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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메모116

소크라테스에게 영적인 신호란? 나는 소크라테스의 글을 그리 많이 읽은 편이 되지 못하지만, 가끔 철학에서 그가 다루어지는 방식에 불편함을 느길 때가 있다. 그는 분명 “철학의 아버지”이다. 하지만 간혹 우리는 그에게서 우리가 생각하는 근대적 철학자 이미지를 추출해내려고 강요하는 때가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그가 갖고 있던 신적인 영역에 대한 존중을 무시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될 때가 있다. 루이-앙드레 도리옹, 김유석 옮김, (이학사, 2009)에서 그런 걱정에 도움이 되는 구절들을 옮겨 보았다. 소크라테스가 종교적인 차원을 담고 있음에 분명한 이 임무를 근거로 내세울 때마다, 그는 어떤 때는 자신이 신에게 강력한 도움을 제공하며 신에게 봉사하는 중이라고 주장하고( 23b, 30a), 또 어떤 때는 자신이 신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라.. 2023. 4. 26.
종교학사에서 매럿에 대한 평가 20세기 초 종교학사에는 “Robert Ranulph Marett”이라는 인류학자가 있었다. 종교학사 책에서 ‘마레트’라는 이름으로 주로 번역되어온 이름인데, 영국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한 이 학자의 이름은 좀더 버터 발린 발음으로 표기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글브리태니커와 국어사전에 실린 대로 “매럿”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된다. [자신이 없어 "국립국어원"을 검색해본 결과, 다음과 같은 외래어표기법 규정이 있음을 찾을 수 있었다. 어느 표기나 장단이 있겠지만, 규정대로 따르기로 하였다. Marett 「명」『인』 영국의 인류학자(1866~1943). 우리말 표기: 매럿(O), 마랏(X), 마레트(X), 마렛(X), 마렛트(X)] 사실 이 학자는 지나가면서 언급된 적은 있어도 자체.. 2023. 4. 26.
골목길의 언어 저자의 고집스러움이 잔뜩 묻어 있는 이런 책이 좋다. 임석재의 (북하우스, 2006)은 욕 들어먹기 딱 좋은 책이다. 그것은 저자가 책 처음부터 끝까지 주의를 하고 있는 “막연한 낭만주의와 철부지 감상주의”라는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것이 얼핏 보면 소위 달동네라는 지역을 누비며 사진을 찍고 골목길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 책에 대한 대부분의 어른들의 반사적인 반응일 것이다. 저자가 조사하러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도 그런 것이었으리라. 책에도 재개발이 되지 않고 골목길로 남아있는 것을 한스러워 하는 주민들의 반응이 적지 않게 담겨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굴하지 않고 그 자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간에 대한 살뜰한 애정을 담아낸다. 공간에 대한 애정은 미학적인 것인 동시에 가장 효율적인.. 2023. 4. 26.
뮐러의 <종교학으로의 초대> 중에서 신의 개수를 기준으로 종교를 분류하는 기술은 선교사 문헌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일신론과 다신론의 구분을 필두로 해서 거기서 파생되는 복잡한 용어들이 등장하는데, 막스 뮐러의 저작 중에서 그 어휘들을 완벽하게 정리해서 제공하는 대목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매우 중요하고, 어떤 목적을 위해서는 매우 유용한 분류가 다신론적(polotheistic), 이원론적(dualistic), 유일신론적(monotheistic) 종교로 나누는 것이다. 종교가 상위의 힘(Higher Power)에 대한 믿음에 주로 의존하는 것이라면, 그 상위의 힘의 성격은 세계의 종교들을 분류하는 가장 독자적인 특성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 게다가 두 다른 종류들을 추가하는 것이 확실히 필요하다. 그들은 단일신론적(henoth.. 2023. 4. 26.
방이라는 글자 종교학이나 기독교 못지않게 이 블로그의 주 테마로 유지되고 있는 방(房)의 이미지에 대한 자료 추가.(현재 이 블로그에서 ‘방씨’를 검색하면 이 글 말고도 8개의 글이 검색된다. --;) 방(方)이 아니라 방(房)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 우리 사회에서 “OO방”이라는 언어 형식이 강세를 띠고 있음에 대해서 진작부터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노래방, 찜질방, 피씨방, 게임방 등의 인기 업종들에 의해 대표되듯이, 우리 사회에서 ~방이라는 공간에 대한 애착은 최근 10년간 중요한 사회현상으로 부각되어오고 있다. 사적 공간의 창출의 욕구와 이에 부응하는 상업적 형식의 공급은 다방(茶房)을 모태로 하여 한국 근대사회 한켠에 지속되어 왔다. 현재 시점에서 ~방에 필적할만한 공간은 모텔-고시텔-휴게텔의 용법에서 보이는.. 2023. 4. 26.
