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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메모116

‘천天’의 다의성과 천인 관계의 다양성 [현대 학자들은] ‘천’에 대해 인격신, 자연의 이법 외적인 ‘천’이라는 분류를 시도하고 있다.……후세에 서양 사상과의 교류 속에서 ‘천’이 기독교의 ‘God’의 번역어나 신이 소재하는 ‘Heaven’의 번역어로 사용되게 된 것도 이러한 다의성을 생각하면 잘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상의 다의성은 ‘천’이라는 말에 의해 지시된 대상 쪽에서 어떤 것이 보이고 있느냐 하는 그 차이와 관계가 있다. 이에 대해 (1) ‘천’이 어떻게 인간과 관계를 맺고 있는가, 즉 ‘천’과 인간이 ‘천명’이라는 형태로 직접적으로 교류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자연의 질서나 변화, 혹은 인위적인 제도를 매개로 하여 간접적으로 관계하고 있는가, 또 (2) ‘천명’이라고 할 경우 그것은 주로 인간 생활의 어떤 분야와 관계하고 .. 2023. 4. 30.
문화를 통한 종교 읽기 내 설명이 허술한 탓이겠지만, 문화로서 종교를 다루는 것이 만만치 않음을 새삼 느낀다. 요즘 하고 있는 ‘종교와 영화’ 강의 첫머리에서 나는 종교는 인간의 상상력이 발휘되는 전통적인 영역이고 영화는 상상력이 발휘되는 현대의 영역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늘 하던 이야기였고 상당히 소박한 차원의, 별 어려울 것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내용인데, 의외로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종교를 인간의 상상력과 연결한다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내가 속한 집단 내에선 당연한 말이 사회적으로는 그렇지 않음을 일깨워주는 것이 강의(특히 교양)이다. 문화(즉 인간이 만든 것)로서 종교를 다루는 학문적 전통을 일구는 일이 종교학 내외로 얼마나 지난한 일이었는지를 생각해보게.. 2023. 4. 30.
프로이트 말년의 주제 피터 게이의 프로이트 평전은 삶과 저술이 촘촘히 얽힌 거장의 세계로 독자를 불러들인다. 이 황홀한 초대의 내용을 쉽게 요약되지 않는다. 다만 종교에 관련된 내용 하나만을 메모해둔다. 이 책에는 프로이트 말년의 문제작 의 저술 과정과 맥락이 흥미롭게 묘사되어 있다. 전에 그 책을 읽었을 때는 괴이한 책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제 그 책이 프로이트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저자는 그 책이 “프로이트의 작업 전체를 보자면 약간 괴짜”이며 “역사소설”에 가까운 점이 많다고 냉정하게 평가한다.(527) 그럼에도 모세라는 주제(“유대인은 모세라는 인간의 창조물이다”)는 프로이트가 말년에 강박적으로 집중한 주제이며, 그런 주제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많은 것들, 또 옹호 불가능한 많.. 2023. 4. 30.
흐름으로 정의된 종교 “종교들은 유기체의 흐름과 문화의 흐름의 만남confluence으로, 인간적인 힘과 초인간적인 힘을 이용하여 거처를 만들고make homes 경계를 가로지름cross boundaries으로써 즐거움을 북돋고 고통을 감내할 수 있게 해준다.” Thomas A. Tweed,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2006), 54. 종교학에서 최근에 시도된 종교 정의 중 하나이다. 종교를 정의한다는 것 자체가 이론적으로 해명해야 할 큰 쟁점이 되는 시대이다 보니 이런 작업이 쉽지 않다. 연구자의 태도에 따라 종교에 대한 시각은 달라지기 마련이고, 그 시각을 반영하는 새로운 정의가 연구에 따라 달리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기본적인 입장. 위의 정의는 현대사회에서 크게 부각되.. 2023. 4. 30.
물질적 측면을 논하는 것 [브루스 링컨의 종교학 방법론 테제 제3항] 종교학history of religions은 자신이 연구하는 담론의 방향성에 저항하고 그것을 뒤집는 담론이다. 학과 명칭이 뜻하는 바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종교학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특성을 영원하고 초월적이고 영적이고 신적인 것이라고 표상하는 담론, 실천, 공동체, 제도들에 대하여 그것들의 시간적, 상황적, 위치적, 이해관계의, 인간적, 물질적 측면을 논하자고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Bruce Lincol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2), 1. 원래는 1995년에 발표된 내용) 종교가 지향하는 바와 종교학이 지향하는 바는 다르다. 다르다는 것은 온건한 표현이고 사실은 반대될 때가 많다. 종교인들이 강조하고 높이 여기는.. 2023. 4. 30.
