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모로니(Giovanni Battista Moroni, 1529-78)가 그린 <베로나의 피에트로 성인의 순교>(Martirio di San Pietro da Verona)라는 그림이다. 성 피에트로는 숲 속에서 박해자들을 만나 순교를 앞두고 있다. 이마에는 이미 큰 상처를 입어 갈라진 사이로 피가 나온다. 박해자가 마지막 일격(가슴에 칼이 꽂힐 예정)을 가하려는 찰나, 이 성인은 바닥에 글씨를 남기고 있다. "CREDO"(나는 믿는다)!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믿음을 증거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는 과연 무엇을 믿었던 것일까? 위 그림에서는 그냥 "Credo"라고 쓰는 것으로 나오지만, 다른 전승에서는 "Credo in deum"(나는 하느님을 믿는다)라고 썼다고 전하는데, 이는 사도신경의 첫구절이다. 또 다른 전승에는 "Credo in unum deum"(나는 한 분 하느님을 믿는다)라고 썼다고 전한다. 여기서 분명해지는 것은 성 피에트로의 믿음은 12-13세기 번성했던, 이단이라고 불렸던 카타리파에 대항한 것이라는 점이다. (카타리파는 마니교적인 이원론적 신앙을 가졌다.)
피에트로는 1206년 베로나에서 카타리파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그는 기독교 학교에 가서 교육을 받았고, 도미니크회에 수사로 들어간다. 이후 악명 높은 역사에서 잘 나타나듯이 도미니크회는 이단과 싸우기 위해 설립된 수도회였고, 피에트로는 당시 교황청에 위협으로 느껴졌던 카타리파를 때려잡는 선봉으로 활약한다. 카타리파는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동정녀 탄생, 육체적 부활, 그리고 성사 등의 교리를 부정하기 때문에 교황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는 열심히 고향의 가족과 친구들을 박해하였다. 카타리파들을 잡아넣고, 종교 재판을 하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였다. 피에트로 때문에 가족의 목숨을 잃고 재산을 상실한 카타리파 사람들은 복수를 계획하였고, 1252년 어느 숲 속에서 지나가던 피에트로를 암살하는 데 성공한다.
학자들은 피에트로가 죽었을 때, 실제로 "Credo"와 같은 글귀를 남겼을 거라고 보지 않는다. 그는 습격을 받아 머리와 가슴에 치명상을 입고서 사망하였다. 글을 남길 정황이 아니었다. 그 이야기는 그의 믿음을 증거하기 위해 꾸며넣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교황은 카타리파와의 대결에 몰두하고 있었고, 피에트로의 죽음을 이용할 필요가 있었다. 카타리파에 반대한 그의 행적과 신앙을 추켜세우기 위해 그를 성인으로 시성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순교자가 되어 성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냥 죽기만하면 안되고, 죽음의 순간에 그의 신앙을 드러내는 증거가 필요하다. 이를 충족하기 위해 "Credo" 이야기가 삽입되고, 그의 시성은 신속하게 진행되어 죽음 후 거의 1년만에 성인으로 인정받았다. 이것은 역사상 가장 빠른 시성의 속도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성 피에트로는 나중에 “종교재판관의 수호성인”으로 기려진다.
이 이야기는 Donald S. Lopez Jr., "Belief," Critical Terms for Religious Studies의 내용 중에서 간추린 것이다. 로페즈는 종교학의 “믿음”이라는 항목을 해설하는 글에 왜 이렇게 골때리는 예를 중심적으로 사용하였을까? 흔히 믿음은 종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이해된다. 우리는 종교를 “~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하곤 하니까. 그러나 종교학의 논의에서는 그러한 전제를 배제하려는 노력이 많이 이루어진다. 종교는 행위하는 것이기도 하고, 이 행위는 꼭 믿음이 전제되어야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가까운 예로 무교(巫敎)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무교가 “무엇을 믿는가”가 분명치 않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종교로 대접하기를 꺼리고 무속(巫俗)이라 부르려 한다. 그러나 믿음(더 정확히는 믿음의 내용이 되는 교리적 지식)이 종교에서 우선순위일 이유는 없다. 그것은 서구적인 전제를 통해 사유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얘기가 좀 엇나갔는데, “믿음”에 대해서는 숱한 신학적 진술들이 있는데, 가장 흔한 것은 믿음은 내적인 신비한 차원이라 쉽게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직접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로페즈는 이러한 진술들에 대해 “이제 됐어”라는 반응을 보이는 듯하다. 알수 없는 내용을 계속 부여잡는 것은 신학에서나 할 일이고, 그렇다면 신앙이 외적으로 드러나는 차원을 갖고 연구를 할 수 있겠다는 것. 그래서 성 피에트로의 신앙이라는 이름 아래 오고간 정치적인 움직임과 재산의 문제들을 들춰보여준 것 같다. 성 피에트로를 그린 더 유명한 그림은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인데, 여기서 피에트로는 근엄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대고 있다. 믿음은 신비 속에 침묵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이.
얘기가 좀 엇나갔는데, “믿음”에 대해서는 숱한 신학적 진술들이 있는데, 가장 흔한 것은 믿음은 내적인 신비한 차원이라 쉽게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직접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로페즈는 이러한 진술들에 대해 “이제 됐어”라는 반응을 보이는 듯하다. 알수 없는 내용을 계속 부여잡는 것은 신학에서나 할 일이고, 그렇다면 신앙이 외적으로 드러나는 차원을 갖고 연구를 할 수 있겠다는 것. 그래서 성 피에트로의 신앙이라는 이름 아래 오고간 정치적인 움직임과 재산의 문제들을 들춰보여준 것 같다. 성 피에트로를 그린 더 유명한 그림은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인데, 여기서 피에트로는 근엄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대고 있다. 믿음은 신비 속에 침묵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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