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배움/메모116

사람을 일컫는 방房 네덜란드의 한국학자 왈라벤의 다음 논문에는 “무당의 범주”라는 부록이 짤막하게 실려 있다. 간단하지만 주목할만한 내용이어서 번역해 실어둔다. Walraven, Boudewijn C.A. "Shamans and Popular Religion Around 1900," In Henrik H. Sorensen, ed. (Copenhagen: Seminar for Buddhist Studies, 1995), 130. 신문에서 ‘방房’으로 끝나는 다음과 같은 이름들을 볼 수 있었다. 방은 제주도에서 무당을 가리키는 말인 심방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을 가리키는 접미사이다. 이 이름들이 개인의 별명을 의미하지 않음은 그 맥락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첫 번째 이름[작두방]은 겉으로는 그런 식으로도 사용되긴 했지만. (.. 2023. 4. 27.
유교 귀신론 간단 메모 논문 두어 편 읽고 정리할 내용은 아니지만, 더 깊이 공부할 기회는 없을 것 같아 유교 경전에서 귀신에 관련한 중요한 원문 몇 개를 정리해 본다. 유학의 귀신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원문들이다. 참고한 논문은 다음과 같다. 김현, “귀신: 자연철학에서 추구한 종교성”, 한국사상사연구회, (예문서원, 2002). 차남희, “16`17세기 주자학적 귀신관과 의 귀신관”, 40-2 (2006년): 5-25. 1. 원시유교 경전에서 귀신론 논의의 역사를 관통하는 두 줄기는, 제사 대상으로서의 귀신의 존재를 승인하려는 태도와 자연현상의 일환으로서 합리화하는 태도라고 생각된다. 고대 문헌에서 이 두 태도를 볼 수 있다. 귀신의 덕을 찬양하는 은 제사에서 받들어지는 귀신에 대한 이야기이다.(후에 다산은 이 구.. 2023. 4. 27.
누구든지 무엇인가 가르쳐줄 수 있다 에코의 에는 갑자기 ‘학문적인 겸손’을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온다. 제목만 보면 에코 분위기와는 다른 내용이 아닌가 생각이 들지만, 역시 그는 하나마나한 훈계조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다음은 그의 체험에서 비롯한 조언이다. 어느 날 파리의 어느 책 손수레에서 필자는 조그마한 책자 하나를 발견하였다.……그 책은 발레라는 어느 수사의 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필자는 그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발레 수사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되풀이할 뿐 전혀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 못한 불쌍한 친구라는 것을 깨달았다. 필자가 그 책을 계속 읽은 것은 ‘학문적인 겸손’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고집 때문이었고 필자가 투자한 돈을 회수하기 위해서였다. 필자는 계속 읽었고, 어느 지점에선가 거의 괄호 안에 들어있듯이 아마도.. 2023. 4. 27.
빗나간 해석 기독교인들은 일본의 압제에 애국적 순교자가 되었다. 평범한 한국인은 기독교인이 되어 조국에 대한 자부심과 침략자에 대한 저항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1919년 한국의 민족주의자들이 독립선언문을 발표했을 때 서명자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이 기독교인이었다. 그 당시 한국의 기독교인은 전체 인구의 1퍼센트에 불과했다. 최근에 일어난 박해는 폭력의 정도에서 일본인들의 박해를 따라갈 수 없지만 여전히 계속 이어졌다. 1970년대 중반부터 이어진 남한의 군사독재에 맞서 대중의 저항이 커지자, 교회는 개혁을 강하게 요구했다. 개신교와 가톨릭은 함께 전국 시위를 주동하고, 주교와 신자들은 정치범이 되어 수없이 감옥에 갇혔다. 한국 교회는 해방신학을 한국의 상황에 맞게 고친 민중신학으로 발전시켰다. 반정부 지도자 김대중은.. 2023. 4. 27.
마나로서 지녀진 예수 필요한 부분이 있어 선생님의 옛 글을 찾아보았다. 정진홍, “토템과 마나의 예수”, 217호(1976년 7월): 54-58. (이 글은 후에 (1986)에 수록된다.) 파일: Totem_Mana_Jesus.pdf 종교학 용어 셋을 인상적으로 사용해서 한국의 예수 이미지가 정립되지 않았음을 비판하는 글이다. “교회 안에서 토템이 되어버린 예수상, 신학에 의해서 터부가 된 예수상, 그리고 신도들에 의하여 마나로 화해진 예수상”(58)이 그 내용이다. 조금 더 상세히 말하면 다음과 같다. 이처럼 교회는 예수 토템의 기치를 휘두르며 세상-다른 토템-과 스스로를 구분하는 열심 속에서 예수의 이미지를 부각시켰고, 신학은 교회와 신도들을 질책하는 오만한 자리에서 예수의 이미지를 터부화시켰으며, 신도들은 제각기의 삶의.. 2023. 4. 27.
