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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메모

유교 귀신론 간단 메모

by 방가房家 2023. 4. 27.

논문 두어 편 읽고 정리할 내용은 아니지만, 더 깊이 공부할 기회는 없을 것 같아 유교 경전에서 귀신에 관련한 중요한 원문 몇 개를 정리해 본다. 유학의 귀신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원문들이다. 참고한 논문은 다음과 같다.

김현, “귀신: 자연철학에서 추구한 종교성”, 한국사상사연구회, <<조선 유학의 개념들>>(예문서원, 2002).
차남희, “16`17세기 주자학적 귀신관과 <<천예록>>의 귀신관”, <<한국정치학회보>> 40-2 (2006년): 5-25.

1. 원시유교 경전에서

귀신론 논의의 역사를 관통하는 두 줄기는, 제사 대상으로서의 귀신의 존재를 승인하려는 태도와 자연현상의 일환으로서 합리화하는 태도라고 생각된다. 고대 문헌에서 이 두 태도를 볼 수 있다. 귀신의 덕을 찬양하는 <<중용>>은 제사에서 받들어지는 귀신에 대한 이야기이다.(후에 다산은 이 구절로부터 만인의 모심을 받는 상제로서의 귀신 개념을 주장한다고 한다.) 반면에 <<주역>>의 귀신은 우주의 운행과 관련되는 생뚱맞을 정도로 추상적인 존재. 
“귀신의 덕德은 성대하도다. 보려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지만 만물의 주체가 되어 빠뜨리지 않는다. 그리하여 천하 사람으로 하여금 재계하고 옷차림을 깨끗이 하여 제사를 받들되, 신이 위에 계신 것처럼 옆에 계신 것처럼 여기게 한다.” <<중용>>
“정기精氣가 어리어 사물이 되고 혼魂이 유산遊散하여 변화하니, 이로써 귀신의 정상情狀을 알 수 있다.” <<주역>>, <계사전>
2. 송대 성리학에서
성리학에서는 귀신을 세계의 운행 과정의 일환으로 합리화하려 한다. 정이는 귀신이 “조화의 자취”(造化之迹)라고 상당히 추상화시켜서 이야기한다. 주희의 <<주자어류>>에는 귀신에 대한 논의가 풍성하게 담겨 있어서 나중에 찾아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도 귀신을 펴지고 구부러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리학의 전형적인 논리라고 생각된다. 또 주희는 제사의 근거로 귀신 개념을 확립하려고 했는데, 이 언급은 한국의 종교생활에도 큰 영향을 끼친 중요한 언급이라고 생각된다.
“신神은 펴지는 것이고 귀鬼는 구부러지는 것이다.……귀신은 음과 양이 줄어들고 늘어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귀신은 단지 귀일 뿐이다.”
“사람이 죽게 되면 결국은 흩어지는데 곧바로 다 흩어지지는 않기 때문에 제사 때 감응感應하여 오는 이치가 있다. 세대가 먼 선조는 그 기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 그의 자손이라면 결국 같은 기이기 때문에 감응하여 통하는 이치가 있다.” <<주자어류>>, <귀신>
3. 한국 성리학에서
조선 성리학에서 귀신을 제사의 근거로 삼는 논리는 심화되었다. 특히 귀신을 사후에 기가 흩어지는 과정에만 존재하는 일시적인 존재로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그런 일시적인 존재에 대한 제사가 헛된 것이 아님을 논증하는 일은 유학자들에게 난제였던 모양이다. 4대 이후의 먼 조상에 대한 제사가 유효한, 다시 말해 감응하여 통할 수 있는 것임을 말하기 위해서 이이는 기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서도 귀신과의 감응이 일어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그의 이기론에서 다소 무리한 논증이라고 한다. 그만큼 제사의 정당성을 밝히는 것이 시급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먼 대의 선조는 진실로 능히 감통感通할 기氣는 없지만 일념지성一念至誠으로 드디어 감통할 수 있는 것은, 비록 감통할 기는 없으나 능히 감통할 수 있는 리理가 있기 때문이다. 죽은 지 오래지 않으면 기로써 감통하고 죽은 지가 이미 오래이면 리로써 감통하니, 기가 있거나 없거나 그 감통함은 마찬가지이다. <<율곡집>>, <사생귀신책>
*이후 서학과의 만남으로 조선 유학자들에게는 귀신론에 대한 새로운 질문이 주어지게 되는데, 여기서는 생략. 전에 간략히 소개한 안영상의 글도 참고할 만하다.
유학의 귀신론을 간단히 살펴 본 소회를 조심스레 적어보면 이렇다. 이것은 의례가 교리에 선행해서 존재했던 사례라고 생각된다. 제사라는 의례 행위는 고대 중국부터 지금까지 엄연히 존속해왔다. 공자가 귀신에 대한 분명한 답을 회피했건 말았건 제사는 이전부터 죽 계속되어왔고 유교 종교생활의 핵심이었다. 의례의 실천에 대한 설명은 차후에 고민되었고 그 결과 귀신론이 발달되어 왔다고 생각된다. 교리를 행위화하기 위해 의례가 만들어지는 것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의례를 정당화하거나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교리가 생성되는 것이 종교사에서 더 자연스럽다는 것이 내 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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