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거미>>(Implied Spider) 5장, ‘마더 구스와 여성의 목소리’를 읽으며 든 잡생각.
여기서 도니거는 남성 텍스트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찾고 여성 텍스트에서 남성 목소리를 찾는 교차적인 작업을 보여주는데, 신화에서 화자의 목소리가 남성인지 여성인지를 알아보려는 일은 글을 통해서 미지의 상대방의 성별을 짐작하는 블로그질과 비슷한 면이 있다. 아래는 쿨짹님의 글.
+ 성별을 밝힐 필요는 없다. 굳이 숨기시는 건 아니라도 되도록이면 드러내지 않으려하는 분들도 계시는 것 같다.(출처: http://kooljaek.egloos.com/1832410)
+ 어딘가에서는 밝혀졌을지도 모르지만 포스팅을 띄엄띄엄 읽는다던지 예전 포스팅을 마스터하지 않았다면 성별을 알게해주는 그런 구절들을 놓쳤을 수도 있다. 물론 중요한 건 아니다.
+ 가끔 난감할 때가 있다. 꼭 한 블로거가 성별을 숨기려고 한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데 그냥 친분을 쌓아가면서 글에서 느끼는 분위기 소재 등등으로 그냥 내 맘속에 '남자분이시겠지....' 혹은 '여자분이시겠지...'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런 면에서 내가 男블로거인줄 아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알고 보니 반대의 성별을 가지신 경우이다. 그럴 때 또 느낀다. 아... 내 안에 남녀 구분의 편견이 많이 있구나 하고...
+ 며칠 전에 여자블로거라고 생각했던 분이 남자블로거라고 생각했을 때 좀 놀랐었다. 잘 생각해보면 주욱 남자블로거였을 터인데 왜 여자블로거라고 생각했는지 이해가 안된다.
+ 물론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이 장의 도니거 이야기를 읽을 때 시큰둥했던 이유이다. 남성의 이야기에 여성의 목소리가 말할 수 있고, 여성의 이야기에서 남성의 목소리가 말할 수 있다. 그래서 화자가 남성인지 여성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사실 중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나는 “남자 내부에는 51%의 남성과 49%의 여성이 존재하며, 여자 내부에는 51%의 여성과 49%의 남성이 존재한다”는 오쇼 라즈니쉬의 말을 신봉하는 사람이다. 라즈니쉬가 어느 전통에서 그 말을 가져왔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도니거도 친숙한 탄트라 같은 인도 전통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는 아니마/아니무스가 존재한다는 융의 이야기와 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던 나는 연애 시절에 여자친구에게 “우리가 만나는 것은 내 안에 있는 여성과 네 안에 있는 남성이 만나고 있는 거야”라는 발언을 해서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다. 파문이 된 이유는 간단하다. 그게 어디 ‘여자’친구에게 할 소리냐는 것이다. 그냥 솔직하게 내 생각을 말했다가, 나는 이상한 놈으로 찍히고 여자 쪽에서는 자기는 여자도 아니라는 모멸감을 느껴서 수습하는 데 곤란을 많이 겪었다.
목소리를 찾는 것이 중요할 때도 있다.
성적 편향성을 드러내는 텍스트, 혹은 성차의 정치학에 영향을 미쳐온 신화에서는 목소리의 성별을 찾는 작업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경우, 신화의 목소리는 남성일수도 여성일수도 있으며 그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래서 남성 우월적인 텍스트로 알려진 구약성경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찾는 일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카마수트라>>는 여자를 어떻게 꼬셔서 해먹을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남성을 위한 섹스 가이드인데, 이 책의 출발점에는 놀라울 정도로 양성평등적 관점이 전제된다고 도니거는 지적한다. “여자는 누구든지 매력적인 남자를 보는 것을 갈망한다. 남자가 모든 매력적인 여자를 갈망하듯.” 이 책에서 여자는 남자에 대한 생각밖에 없는 존재로 그려지고 남자는 그들을 정복하는 영웅이 되는 등 전형적인 여성에 대한 편견이 나타나는데, 그러한 책에서 뜻밖에도 여성의 목소리가 공감적으로 반향되기도 한다. 책 저자는 여자가 간통에 응하지 않는 이유들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그는 모욕적인 방식으로 나를 꼬십니다.”
“그는 내게 아무 매이는 것이 없어요. 다른 누군가에 매달리고 있어요.”
“그의 얼굴은 비밀을 지켜줄 수 없어요.”
“그의 애정과 관심은 모두 친구들에 가있어요.”
“그는 너무 열정적이고 폭력적이에요.”“그는 언제나 나를 친구처럼만 다루었지요.”
“내가 표정과 행동으로 사인을 줘도 그는 이해하지 못해요.”
“나 때문에 그 사람에게 언짢은 일이 일어나기를 원치 않아요.”
“발각되면 우리 동네 사람들에게 내쫓길 거예요.”
(<<카마수트라>> 5.1.8-.17-43, 웬디 도니거의 영어 번역에서 옮김.)
<<카마수트라>> 연구자들은 지적한다. 책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섹스 자세들에 대한 정교한 설명들은, 같이 체위를 구현해주는 여성파트너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그래서 이 남성 위주의 텍스트에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어가 있다고. 남성 위주의 텍스트에서 숨겨진 여성의 목소리를 발굴하는 것은 지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일임에는 틀림없는데, 읽어낸다는 것 자체가 구조(salvage)가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5장 말미에 도니거는 신화 안에는 다양한 목소리의 공존, 즉 다성성이 존재하며, 남성의 목소리와 여성의 목소리가 함께 있음을 이야기한다. 결국 신화 안의 성적인 목소리는 양성구유(androgyne)의 목소리라는 것이 결론이다. 그 결론을 위해서 이 장은 지나치게 에둘러 왔다. 남성 텍스트 안에 여성 목소리가 있고, 여성 텍스트 안에 남성 목소리가 있음을 그렇게 복잡하게 늘어놓아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여성의 목소리가 담기는 것과 남성의 목소리가 담기는 것이 평등한 것이 아니라는 지적은 중요한 포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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