다이몬, 신이 아닌 존재 플라톤의 에서 ‘다이몬’에 대해 설명해주는 대목을 만나다. 은 에로스에 대한 찬양으로 이루어진 대화를 싣고 있는데, 그 중에서 중심으로 이루는 것은 소크라테스의 이야기, 더 정확하게는 소크라테스가 들은 디오티마의 이야기이다. 소크라테스는 디오테마에게 배운 것을 소개한다. 그 중에는 에로스가 신이 아니라는 내용이 있다. 그는 묻는다. “그러면 도대체 에로스는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는 가사적인(죽을 수 있는) 것과 불사적인 것의 중간자라 할 수 있지요.” “디오티마여! 그 중간자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소크라테스여! 그것은 위대한 정령이라 할 수 있지요. 사실 정령(daimon)이라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신과 가사적 존재의 중간자라 할 수 있답니다.” 정령은 신이 아니고, 신과 인간을 매개.. 2023. 4. 27.
매럿 이전과 이후의 종교학사 매럿에 대한 한 논문 소개에서 이야기하였듯이, 매럿은 종교학사에서 거의 잊혀져가는 학자에 가깝다. 그런데 키펜베르크는 매럿이 전애니미즘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시점(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시점)을 종교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으로 지적한다. 굉장한 통찰이다! 20세19세기 종교학은 원시종교를 통한 종교 기원의 탐구가 유행했던 시기이다. 물론 그 시기의 종교 연구도 ‘야만인’의 종교를 문명사회의 종교를 이해하기 위한 자료로 끌여들였다는 점에서, ‘그들’과 ‘우리(서양인)’ 간의 연속성 상에서 이해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이해의 진전을 평가해야 할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야만인은 야만이고 현대 사회에 존재하는 비슷한 부분은 고대의 ‘흔적’ 혹은 ‘잔존물’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 시기 원시종교.. 2023. 4. 26.
넌 이미 죽은 목숨 인류학자 에반스프리차드의 책에 등장하는 ‘살아있으되 죽은 사람’ 이야기. 사회생활에서 나타나는 의례의 강력한 효력에 대한 인상적인 예이다. 사회적 자아의 죽음은 한 개인의 죽음이나 진배없다는 이 이야기는 그리 과장된 것으로 들리지 않아 슬픈 여운을 남긴다. 마을에는 덥수룩한 외모의 우울한 표정의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가트부옥(Gatbuogh)였다. 이 사람은 몇 년 전에 멀리 여행을 나갔다가 오랫동안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마을에 그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마침내 그를 위한 장례식이 치러졌다. 그 후 그가 마을에 돌아왔고 내[에반스프리차드]가 방문할 때에도 마을에 살고 있었다. 그는 ‘조악 인 테그’(joagh in tegh), 즉 살아있는 유령이라고 묘사되었다. 나는 “.. 2023. 4. 26.
그들을 연구하듯이 우리를 연구하는 것 학계에서 솔직한 글을 만나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그것은 ‘예의 없음’을 동반하지 않고서는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리라. 나는 그런 글에서 좋은 느낌을 받는다. 그것이 내 생각과는 반대일지라도. 세속적인 현대 미국 대학에서 가장 서글픈 사실은 성서에 관한 표준 강좌들이 커리큘럼 중에서 가장 형편없으며 게다가 썩어가는 중이라는 점이다. 무수히 많은 학생들이 대학에서 성서를 공부함으로써 오히려 신앙을 잃어버린다. 이는 대학의 성서 학자들이 근대 대학에서 확립된 ‘역사비평’ 방법을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인데, 성서연구에 대한 이러한 접근법은 19세기 독일의 자유주의적 프로테스탄트주의에 연원을 두고 있다. …… 대학의 성서 비판가들은 자신들의 방법으로 무장한 채, 수세기에 걸친.. 2023. 4. 26.
뮐러의 '진정한 종교' 막스 뮐러의 글을 읽다보면 신학적인 이상이 존재함을 느낄 수 있다.(예를 들면, , “서문”, “선교에 대해서”) 19세기에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닐지 모르지만, 지금 시각에서 보면 새삼스럽게 느껴지며 선교사들과의 관계에서 유의미하게 작용했으리라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키펜베르크는 막스 뮐러에 대해 서술하면서 이 점을 속시원하게 지적한다. 뮐러는 감각적 지각과 이성적 지각과 더불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보편적인 인간의 능력이 있다고 보았다. 이 능력은, 슐라이어마허가 이미 다룬 바 있는 것으로, 인간으로 하여금 유한한 세계에서 무한성을 지각하는 것을 가능하도록 해준다. [뮐러에 따르면] 언어의 역사 덕분에 우리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시기로 돌아갈 수 있으며, 여기서 “진정한 종교”(authentic re.. 2023. 4. 26.