심청정/청정심 메리 더글러스의 을 읽을 때, 책에서 다루어진 사례들은 아프리카 종교에서 나타나는 금기 개념과 유대교의 정결 개념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민간신앙의 깨끗함 관념, 그리고 제사지낼 때의 부정 등을 떠올리긴 했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깨끗함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불교에서 마음을 깨끗이 하라는 이야기를 한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을 터인데, 그것을 단순한 수사(修辭)로만 생각했던 탓일까? 다른 종교의 깨끗함 관념을 논의할 때 이상하게도 전혀 연결시켜 생각해보지 못했다. (살림, 2006)을 보면서 불교에서 깨끗함이 수사 이상임이 대번에 들어왔다. 불교 가르침의 핵심에 자리잡은 관념이라는 것이 너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의 한 대목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보살이 정토(淨土)를 얻고자 한다면 마땅.. 2023. 4. 25.
살법이 아닌 활법 글과 그림으로 된 텍스트에서 글만 옮기는 것은 잘못된 인용방식이다. 장비의 문제도 있고, 정성도 부족한 탓이다. 하여튼 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투기(鬪技)의 역사는 고대 인도의 요가에서 비롯되었다. 이 요가에서 체계화되기 시작한 권술은 불교를 타고 동방 여러나라로 전파, 중국에 들어가서는 소림권법이 되고 태국에서는 킥복싱이 되었으며, 일본에 가서는 유도나 가라테, 그리고 한국에서는 태껸이 된 것이다. 불교가 권술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은 여러가지 증거가 있다. 우선 절 입구 산문같은데서 흔히 볼 수 있는 인왕의 모습을 예로 들 수가 있다. 유난히 두드러진 복근과 부릅뜬 눈! 공격 태세로 치켜올리고 있는 왼쪽 정권과 방어 태세를 취하고 있는 오른쪽 수도! 천수관음의 그 수많은 손도 마찬가지. .. 2023. 4. 25.
스미스 선생의 뒤르케임 가르치기 종교학 수업에서 뒤르케임의 책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를 논의한 (Oxford University Press, 2005)이라는 책이 있다. 뒤르케임주의자라고 하기는 뭣하지만 뒤르케임의 팬인 나로서는 흥분되는 내용이 많은 재미있는 책이다. 사회학 교실에서 뒤르케임을 읽는 것과 종교학 교실에서 뒤르케임을 읽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종교학 전통에서 뒤르케임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어떤 맥락이 학생들에게 제공되어야 하며, 어떤 방식으로 그에 대한 몰이해를 씻고 책 안의 통찰을 살아있는 것이 되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대학 개론 수업에서 뒤르케임을 다루어본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글들이 실려있다. 이것은 단순히 교육의 테크닉에 관한 내용이 아니다. 요즘의 종교학 흐름이 뒤르케임의 재발견이라는 토대 위에 구축된 것이라는 점.. 2023. 4. 25.
연기라는 종교 주말에는 스케줄이 들쑥날쑥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주말저녁 드라마를 보는 일은 많지 않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온가족을 겨냥한 시간대인 토일8-9시 드라마를 일부러 챙겨보는 일은 별로 없다. 그 시간대에 라는 빌어먹을 드라마를 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같은 시간 MBC에서 라는 드라마를 하는지는 몰랐기 때문에 그 시간에 텔레비전을 켜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거기서 주연을 한다는 김성수라는 연기자가 만만치 않은 이야기를 한다. (나 를 보지 않아서 이 연기자를 모른다.) 이 사람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연기 생활을 종교라고 부른다. 그것이 단순한 수사(修辭)가 아님이 인터뷰 전반에서 느껴진다. 제 촬영이 아침 7시 시작이면, 저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6시에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하거든요. 메이.. 2023. 4. 25.
우리가 공유하는 경험 나는 웬디 도니거의 (implied spider)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왜 신화에 보편성이 존재하는지를 이야기하는 3장 도입부라고 생각한다. 책 제목인 ‘숨은 거미’가 그 보편성을 가리키는 은유인데, 본격적으로 은유를 풀어놓기에 앞서 이야기를 하듯 자기가 생각하는 보편성의 이유를 부드럽게 써놓았다. 어려운 개념이 들어간 것도 아니고 저명한 학자들을 인용하고 있는 것도 아닌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왠지 모를 힘을 느꼈다. 도니거가 공들여 쓴 문장들이라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근거는 없다.) 보편성이라는 주제는 요즘 학자로서 옹호하기가 힘들고 따라서 기피하는 주제인데, 도니거는 평이한 문체를 구사하면서도 여기서 이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보편성이라는 개념은 ‘같다’라는 표현을 통해 우리에게 다.. 2023. 4. 25.