역설을 품고 있는 근본주의 잘 정리된 배덕만 선생의 책을 읽다가 인상적인 인용문을 발견하였다. 마스덴이 근본주의의 속성에 대해 설명한 대목이다. 근본주의는 역설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난폭한 논쟁주의와, 영향력과 효과적인 전도를 위해 꼭 필요한 수용적 태도 사이에서 찢겨 있다. 흔히 그것은 내세적이고 사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강력한 애국주의와 국가의 도덕적 정치적 복지에 대한 관심을 보유하고 있다. 근본주의는 개인주의적이지만, 강력한 공동체들을 만들어낸다. 근본주의는 어떤 의미에서는 반지성적이지만, 올바른 사고와 참된 교육을 강조한다. 근본주의는 주관성에 대한 부흥사들의 호소를 강조하지만, 인식론적 차원에서는 합리적이고 귀납적인 경우가 많다. 근본주의는 한 고대의 문헌에서 비롯한 기독교이지만, 또한 기술문명의 시대에 형성된.. 2023. 4. 30.
미국의 비종교인 Phil Zuckerman, (Oxford University Press, 2012). 저자가 인터뷰한 87명 중에서 골라 소개한 사례들이 알맹이라고 생각되는데, 나는 시간상 껍데기에 해당하는 서론과 결론만 참고하였다. 다음은 책에서 얻은 몇 가지 내용들. 1. ‘종교 이탈’(apostasy)의 유형론 간단해 보이지만 의미가 있는 분류 (1) 초기 종교이탈/후기 종교이탈(early/late): 초기 이탈은 종교적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들이 사춘기 이후 지적 성숙이 이루어짐에 따라 어릴 적 종교를 떠나는 경우이다. 비종교인의 다수를 차지한다. 후기 이탈은 성인이 되어 자신이 선택한 종교를 떠나는 경우이다. 수적으로는 적다. (2) 표면적 종교이탈/심층적 종교이탈(shallow/deep): 가벼운 이탈은 몸.. 2023. 4. 30.
신선 존재에 대한 논증 도교의 대표적인 텍스트인 갈홍의 에서 전형적인 호교론의 논리를 만났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믿음을 확립하려고 하는 종교의 논리는 참으로 닮았다. 갈홍의 논리는 멀리는 신 존재에 대한 많은 논변들, 가까이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산타클로스는 존재한단다.”라는 논변에 이르는 여러 호교론들과 표현 하나하나까지 놀랄 정도로 닮아 있다. 내가 이 텍스트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다음 책 덕분이며 인용도 이 책에서 한 것이다. 이용주, (이학사, 2003). 여기서 갈홍은 신선神仙의 존재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을 논박하고자 한다. 직접 눈앞에서 증명할 수는 없지만 존재하는 중요한 그 무엇이 있다는 논리이다. 참된 진리를 이해하는 사람들만이 갖가지 방법을 심험하고 검토하여 참으로 신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 2023. 4. 30.
역경의 절차 불교가 중국으로 전래될 때 산스크리트에서 한문이라는 두 문명의 근간이 되는 언어 사이에서 번역된 과정은 세계 문화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 작업이었다. 이 부분에 대한 책이 하나 있어 즐겁게 읽고 궁금했던 부분을 메모해 둔다. 하나는 번역 원칙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번역이 이루어졌던 역장(譯場)에서 얼마나 체계적으로 번역이 이루어졌나를 설명한 부분이다. 나는 요즘도 틈틈이 혼자서 앓아가며 번역을 하고 있는데, 현대에 행해지는 이 주먹구구식의 번역에 비해 고대에 행해졌던 이 번역 절차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현장[현장법사]은 후대에 ‘오종불번’(五種不飜)이라고 부르는 번역방식을 사용하였다. 산스크리트어 그대로 음역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5가지 유형의 어휘를 말한다. (1)다라니와 같은 비밀스러운 어휘는.. 2023. 4. 30.
유교라는 문화의 덩어리 한 전통이나 한 민족이나 한 국가를 어떤 판에 박힌 관념(stereo type)으로 통으로 묶어 매도하는 버릇,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종교 전통을 공부하면서 배우는 가장 큰 수확의 하나이다. 유교를 둘러싼 논쟁들은 따지고 보면 대부분 우리의 고정관념의 산물이다. 이 책은 그러한 우리의 관념들에 대해 설득력 있는 자료를 통해 반론을 펼친다. 우리가 유교라고 통칭하는 문화의 덩어리 속에는, 비록 철학, 역사, 문학, 정치, 경제 등의 영역으로 세분화되지는 않았지만, 지구 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사람들이 2천 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 동안 일구어온 삶의 흔적이 녹아들어 있다. 그 안에는 권위주의적인 교리의 일면도 있지만 부당한 권위에 대항하는 비판적 지성의 목소리도 담겨 있으며, 인간을 도덕적 질서 안으로.. 2023. 4. 30.
