러한 예증이 성인의 생애와 죽음의 독특한 점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시되었기 때문에 성인의 보편적 특징을 예증하는 본보기와 일화들은 특정 성인의 생애에서 반드시 따올 필요가 없다.……성인전은 특정 사실보다 본원적 진리를 우선시하는 성인의 정형화된 세계관, 즉 다른 성인전에서 조금씩 따온 ‘상.. 2023. 5.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