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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메모

넌 이미 죽은 목숨

by 방가房家 2023. 4. 26.

인류학자 에반스프리차드의 책에 등장하는 ‘살아있으되 죽은 사람’ 이야기. 사회생활에서 나타나는 의례의 강력한 효력에 대한 인상적인 예이다. 사회적 자아의 죽음은 한 개인의 죽음이나 진배없다는 이 이야기는 그리 과장된 것으로 들리지 않아 슬픈 여운을 남긴다.

마을에는 덥수룩한 외모의 우울한 표정의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가트부옥(Gatbuogh)였다. 이 사람은 몇 년 전에 멀리 여행을 나갔다가 오랫동안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마을에 그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마침내 그를 위한 장례식이 치러졌다. 그 후 그가 마을에 돌아왔고 내[에반스프리차드]가 방문할 때에도 마을에 살고 있었다. 그는 ‘조악 인 테그’(joagh in tegh), 즉 살아있는 유령이라고 묘사되었다. 나는 “그의 영혼은 끊어졌다. 그의 영혼은 (희생제의를 치룬) 소의 영혼과 함께 가버렸다. 그의 육신만이 남아 서 있는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본질적인 부분인 영혼은 그의 사회적 인격과 더불어 사라진 것이다. 사람들이 그에게 밥을 주기는 하지만, 그는 망자에 속한 권리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에 속한 친족으로서의 권리는 상실한 것으로 보였다. 그는 장례의식으로 친족 관계가 말소되었기 때문에 희생제의의 고기를 먹는 데 참여할 수 없다고 한다.
E. E. Evans-Pritchard, <<Nuer Religio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56), 152-53.


의례의 강력한 효력에 관한 이야기는 플르타르크에 의해 이야기된 고대 그리스 사회의 예에서도 볼 수 있다.

다른 사회들과 마찬가지로 초기 그리스에서는 분리 의례의 효과가 너무 강해서, 의례대상자에 대해서 의례가 그가 없을 때 실수로 거행된 경우에라도 그 의례대상자는 이제 ‘죽은’ 목숨이 되었다. 플루타르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한다. “누군가에게 마치 그가 죽은 것처럼 [의례가] 행해지고 매장이 수행되었다면, 그리스 사람들은 그를 부정하다고 여겨서 그와 교제하지 않으려 할 것이고 사원에 들어오지 못하게 할 것이다.” 오직 델피가 세심하게 재탄생을 흉내낸 모습으로 재통합 의례를 해서 교정한 후에야, 그 불운한 사람은 사회로 다시 들어올 수 있었다.
Robert Parker, <<Miasma: Pollution and Purification in early Greek Religio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1[1983]),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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