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성공회 2대 주교였던 터너, 약력은 다음과 같다. 주교 재임 기간이 길지 않아 자료가 많지 않은데, 그에 관련된 사진들을 최대한 모아 보았다.
아서 버레스포드 터너(Arthur Beresford Tuner, 단아덕端雅德)는 1862년 영국 솔즈베리에서 태어나 1885년 옥스퍼드 키블(Keble)대학, 커데스돈(Cuddesdon) 신학교를 졸업하고 1888년 25세에 사제서품을 받았다. 1896년 33세에 한국에 입국해 서울과 인천을 오가며 서울 낙동성당과 인천 내동성당에서 사목 활동을 했다. 터너는 코프 주교의 신임을 받아 그를 보좌하는 역할을 했다. 1904년 코프 주교가 사임한 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주교 서품을 받고 1905년부터 1910년 서거할 때까지 제2대 주교로 활동하였다.
가장 잘 나온 사진
그가 인천에서 활동한 내동성당 사진
서울 낙동성당 사진. 터너의 활동 상을 보여주는 유일한 사진.
터너 주교의 싸인. 그가 소장했던 책에서.
이 책상은 초기 코프 주교부터 역대 성공회 주교들이 사용했다고 한다. 터너도 이 책상을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별세 후 모닝캄에 실린 사진
장례식1. 인천 내동성당에 하루 안치되어 있을 때
장례식2. 서울 양화진 묘역에 묻힌 후
성공회 주요 성직자들과. 1910년 경 찍은 사진
사진 속 남성의 이름은 서요한으로, 터너 주교의 수양아들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고아원의 첫 결혼식 사진인 것으로 보아 서요한은 터너 주교가 고아원 아이를 양아들로 삼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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