새로운 중심과 역외춘추 지구 자전설을 이야기한 것으로 유명한 홍대용의 은 조선 시대 실학자들의 과학적 지식이 얼마나 현대 과학에 접근한 것인지를 증명하는 책으로 읽히기 쉽다. 그러나 내가 읽으면서 흥미를 느꼈던 것은 어떻게 보면 그와는 다른 방식이었다. 우리의 상식과 같은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서술하는 방식에 있어서 다른 것에 눈길이 갔다. 그것은 간혹 있는 홍대용 서술의 과학적 오류를 찾는다는 말이 아니라, 그의 과학적 이해가 어떻게 당시의 언어로 서술되는지, 당시의 세계관 이해의 맥락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떠한 방식으로 세계관을 새롭게 정립하는가를 읽어내는가에 흥미를 느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물리학적 사실들이 유교와 도교의 언어들로 서술되고 있으며, 또 그 언어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조직하는 .. 2023. 4. 25.
신학자들 비판 에라스무스, 문경자 옮김, (랜덤하우스중앙, 2006)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의 절정부는 당시 종교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쏟아지는 마지막 대여섯개의 섹션들이다. 사제, 수도사, 신학자, 그리고 주교들과 교황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거명하며 비판하는 부분은, 그 앞의 다른 풍자들과는 느낌이 다르다. 앞에서 학자나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풍자와 해학의 느낌이 많이 풍긴다면, 이 뒷부분에서는 작심을 한 듯 준엄하다. 풍자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비판하기 힘든 세력을 대한다는 비장함이 서려있어서일까, 좀더 묵직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들의 야심은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 아니라 그들끼리 서로 달라지는 것”(146)이라는 수도승에 대한 야유도 재미있지만,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신학자.. 2023. 4. 25.
오행의 근원과 삼교의 진리 종교란 개념은 근대 서구에서 만들어졌으며 비서구사회에 근대 사회가 형성되면서 이식된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면 만만치 않은 반론을 만난다. 즉, 비록 종교(宗敎)라는 언어 자체는 동아시아 문화권에 존재하지 않았으나, 지금 우리가 종교라고 부르는 현상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는 것. 유교, 불교, 도교가 독립된 전통으로 존재해 온 것이 좋은 증거라는 것. 종교라는 말이 생긴 것이 무어 대단한 변화냐는 것. 그러나 19세기 말 일본인들이 서구 열강들과의 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religion’의 번역어로서 ‘종교’라는 말을 고안함으로써, 동아시아에 종교라는 말이 도입된 것은 작은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이름 없이 존재하던 현상에 이름이 붙여진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 구조가 도입되고 근대라는 틀거리.. 2023. 4. 25.
"종교와 독서"에 관련된 책들 Robert Brown, "Reading (Writing) and Religion," Religious Studies Review 31-3,4 (July, October 2005): 171-177. 종교와 독서라는 흥미로운 주제에 대한 리뷰를 읽었다. 경전을 “어떻게” 읽느냐라는 문제는 그 종교 공동체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문제라고 생각해 왔지만, 정작 그런 식으로 연구된 성과는 별로 본 적이 없다. 예컨대 “그들은 성서를 어떻게 읽느냐?”라는 물음을 갖고 조사한다면 한국 개신교의 이른바 근본주의에 대해서 핵심적인 연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에서 리뷰된 책들은 대부분 미국 종교사에 관련되어 있지만 한국 종교 연구에도 중요한 시사를 줄만한 책들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특히 미국 기독교는 .. 2023. 4. 25.
종교와 춤이라는 주제 샘 길(Sam Gill)은 북미 원주민 종교를 전공으로 하는 종교학자인데, 몇 년 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종교에 대한 책을 냈고, 요즘은 종교와 춤이라는 주제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연구에 대해서는 지금 출판 준비중인 책 “To Risk Meaning Nothing: Essays on Play and Dancing”이 나오면 자세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최근의 그의 책 서문을 보면 무용학 전공한 딸내미 내외와 함께 춤 교실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종교학자로서는 보기 드물게 뛰어난 감각을 보여주며 관심 주제를 넓혀가는 학자이다. 그런데, 이런 자유로운 학풍의 소유자는 제자에게는 곤란한 상대일수도 있다. 북미 원주민 전공하는 친구에게 길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는데, 지도교수로 삼기에 .. 2023. 4.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