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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메모

채무자의 수호성인, 실업자의 수호성인

by 방가房家 2023. 5. 30.

라틴 아메리카 현실에 관한 풍자가 가득한 책을 읽다가 경제 현실이 빚어낸 종교현상의 사례를 보게 되어 메모해둔다. 읽은 책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르네상스, 1998)이다. 

브라질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성인은 빚진 자들의 수호성인인 산타 에두비제스(Santa Eduviges)다. 순례 때에는 수천 명의 빚진 자들이 절망에 허덕거리며 그녀의 제단을 찾아와 빚쟁이들이 텔레비전이나 자동차, 집을 가져가지 않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때로는 에두비제스 성인이 기적을 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채권국이 이미 정부를 가져가버린 나라[IMF 선고를 받은 나라를 말함]들을 그녀가 무슨 방법으로 도울 수 있겠는가?(169-70)

에두비제스 성인은 우리나라에서 성녀 헤드비제스/헤드비히(영어로는 St. Hedwig)라고 불린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분이 빚진 자의 수호성인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상당한 인기를 누리지 않을까? 축일은 10월 16일이고 생전의 활동(1174-1243)에서는 자선사업을 열심히 했던 점이 눈에 띈다. 천주교 사이트에 회람되는 자료 중에서 채무자의 성인이 될 만한 요소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우리가 어떠한 재물을 소유하도록 축복을 받는다 해도
그것은 우리 자신의 필요나 개인적인 안락만을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실업자들의 수호성인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성 카예타누스(Cajetanus)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성인이다. 사람들은 실업자들의 수호성인인 그에게 일자리를 얻게 해달라며 물밀듯이 밀려간다. 성인이든 성녀든 그처럼 고객이 많은 성자도 없다.(183)
이분은 우리나라에서는 성 가예타노라고 일컬어진다.(St. Cajetan, 1480-1547) 천주교 자료에서 관련될만한 행적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나폴리에 몬테 디 피에티(자선 기금)를 설립했다.
이는 많은 자선 단체 가운데 하나로서
저당물을 담보로 돈을 빌려 주는 비영리적 신용 기관 중의 하나이다.
이 기관의 목적은 가난한 사람을 돕고 고리 대금업자들에게서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가예타노의 이 작은 기관은 마침내 정치적인 큰 변화와 더불어 나폴리 은행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IMF 때 사람들이 종교에서 안식을 찾았듯이(IMF를 극복한 무교 참조), 남미 사람들이 겪은 비슷한 경제적 어려움을 달래주는 성인들의 활동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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