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종교학사에는 “Robert Ranulph Marett”이라는 인류학자가 있었다. 종교학사 책에서 ‘마레트’라는 이름으로 주로 번역되어온 이름인데, 영국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한 이 학자의 이름은 좀더 버터 발린 발음으로 표기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글브리태니커와 국어사전에 실린 대로 “매럿”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된다.
[자신이 없어 "국립국어원"을 검색해본 결과, 다음과 같은 외래어표기법 규정이 있음을 찾을 수 있었다. 어느 표기나 장단이 있겠지만, 규정대로 따르기로 하였다. Marett 「명」『인』 영국의 인류학자(1866~1943). 우리말 표기: 매럿(O), 마랏(X), 마레트(X), 마렛(X), 마렛트(X)]
사실 이 학자는 지나가면서 언급된 적은 있어도 자체로 다루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Marett”이라는 단어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다양한 표기들, 마레트를 비롯해서 마렛, 마렡, 매레트, 마려, 머릿 등은 그가 중요하게 인용되지 못한 그간의 사정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매럿이 중요성에 비해서 종교학사에서 지나치게 홀대받는 학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마침 다음 논문에서 내 생각을 어느 정도 확인받을 수 있었다.
Dale R. Bengtson, "R. R. Marret and the Study of Religion," <<Journal of the American Academy of Religion>> 47-4 (Dec., 1979): 645-59. [논문 파일: Bengtson-Marett_S_Religion.pdf]
논문의 저자는 매럿을 전환기의 학자로 자리매김하고, 그에 대한 그동안의 평가(오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이 시기[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시점]에는 종교학에 중요한 이론적 공헌들이 있었다. 이 전환기의 중요한 이론적 공헌자 중 한 사람이 로버트 매럿(Robert Ranulph Marett, 1866-1943)이었다.
그러나 종교학사에서 매럿은 별종으로 취급된다. 옥스퍼드대학교에서 타일러의 후계자이기 때문에, 그는 종교의 기원을 찾았던 학자들 중 하나로 분류된다. 그는 종교 기원에 대한 전(前)애니미즘 이론의 “아버지”로 인식된다. 프레이저와 레비브륄과 함께, 그는 사회를 두 구획[과학적인 이성을 갖춘 진보한 사회와 유치한 야만인 사회]으로 나누어 본 이론가라고 비난받아왔다.(646)
매럿은 흔히 그렇고 그런 종교기원론(지금은 폐기되어 가치가 없는)을 제시한 학자들 중 하나로 생각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히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매럿이 “전-애니미즘(pre-animism)”이나 “애니마티즘(animatism)”을 언급할 때, 그것은 “전-애니미즘적 종교”가 애니미즘에 연대기적으로 선행하는 사상 체계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의미하는 것은 구분된 것 이전에 구분되지 않은 것이, 분화된 것 이전에 미분화된 것이, 반성적인 것 이전에 전반성적인 것이 심리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선행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뿐이다.(654)
내 생각을 말하면, 그의 이론적 공헌은 마나를 통해서 종교학 이론에 힘(power)의 관념을 소개한 것이다. 힘의 관념은 그 전까지 원시 종교자료들을 바탕으로 생성된 종교이론들을 일반적인 종교로 추상화시켜서 적용 가능하도록 하는 연결고리를 제시한 중요한 변화이다. 논문 저자는 매럿이 종교학에 끼친 영향을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영국에서 매럿의 영향력은 미미했다. 하지만 독일과 다른 곳에서 그의 영향력은 더욱 실질적이었다. 프로이스(Preuss), 분트(Wundt), 오토(Otto), 판데르 레이우(Van der Leeuw)가 그 예이다.(647)
논문에서 이 영향관계는 간단히 다루어지지만, 앞으로 확대시켜서 논의할 부분이 많다. 특히 오토와 레이우의 저작에서 힘의 관념(Dynamism)의 역할을 심각하게 고찰할 필요가 있으며, 이 논의에 뒤르케임 저작에서 마나의 중요성이 병렬되어 고찰된다면 종교학 이론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보게 되리라 확신한다.
인용된 글 중에서, 매럿의 유명한 논문인 "Pre-Animistic Religion"(1900)외에도 사전 항목인 "Mana," <<Encyclopaedia of Religion and Ethics>>(1915)도 읽어야 할 필요도 느끼게 되었다.
마지막에 논문 저자는 매럿의 자서전 저작에서 마나 이론에 대한 재미있는 회고를 소개한다. 마나라는 현상으로부터 종교현상을 일반화 할 이론적 자원을 얻었던 매럿의 작업은 프랑스 사회학파에서 위베르와 모스의 “주술의 일반 이론에 관한 논문”(1902)과 거의 동시에 진행된 작업이었다. 매럿은 그것을 이렇게 회고한다.
“우리 둘은 의심할 바 없이 같은 새를 향해 돌을 던졌다. 그들[위베르와 모스]이 더 크게 맞추었지만 내가 던진 돌이 더 빨랐다.”(Robert R. Marett, <<A Jerseyman at Oxford>>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