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참사 이후 정부가 주도한 추모에서 논란이 되는 것은 이름 없는 대상을 추모할 수 있느냐이다. 직감적으로도 구체적인지 않은 숫자만 앞에 놓인, 그것도 사망자라는 용어 앞에서 우리의 슬픔은 제대로 표현되기는 힘들 것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는 그 대답은 명확하다. 위패 없는 제사는 불가능하고, 이름 없는 존재가 제대로 된 의례적 대상이 될 수 없다.
한 진오귀굿 이야기에서 이름 없음의 의미(혹은 무의미)가 무엇인지 드러난다. 아래는 김동규 선생의 발표에서 소개받은 사례를 약간 수정하여 소개하는 것이다. 사례 속의 인간관계는 복잡하다. 내가 주목한 것은 마지막에 예기치 않게 나타난 여인의 존재이다. 그의 이름을 알 수 없기에, 그는 메인 무대인 ‘본과장’에서 달래질 수 없었고, ‘뒷전’에서 임시적으로 처리될 수밖에 없었다.
40대 여성이 남편처럼 보이는 남성과 함께 사업상의 어려움 때문에 무당을 방문했다. 무당의 점괘에 따르면 최근에 죽은 한 남자 귀신이 여전히 떠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의 원인이었다. 같이 온 남성은 처음에는 남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남자친구였으며, 문제의 남자 귀신은 최근에 죽은 그녀의 남편이었다. 부부관계가 원만하지 못해 1년 정도 별거했지만, 이를 견디지 못했던 남편이 부모님의 산소 앞 나무에 목을 매고 죽었다고 한다. 결국, 그 남자 귀신을 위한 진오기굿을 하게 되었다. 진오기굿은 평소와 다름이 없이 진행되었다. 남자 귀신은 다니의 입을 빌어 남겨진 딸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을 표했고, 같이 굿당에 온 전 아내의 남자친구에게 부인과 딸을 부탁하는 넋두리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굿을 하는 도중 갑자기 무당이 바깥을 보면서 밖에서 방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계속 서성이는 여자 귀신이 보이는데 누군지 아느냐고 여성 고객에게 물었다. 여성 고객은 그 여자 귀신이 누군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여자 귀신이 무당의 입을 빌어 한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남편이 별거 중에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었는데, 남편이 죽자 그 여자 역시 임신 중에 따라 죽었다는 이야기였다. 굿청에 있는 누구도 확인해줄 수 없는 여자 귀신은 이름이 없었다. 이름이 없기에 방안에 차려진 굿상에서 대접받을 수 없었고, 나중에 마당전(뒷전)에서 받아 가시라 축원하는 것으로 그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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