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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메모

종교와 춤이라는 주제

by 방가房家 2023. 4. 25.

샘 길(Sam Gill)은 북미 원주민 종교를 전공으로 하는 종교학자인데, 몇 년 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종교에 대한 책을 냈고, 요즘은 종교와 춤이라는 주제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연구에 대해서는 지금 출판 준비중인 책 “To Risk Meaning Nothing: Essays on Play and Dancing”이 나오면 자세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최근의 그의 책 서문을 보면 무용학 전공한 딸내미 내외와 함께 춤 교실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종교학자로서는 보기 드물게 뛰어난 감각을 보여주며 관심 주제를 넓혀가는 학자이다. 그런데, 이런 자유로운 학풍의 소유자는 제자에게는 곤란한 상대일수도 있다. 북미 원주민 전공하는 친구에게 길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는데, 지도교수로 삼기에 문제가 많다는 대답을 들어서 의외였던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한 분야를 디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주제를 따라 지역을 훨훨 날아다니며 연구하는 선생 밑에서 특정 분야의 논문을 쓰려고 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게 이해가 된다. 어쩌면 그가 요즘 종교와 춤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것에는 좀 날날틱한 면에 있는 게 아닌가 의구심을 갖기도 했는데, 그가 종교학계를 조망한 어느 글을 읽어보니 그러한 의혹은 사라졌다. 그는 글에서 종교학계가 서구 기독교 중심의 전제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강도 높게 비판한 후에 춤에 대해 언급한다:

서구 전통, 특히 기독교를 제외한 세계 대부분의 문화에서 종교와 춤은 실질적으로 같은 뜻이다. 고대 남인도의 바라타 나티암(Bharata natyam)에서 호피족의 카치나(Kachina) 춤에 이르기까지, 유대인의 결혼식 춤에서 수피의 빙글빙글 도는 수도사에 이르기까지, 종교는 그저 춤을 통하여 표현될 뿐만 아니라 춤을 통해 행해진다. 많은 종교 전통에서 춤 없는 종교는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아마도 기독교 전통(그리고 어느 정도는 다른 서구 종교에서의) 내에서의 춤의 결핍으로 인해, 그리고 종교학에 대한 기독교 연구의 영향력 때문에, 춤과 다른 형태의 육체적 움직임과 의례에 대해서 종교학자들은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부분의 종교적인 사람들이 자신의 종교적임을 확인하는 그 종교적 형태에 대해 종교학이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Sam Gill, "The Academic Study of Religion," <<Journal of American Academy of Religion>> 62-4 (1994), 973-974.)
그가 지적한 종교학의 서구 중심적 태도는 서구적 종교 개념의 적용과 교리 중심적인 접근, 그로 인한 몸에 대한 관심의 결여이다. 최근 들어서야 의례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고 있지만, 의례는 교리의 육체적 표현이라는 식의 교리중심적인 이해에서 벗어난 연구는 많지 않다고 지적한다. 10년 전의 글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정확한 지적이라고 생각된다. 최근에 종교 연구에서 몸에 대한 관심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는데, 그런 점에서 보면 길은 흐름을 읽고 어느 정도는 흐름을 선도하는 학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종교와 춤이라는 주제를 연구하는 것은 그저 감각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그것은 기독교 중심적인 종교학에서 벗어나 비서구세계 종교 연구를 위한 대안적인 길을 탐색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북미 원주민, 오스트레일리아 종교, 그리고 요즈음에는 라틴 아메리카와 인도네시아까지 연구 범위를 넓혀가며, 언어가 아니라 몸을 통해 전승되는 종교경험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종교’라는 틀에 철저히 묶여있는 종교학을 비판하며, 비서구 비문자 문화권 소수민족 연구를 통해 “종교적인” 게 어떤 것인지를 찾는 것이 길의 작업이다.
굳이 우리나라 예를 들면 이렇다. 무교를 연구할 때 무당들의 서사무가를 채록하고 분석하여 그들의 신관과 같은 교리를 정리하는 작업 뿐만 아니라, 굿판에서 그들이 몸을 통해 어떤 종교 경험을 표현하고 있는지를 읽어내는 운동학(kinesiology)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 그들에게는 말의 내용보다는 몸의 움직임이 그들의 종교를 드러내는 주된 매체이므로.
(북미 호피족의 카치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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