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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메모

다이몬, 신이 아닌 존재

by 방가房家 2023. 4. 27.

플라톤의 <<향연>>에서 ‘다이몬’에 대해 설명해주는 대목을 만나다.

<<향연>>은 에로스에 대한 찬양으로 이루어진 대화를 싣고 있는데, 그 중에서 중심으로 이루는 것은 소크라테스의 이야기, 더 정확하게는 소크라테스가 들은 디오티마의 이야기이다. 소크라테스는 디오테마에게 배운 것을 소개한다. 그 중에는 에로스가 신이 아니라는 내용이 있다. 그는 묻는다.
 
“그러면 도대체 에로스는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는 가사적인(죽을 수 있는) 것과 불사적인 것의 중간자라 할 수 있지요.”
“디오티마여! 그 중간자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소크라테스여! 그것은 위대한 정령이라 할 수 있지요. 사실 정령(daimon)이라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신과 가사적 존재의 중간자라 할 수 있답니다.”

정령은 신이 아니고,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존재이다.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정령은 어떠한 능력을 갖고 있는지요?”
“정령들은 신들에게는 인간들이 전하는 기도와 번제물들을, 그리고 인간들에게는 신들이 전하는 그들의 뜻과 번제에 대한 답례의 선물들을 해석해주고 전달해줌으로써, 신과 인간의 중간에 존재하면서 그 빈틈을 채워주고 이 우주 전체를 그 자체에 결합시켜주는 능력을 지닌 존재라 할 수 있지요. 정령들의 그러한 역할 때문에, 모든 예언술과 번제, 입문식, 주문 그리고 모든 예언과 마술에 관한 사제들의 기술이 번창할 수 있었지요. 사실 신은 인간들과 섞이지 않는 법인데, 이 정령들 덕분에 신들과 인간들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교제와 대화가 가능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러한 일들에 능통한 사람을 신통(神通, 절묘한 번역이다!)한 사람이라 부르는 반면, 그외 다른 일들에 능통한 사람, 즉 보통의 기술들이나 특정한 손재주를 지닌 사람을 장인이라 부른답니다.”
[플라톤, 박희영 옮김, <<향연: 사랑에 관하여>>(문학과지성사, 2003), 118-19.]
그리스 종교를 잘 몰랐던 나로서는 다이몬에 대한 딱 부러지는 설명에서 알게 된 것이 많다. 우선 다이몬이 신이 아니라는 것. 나는 다이몬이 유일신(God)은 아니라고 해도 잡신(gods) 계열에는 속할 줄 알았는데, 그리스 체계에서는 엄연히 계급이 나뉘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최근에 조사했던 내용은 ‘다이몬’이 기독교 세계에 잔존해 있다가(영어로는 '데몬'(demon)) 2천년이 지나 비서구 세계의 이방문화의 존재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사용된 사정에 대해서였다.(타일러의 귀신론) 기독교 세계에 머무르는 동안 데몬에겐 악령이라는 평가가 덧붙게 되었고, 결국엔 이 부정적 함의를 벗어던지기가 힘들어서 정령(spirit)이라는 단어로 대체된다. 그래서 인용한 책에서 사용된 ‘정령’이라는 번역은 적절하다.
한국의 ‘귀신’에 서양인들이 처음 사용한 명칭도 ‘데몬’이었는데, 1900년 이후엔 ‘정령’으로 바뀌게 되었다. 귀신을 신(god)이 아니라 데몬/정령으로 부른 것은 이해가 가는 것이지만, 위에서 소개한 그리스 문화의 엄밀한 용법에서 볼 때는 어긋나는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스 문화에서는 ‘신/다이몬/인간’이라는 엄밀한 3항 분류가 존재했다. 반면에 동아시아 전통에서 귀신(鬼神)은 신(神)이다. 무당들이 모시는 것은 ‘신’이다. 그래서 신이 비신(非 神) 혹은 반신(半神) 계열인 데몬으로 불리는 것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번역이다. 개념의 문화적 층위가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당대 문화적 맥락의 위치에서 상응하는 것을 찾아낸 결과이다.
내가 일본 종교에 밝지 않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의문이 있다. 나는 한국 전통의 신/귀신이나 일본의 신(가미)이 다르지 않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각자의 역사적 발전을 거치긴 했지만 같은 뿌리를 가졌고, 신 개념에 대한 생각도 비슷한 점이 더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과정을 거쳐서인지 모르겠지만 일본의 신들은 영어로 ‘가미’(kami)라고 음역되든지 더 일반적으로는 신들(gods)이라고 표현되는 것 같다. 그래서 신국(神國) 일본은 ‘신들(gods)의 나라’로 영미권에서도 인정받는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정령의 나라’라고나 할까?
 
디오티마라는 무녀(巫女, 이 또한 매력적이면서도 위험을 담지한 번역이다)가 전해준 지혜로운 이야기를 듣다가 내 논문이 생각나 괜히 심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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