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히 자극적인 이 사례들이 바이넘 저작의 주요 내용인 것은 아니다. 성찬과 단식과 관련된 성인들의 행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말하는 맥락에서, 다소 극단적인 신체에 대한 혐오가 “없지는 않았음”을 말하는 과정에서 살짝 보여준 사례들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와는 참으로 다른 중세인들의 감각에 의해 빚어진 기적과 종교행위들은 눈길을 끈다. 이 생경함은 예전에 호이징하의 <<중세의 가을>>을 읽으며 느낀 것에 가까운데, 그보다 더 강력하다. 바이념의 다음 책에서 조금 인용해본다.
Caroline Walker Bynum, <<Holy Feast and Holy Fast: The Religious Significance of Food to Medieval Women>> (Berkel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7).
의도적이고도 체계적으로 몸을 괴롭히는 것은 많은 [중세] 수도원 여성들의 매일의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예를 들어 시에나의 알다Alda of Siena의 16세기 전기에 나오는 설명에 따르면, 알다는 돌이 깔린 침대에서 자고, 쇠사슬로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가시로 된 관을 썼으며, 그리스도의 발을 뚫었던 것과 같은 나무못을 신앙의 대상으로 열망했다고 한다. 몬타우의 도로테아Dorothy of Montau는 십자가형을 당하는 팬터마임을 스스로 수행했다. 팔을 십자가 형태로 늘인 채로 기도하고 나서는, 그리스도의 매장을 모방해서 발가락, 코, 이마로만 온몸을 지탱한 채 엎드려뻗쳐 있었다. 마이유의 요안나 마리아Jane Mary of Maillé는 그리스도의 가시관을 기억하며 가시로 머리를 때렸다. 14, 15세기 여자 성인 전기들을 읽다보면 채찍, 가죽 끈, 도리깨, 쇠사슬 등에 대한 라틴어 단어들에 대한 지식이 엄청 는다. 이들 전기에서 공통적으로 이야기되는 금욕 수행으로는, 털로 된 윗도리 입기, 꼬인 동아줄로 살을 꽉 조이기, 스스로 낸 상처에 이(lice)를 넣어 문지르기, 잠자지 않기, 음식과 물에 재나 소금을 넣어 맛을 떨어드리기, 절을 수천 배 하기, 쐐기풀로 가슴을 찌르기, 겨울에 맨발로 기도하기 등이 있다. 더 기괴한 여성들의 행위로는, 깨진 유리 위에서 굴러다니기, 오븐 속으로 뛰어들기, 사형대에 목매달기, 그리고 물구나무서서 기도하기가 있다.(물구나무서서 기도할 때에는 기적적으로 수녀의 치마가 무릎에 붙어있어 정숙할 수 있었다.)(209-10)
여성의 몸이 오염의 근원이라는 지중해권의 오래된 관념이 남아있음도 지적한다. 중세에 이 관념이 중심적인 것은 아니라 해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남아있었다는 것.
마르세유의 두셀린Douceline of Marseilles과 에비에르의 루갈다Lutgard of Aywières와 같은 중세 후기의 몇몇 성녀들은 몸의 접촉을 강박증적인 공포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몬테칼코의 클라라Clare of Montefalco는 남자와 접촉하느니 지옥에서 지내겠노라고 이야기하였다. 루갈다는 평안의 키스를 해달라는 주교의 권유에 패닉에 빠진다. 그러나 환상에서 예수가 나타나서 손으로 가로막아 그녀가 주교의 입술에 닿지 않도록 해주었다. 심지어 그녀는 손으로 대서 병을 치유하는 능력을 갖지 않게 해달라고 빌기도 했다. 손을 댐으로써 (때로는 의도하지 않게) 많은 기적을 일으킨 마르세유의 두셀린도 남자와 몸을 닿는 것을 무척 꺼려했다. 그녀가 어릴 적에는 심한 아픔과 함께 환상 속에서 그리스도가 나타나 자기 가슴에 손을 대라고 명령함으로써 남자 몸에 대한 혐오를 극복하도록 해주었다.……스토멜른의 크리스티나Christina of Stommeln는 황홀경 중에 똥통에 빠졌는데, 깨어나서 크게 분노하였다. 그녀를 구하느라 남자 수사가 몸에 손을 대었기 때문이다.(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