토테미즘을 최초로 언급한 기록 토테미즘이라는 용어는 맥레넌의 1869년도 논문을 통해서 학술용어가 되었는데, 맥레넌이 이 용어를 이끌어낸 자료는 존 롱(John Long)이라는 상인의 1791년도 기록이다. 존 롱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그저 1791년에 출판된 그의 책 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전부이다. 그는 모피 상인으로 북미지역을 왕래하였고 특히 오지브와족 언어를 배우고 원주민들과 긴밀한 관계를 가졌다.(캐나다 인명사전 참조) 토테미즘이 언급된 부분의 서지사항은 길지만 다음과 같다. John Long, (London: Printed for the author, and sold by Robson, 1791), 86-88. 토템이라는 언어는 존 롱이 오지브와족(롱의 책에서 사용된 이름은 치퍼웨이Chipperw.. 2023. 4. 30.
불교 전래와 토착문화 매우 산뜻한 불교 개론서 에서 불교의 전래 과정에 대한 내용.(이 책의 주요 주제에 대해서는 다른 메모를 남길 생각이다.)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종교가 전해질 때 토착전통을 자신의 체계 내로 복속하는 일은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많은 이들이 불교가 토착 종교에 대해 관용적이었다고들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좀더 완벽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노력으로 점철되었다. 즉 불교가 전래된 이래, 그 이전까지 가장 높게 받들어지던 토착신들은 불교의 신으로 개종되었고, 다른 나머지 신들은 적절한 불교 의례들을 통해서 복종시키거나 파멸되어야 할 악귀 정도로 그 서열이 강등되었다. 물론 불교경전에서는 이러한 과정들을 그 토착신들이 자발적으로 불교에 귀의한 것으로 묘사한다.[베르나르 포르, 김수정 옮김, (그린비, 201.. 2023. 4. 30.
애니미즘 사전 항목 내용(치데스터) 한 백과사전의 “애니미즘” 항목. 종교학자 데이비드 치데스터가 쓴 내용이다. 몇 부분을 메모하였다. David Chidester, "Animism," In Bron Taylor (ed.), (London: Continuum, 2005). 1. “애니미즘이라는 용어는 종교의 한 유형이 아니라 종교에 대한 한 이론을 일컫는다.”(78) 첫 문장이 이 용어에 대한 오해의 핵심을 지적한다. 애니미즘은 현실에 존재하는 종교 전통이 아니다. 그것은 학자들의 이론적 구성물이다. 하지만 이 개념은 대중적으로 사용될 때 엄밀한 존재감을 지닌 것으로 인식된다. 선교계에서 흔히 사용되는 용법이 그 예이다. [타일러의] 용어는 유럽인들의 세계종교 목록에서 현대의 토착 종교인들을 애니미스트라고 동일시하는 일이 흔히 있을 정도로.. 2023. 4. 28.
제임스의 논의: 귀신에서 하느님으로 윌리엄 제임스의 The Varieties of Religious Experience의 3장은 “보이지 않는 존재의 실재성”The Reality of the Unseen이다. 그는 여기서 귀신 이야기와 하느님에 대한 감각을 연속선상에 놓고 논의를 진행한다.(이것은 오토의 논의보다 앞선 것이다.) 그는 별다른 껄끄러운 논의 없이 천연덕스럽게 사례들을 이어간다.(62-75) 사례와 사례들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귀신 이야기는 하느님 이야기가 되어 있다. 이야기들은 다음과 같다.(인용한 내용은 (대한기독교서회, 1997)을 약간 수정한 것이다.) 사례1) 한 친구가 밤에 느낀 무시무시한 느낌. “갑자기 나는 그 무엇인가가 나의 침실 안으로 들어와서 침대 곁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은 불과 1-.. 2023. 4. 28.
귀신과 하느님은 한뿌리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대중적인 반감이 집중되었던 부분은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는 것이었다.(이 대중적 감수성은 기독교적 감수성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인간과 원숭이라는, 전혀 다른 범주에 속한 존재들이 발전의 연속선상에 놓인 것에 대한 생래적인 반감이었다. 19세기말~20세기초, 종교학의 초기 이론을 형성한 종교진화론에 대한 기독교의 반감에서도 비슷한 점을 찾을 수 있다. 전통적으로 ‘미신’이나 ‘이교도’라고 불렀던 녀석들이 버젓이 종교라는 범주 안에 들어와서 기독교와 연속선상에서 다루어지는 것이 불쾌했던 것이다. 현재 관점에서 진화론은 고등 종교와 하등 종교의 차이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기각된다. 그러나 당대에는 반대 이유에서 비난을 받았다. 진화론적인 이론에서는 미신들을 기독교와 감히 “연속선상”에.. 2023. 4.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