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유교와 불교의 관계에 대한 논문들을 읽고 간단히 메모.
John Jorgensen, "Conflicts between Buddhism and Confucianism in the Chosŏn Dynasty," <<불교연구>> 15(1998).
요르겐센은 (제목에 나온 충돌보다는) 조선시대 불교에 끼친 유교의 영향에 대해 두 가지 흥미로운 논점을 제시한다. 하나는, 조선시대 불교에서 선이 대세를 이루게 된 것은 성리학이 조선사회의 이념이라는 점과 무관치 않다고 것. 신유학이 선불교 형이상학과의 대화를 통해 형성되었음을 주지시키며, 저자는 선불교에 성리학과 공유하는 언어와 관념 체계가 존재하고, 그래서 대화가 되는 파트너였다는 점을 강조한다.(199) 둘째, 불교가 성리학으로부터 도통(道統) 개념을 수용하였다는 것. 불교 전통에도 계승관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신수/혜능에서 볼 수 있듯이), 성리학의 도통에서 통(統)은 단순한 계승 관계를 넘어 궁극적 실재와의 연결을 함축하는 형이상학적 요소(220)가 가미된 지적 승계 관계(201)인데, 조선 불교에서는 서산 이후 이러한 식의 종통(宗統)이 확립되었다는 것이다.(231-2) 서산 이후, 석보(釋譜)를 작성하는 작업에서, 이전에는 선맥에서 제외되었던 지눌이 들어간 것이 계승 관계의 새로운 면을 보여준다.
(統의 개념과 유교식 의례의 정착 등은 불교에도 영향을 끼쳐 결과적으로 17세기에 선의 傳燈이 형성된다. 서산이 선을 부흥시킴에 따라 역으로 전등이 형성되어, 太古普愚, 大慧, 菩提達摩에 이르는 전등이 완성된다. 이 시기는 사회 전체적으로도 族譜를 통한 가계의 성립이 중요한 문제로 등장하며, 불교도 유교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17세기 새로운 전등 형성을 보여주는 자료들:
孫永植, <<野雲堂大禪師行狀>>, 한불전 9: 758c. "若其淵源系統 則於西山爲七世 於太古十三世 於達磨四十二世 於世尊七十世"
西山, <<三老行蹟>>, 한불전 7: 753a. "大慧和尙 六祖十七代嫡孫也 高峰和尙 臨濟十八代嫡孫也 吁 師以海外之人 密嗣五百年前宗派 猶程朱軰 生乎千載之下 遠承孔孟之緖也 儒也釋也 傳道則一也"
최연식, <성과 속의 대립: 조선 초기의 유불논쟁>, <<정치사상연구>> 11-1(2005).
제목을 이루는 성과 속은 엘리아데에 대한 어설픈 인용이다. 성과 속이 본질적으로 대립적이라는 이해는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불교가 세속에 초연해야하는 것이 본연의 이상이라는 이상한 전제를 바탕으로 논쟁을 서술하고 있다.
조선 초 유불의 논쟁이 세속성의 문제를 쟁점으로 삼았다는 것은 좋은 지적이지만, 저자가 말한대로 그것이 정통과 이단을 구분하는 기준이었는지는 의문이다. 불교가 세속의 변화를 밝히는 데 어둡고 그것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정도전이 말한 수작만변(酬酌萬變)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어떤 종교보다도 세속적으로 세속을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유학자들의 비판(48-49)은 흥미롭다. 중세 시토회가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금욕적인 이상을 갖고 변방에 공동체를 건설했는데, 그 결과로 주체하기 힘든 부가 쌓여 12세기에는 가장 탐욕스러운 집단이라는 오명을 얻게 된 역설적 상황[부가 주는 영광을 버렸기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이 떠올라서이다.
송재운, <삼봉 정도전과 함허당의 유불논쟁>, <<국민윤리연구>> 37(1997).
얼핏 정도전과 기화의 논쟁을 대칭적으로 서술한 글로 보이지만, 실은 “동국대” 교수인 저자가 불교인으로서 남긴 독서 노트를 덕지덕지 삽입해 놓은, 이상한 논문이다. 내가 보기엔 삼봉이나 함허당이나 사안을 놓고서 각각 자기 전통의 입장만 늘어놓으며 평행선을 달리는 것이 이 논쟁의 모습이라고 생각되는데, 이에 대한 저자의 기술은 다음과 같다. 삼봉의 주장은 “다소 유치하고” “자신의 입설을 위해 부회함이 지나치고” “주자의 ‘허령불매’가 불교에서 나온 심 개념임을 간과한다.” 삼봉의 말은 “타당하지 않다”. 이에 반해 기화의 주장은 “당시 유자들이 불교를 쉽게 이해하기 위함”이고 “허망한 설이 될 리”가 없고, “태극, 무극과 같은 형이상자를 가지고 한차원 높은 데서 몇 수를 가리키고 있다.” “함허당의 논의는 유교를 철저히 이해한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차원이 놓고 일견 합리성도 있어 보인다.” 결론적으로 “함허당은 유교 이론 전반에 걸쳐 유학자를 능가할만한 지식을 이 대론에서 과시하고 있다.”
Robert E. Buswell, "Buddhism under Confucian Domination: The Synthetic Vision of Hyujŏng," in Culture and the State in Late Chosŏn Korea.
버스웰은 한국 불교사 서술에서 조선 불교가 어두운 시기로 묘사되어 왔다(134)고 지적하면서, 그러나 휴정의 작업은 신유교 영향에 대한 불교의 반응을 잘 보여주고 유교를 다루는 방식을 통하여 조선 후기 불교의 의제를 설정하는 탁월한 선구가적 역할을 했다(135)고 평가한다. 휴정을 통해 조선 불교사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가능하다는 것. 그러나 정작 휴정의 작업에 대한 그의 서술은 너무 평범한 것이어서 별로 논평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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