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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메모

징조, 신호, 예감

by 방가房家 2023. 5. 22.

어느 선생님께서는 내가 전에 큰 사고를 당했을 때의 정황을 가끔 물어보신다. 그런 큰 일이 생긴다는 것은 나를 둘러싼 삶의 보호막이 붕괴되었다는 것인데, 자신의 삶의 균형이 무너졌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느냐고 물어보신다. 그런 나의 무감각은 큰 문제가 있는 거라고 하시면서. 처음에는 무슨 점쟁이같은 말씀이냐고 웃어넘겼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 삶의 큰 사건이 닥칠 때 내게 신호를 보내오는 체계가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쉽게 넘길 이야기가 아니라는 감이 온다. 뚜렷한 근거를 찾은 것은 아니나 삶에는 내게 무언가를 이야기해주는 징조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된다. 무감각은 나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지만, 이제는 감각을 계발해야겠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발터 벤야민은 <<일방통행로>>의 “두 번째 안뜰 왼편, 마담 아리안느”라는 표제의 글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마 벤야민은 점쟁이 마담 아리안느를 관찰한 후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 같다. 그는 ‘다가올 것에 대해 자신의 내면이 들려주는 소리’가 있음을 강조한다. 그런데 그 소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점쟁이에게 그것을 읽어달라고 간청하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꾸짖는다. ‘정신의 깨어있는 상태presence of mind’를 통해 ‘순간에 일어나는 일을 정확하게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일갈한다.

징표, 예감, 그리고 신호는 낮이고 밤이고 물결처럼 우리의 신체기관을 통과하고 있다. 그것들을 해석할 것이냐 아니면 이용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다.……우리가 그것을 놓치고 말았을 때, 그때야 비로소 그것들은 해석 가능한 것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읽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때는 너무 늦어버렸다. 그래서 갑자기 불이 난다거나 아니면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듯 누군가의 부고가 날아들 때면 우리는 말문이 막힌 그 첫 경악의 순간에 죄의식을, 형체를 알 수 없는 비난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사실은 네가 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게 아니더냐? 네가 지난번 그 사자(死者)에 대해 말했을 때 너의 입 안에서 그의 이름이 이미 다르게 울리지 않았더냐? 네가 보고 있는 불꽃 속에는 네가 이제야 비로소 그 언어를 이해하는 엊저녁의 신호가 눈짓을 보내고 있지 않더냐?
……
자외선처럼 생의 책에 기록되어 있는 기억은 우리 모두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러나 예언처럼 텍스트에 주석을 다는 문자를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의도를 착각해 벌을 받고 있는게 아닐까.
[발터 벤야민, 김영옥 외 옮김, <<일방통행로/사유이미지>>(길, 2007), 154.]
삶의 텍스트를 읽지 않고 흘러버리면 벌을 받게 되는 거라고 이야기하는 이 신비한 사상가의 이야기. 그러나 나는 무언지 모를 매력을 느껴 이 이야기를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한다. 내 삶의 경험이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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