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정리된 배덕만 선생의 책을 읽다가 인상적인 인용문을 발견하였다. 마스덴이 근본주의의 속성에 대해 설명한 대목이다.
근본주의는 역설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난폭한 논쟁주의와, 영향력과 효과적인 전도를 위해 꼭 필요한 수용적 태도 사이에서 찢겨 있다. 흔히 그것은 내세적이고 사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강력한 애국주의와 국가의 도덕적 정치적 복지에 대한 관심을 보유하고 있다. 근본주의는 개인주의적이지만, 강력한 공동체들을 만들어낸다. 근본주의는 어떤 의미에서는 반지성적이지만, 올바른 사고와 참된 교육을 강조한다. 근본주의는 주관성에 대한 부흥사들의 호소를 강조하지만, 인식론적 차원에서는 합리적이고 귀납적인 경우가 많다. 근본주의는 한 고대의 문헌에서 비롯한 기독교이지만, 또한 기술문명의 시대에 형성된 기독교이다. 근본주의는 반反근대주의적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대단히 근대적이다. 아마도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근본주의가 제공하는 답이 명백히 반대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는 전통과 믿음들이 너무 복잡하게 혼합되어 있어서, 근본주의 옹호자뿐만 아니라 반대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모호성과 역설이 가득 차 있다.
(George M. Marsden, <Understanding Fundamentalism and Evangelicalism> (Wm. B. Eerdmans, 1991), 120-21; 배덕만, <<한국 개신교 근본주의>>(대장간, 2010), 27-8에서 수정하여 재인용)
근본주의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엄연히 근대의 조건에 반응하여 나타난 종교현상이다. 그들이 내세우는 단순한 논리는 모순된 것들을 한꺼번에 함축하고 있기에 오히려 이해하기 어렵다. 내가 신자들에게 많이 들어본 말 중 하나가, “신앙만큼 단순한 것이 없어요. 성경에 써있는 그대로 믿으면 되니까요.”였다. 나에겐 아직도 이런 진술이 의미하는 바가 복잡하게 다가온다.
전에 근본주의라는 서양 수입품의 성격을 파악하리라는 희망을 갖고 마스덴의 책을 집어든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내 희망과는 달리 마스덴이 이야기해준 근본주의는 대단히 복합적인 산물이었다. 게다가 그것은 안다 한들 한국의 근본주의를 이해하는 데 직접 적용되기 힘든 것이었다. 그 자체가 복잡한 화합물인 이 현상이, 구성 원소의 비율이 조금만 바뀌어도 전혀 다른 외양을 나타내는 이 현상이, 한국이라는 낯선 토양과 다른 시대를 만나 또 얼마나 복잡한 변신을 거쳤는지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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