좀더 현실적인 개념을 만들었다면... 번역어로서의 ‘종교’라는 단어는 기독교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생겨난 것이다.……메이지 정부가 서구 열강과의 외교 관계를 확립시키려 했을 때……이러한 상황에서 기독교나 불교, 신도 등을 하나로 다룰 개념이 필요하게 되어 종파라는 의미가 아닌 ‘종교’라는 용어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때가 1874년(明治7)이다. 여기서 염두에 두어야 할 사실은 ‘종교’가 기독교나 불교와 같은 제도종교, 즉 이 책에서 말하는 교단종교만을 의미하는 것이지 자연종교를 포함하는 말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대다수의 일본인이 교단종교의 신자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무종교’라고 말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거침없이 ‘무종교’를 표명한다고 비난받는 것도, 그 원인은 대다수 일본인의 종교 감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종.. 2023. 4. 26.
타일러, 애니미즘, 심령술 에드워드 타일러의 (1920[1873])에서는 그 유명한 “최소한의 종교 정의”를 제시한다. 그것은 “영적 존재에 대한 믿음(the belief in Spiritual Beings)이다.”(424) 그는 ‘영에 대한 믿음’을 일컬어 ‘애니미즘’이라고 불렀다. 사실 애니미즘은 간간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표현이다. ‘스피리추얼’(spiritual)한 존재에 대한 믿음이니까 간단히 ‘스피리추얼리즘’(spiritualism)이라고 하면 간명할텐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고충이 있었다. 스피리추얼리즘(spiritualism)은 19세기 후반부터 유럽에 유행한, 영매를 통해 죽은 자와 교통하는 새로운 종교현상을 지칭하는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애니미즘(Animism)이라는 이름 아래 영적 존재에 대.. 2023. 4. 26.
타일러의 귀신론 E. B. Tylor, "demonology," , 9th ed. (New York: C. Scribner's sons, 1878), 7: 60-4. 파일: Taylor_demonology__EB_9th.pdf 인류학자 타일러가 집필한 1878년 "demonology" 항목을 읽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다. "demonology"는 ‘악령숭배’라고 이해하기 쉬운 용어이다. 그러나 타일러는 ‘데몬’을 중립적인 의미에서 사용하고 있다. 데몬은 죽은 자의 혼령의 의미로, 사실상 "demonology"는 그가 ‘영적 존재에 대한 믿음’이라고 주장한 ‘애니미즘’과 크게 다르지 않은 용어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종교 일반의 이해를 위한 기초적인 현상으로 다루어진 것이다. (19세기 말에 사용된) "demonol.. 2023. 4. 26.
18세기말 영국의 종교 논의 다음 논문은 1688~1702년(명예혁명부터 윌리엄 3세 서거까지) 영국에서 있었던 종교(religion)와 타종교(religions)에 대한 논의들을 정리한 글이다. 공고했던 기독교의 위치가 흔들리고 새로운 종교에 대한 정보들이 유입되던 시기에, 영국 지식인들이 종교에 대한 담론을 어떻게 형성했는지를 볼 수 있다. 주장의 내용은 어느 정도 예견되는 것이지만 어떠한 “자료”를 통해 그런 내용을 살펴볼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었던 글. David Pailin, "British Views on Religion and Religions in the Age of William and Mary," 6-1 (1994): 349-375. [논문파일: Pailin-British_views_on_Religion.pdf ].. 2023. 4. 26.
중세 서양의 종교행위들 중에서 상당히 자극적인 이 사례들이 바이넘 저작의 주요 내용인 것은 아니다. 성찬과 단식과 관련된 성인들의 행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말하는 맥락에서, 다소 극단적인 신체에 대한 혐오가 “없지는 않았음”을 말하는 과정에서 살짝 보여준 사례들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와는 참으로 다른 중세인들의 감각에 의해 빚어진 기적과 종교행위들은 눈길을 끈다. 이 생경함은 예전에 호이징하의 을 읽으며 느낀 것에 가까운데, 그보다 더 강력하다. 바이념의 다음 책에서 조금 인용해본다. Caroline Walker Bynum, (Berkel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7). 의도적이고도 체계적으로 몸을 괴롭히는 것은 많은 [중세] 수도원 여성들의 매일의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예를 들어 시.. 2023. 4.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