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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드의 통치술 논의

by 방가房家 2023. 5. 16.

정치적인 이야기들이 나오면 아무래도 독서 강도가 떨어지는 편인데, 탈랄 아사드의 최근 책 <<Formation of the secular>>(Stanford University Press, 2003) 서문을 읽을 때는 정신이 바짝 들었다. 이 사람이 우리나라를 들여다보면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 상황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사드는 서구 이론가들이 이야기하는 민주주의 사회 구성원리에 대해 비판하면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즉 서구 지식인들이 이야기하듯이, 개인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독자적인 자율성을 지니며 이들의 의견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공동의 가치를 창출한다는, 우리가 시민 사회의 원리라고 알고 있는 내용에 대해 아사드는 이야기하고 있다. 그가 롤즈(Rawls)의 중첩적 합의(overlapping consensus) 개념을 예로 들며 비판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이상이 현대국가의 원리가 되기에는 턱없이 나이브한 것이라는 점이다. 현대 국가를 구성하고 작동하게 하는 것은 성원들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아니라, 그러한 것들 이면에서 굴러가는 권력의 작용, 술수라는 것이다.
현대 자유 정부의 뚜렷한 특성은 강제(공권력)도 설득(합의)도 아니라, ‘자기 통제’(self-discipline), ‘참여’, ‘법’, ‘경제’ 등을 정치적 전략의 요소로 사용하는 통치술(statecraft)이다. (3)

이어서 그는 국민들을 실망시키는 정부에 대해 이야기하며, 중요한 것은 자율적 주체의 참여가 아니라 교묘한 정치 기술임을 강조한다.
체제가 위험에 처한다면, 그것은 시민들의 자율규제(self-enforcement)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대부분의 정치가들이 알고 있듯이, “체제가 위험에 처하는 것”은 일반 서민들이 잘 산다는 느낌을 더 이상 향유하지 못할 때이고, 통치가 피치자들에게 전반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이며, 국가 안보 기구들이 총체적으로 비효율적일 때이다. 너무 많은 일반 서민들을 심각하게 실망시키는 상황을 피하게 하는 정치 기술과 경제가, 자율적 변수로서의 자기 통제보다도 중요하다. (3-4)

이어서 그는 현대의 의회 정치에서 표심이 직접 반영되기 보다는 압력으로 기능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여론 조사의 경우도 비슷한데, 국민의 정치적 의사는 직접적으로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의해 “매개”된다. 그러면서 권력 형성에서 미디어의 역할에 대해서도 간단히 지적한다. 아사드가 통치술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매개되는 부분, 그의 용어로 정치적 매개체(political medium), 혹은 시민 표상(representation of citizenship)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의 문제에 핵심적으로 관련된다. 이 매개에 대한 논의는 책 중반부의 정치 신화에 대한 분석으로 이어진다.

내가 파악하는 한, 자율적인 시민들을 양성하여 그들의 합의를 통해 사회를 꾸려나가려는 것이 지금 우리나라 정부의 이상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 정부가 겪는 어려움의 상당수는 이 이상이 현실과 충돌하는 어려움이다. 나 역시 이 이상을 지지하고 그것을 풀어가는 정부의 방향이 맞다고 생각하기에 아직도 애정을 갖고 노무현 정권을 지지하는 얼마 남지 않은 사람 중 하나이다. (이 부분에 대해 순진하다고 공격할 사람은 해도 좋다. 다만 이 문제로 길게 논쟁을 벌이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한나라당에 대한 높은 지지율을, 나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무언가를 향한 표현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우리 국민이 갖고 있는 아사드적 권력 이론의 표현이라고 보인다.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가 군사 정권 시절의 ‘강제’로서의 권력 운용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것은 대화와 설득이라는 서구 지식인의 이상만 좇지 말고 그러한 과정을 보이지 않게 유도하고 통제하는 통치의 묘(妙), 한비자(韓非子) 급의 술수를 보여달라는 주문이다. 흔히 들리는 아마추어 정권이라는 비아냥은 한나라당 인간들이 프로라는 의미가 아니라 아직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갖추어진 적이 없는 권력 운용을 보여달라는 이야기이다.
권력에 대한 우리 국민의 감각은 상당히 뛰어나 (아사드의 논의가 근거하고 있는) 푸코적인 권력 개념도 이미 체득이 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나는 그러한 국민들의 감각에 거리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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