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음식으로 맞선 문화가 있다. 유교는 초월의 세계, 영혼들만의 세계를 꿈꾸지 않는다. 그리하여 현세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세적이라는 말이 합리적이란 말로 대체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종교적이란 말과 대립각을 이룰 필요도 없다. 오히려 유교의 현세성을 지극히 일상적인 삶의 형식을 의례화하여 비일상적인 것을 극복하는 문화 양식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일상성의 의례화가 가장 두드러진 것으로 유교 상례에 나타난 음식의 공궤(供饋)를 들 수 있다. 어느 사회와 마찬가지로 유교 사회에서도 죽음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이별로 현실화되기 때문에 애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 슬픔의 시간 속에서도 유교 상례는 망자에 대한 음식의 제공을 중단하지 않고, 이를 통해 산자와 죽은 자 사이에 놓인 이별의 골을 메우려 하였다.(“조선시대 망자를 위한 음식”, 208-209.)
조선시대 국가 장례에 사용된 음식을 분석한 논문에 등장한 문장이다. 이 논문을 통해 먹음이라는 일상적 행위를 의례화하려는 노력이 유교 전통에서 얼마나 부단히 이루어져 왔는가를 실감하게 된다. 장례에서 신주로 모셔지기 전의 망자에게 드리는 식사의 의미가 일상적인 것에 더 가까운 것이었음도 알게 되었다.
이 논문은 다음의 <예기> 문장을 인용하면서 시작된다. “먹고 마시는 것과 남녀의 사랑은 사람들이 가장 하고픈 것이고, 죽음과 빈곤은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다” 음식남녀(飮食男女)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문장이다. 가장 하고픈 것과 가장 싫어하는 것이 긴밀하게 결합된 장례라는 의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참석한 한 장례식에서 발인이 9시였는데, 유족들 중 일부가 8시 30분에 아침을 먹고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해서 출발이 지연된 적이 있었다. 한쪽에서는 이 판국에 무슨 밥이냐고 소리를 지르고 한쪽에서는 태연히 밥을 먹었다. 그땐 왜 그렇게 밥을 챙길까 의아해 했는데, 산 자나 죽은 자나 밥먹는 것이 장례의 필수적인 일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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