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 성당에서 악마나 구원받지 못한 존재들은 건물 바깥쪽이나 가장자리에 조각되었다. 성화된 세계 언저리에 묘사된 그들을 살펴보는 것은 악에 대한 종교적 상상력을 시각적으로 경험하는 흥미로운 작업이다. 지난주에 들은 전한호 선생의 발표 “문밖에 서 있는 악마들”에서는 건축물에서 악마의 자리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체계적인 질서를 갖춘 이미지의 세계에서 악마상의 위치는 일정하다. 중심이 아닌 주변, 위가 아닌 아래, 문의 안이 아닌 문의 밖이 악마가 위치하는 곳이다.”
발표문에서 중심적으로 다룬 것은 프랑스 남부에 있는 무아삭Moissac 수도원이었다. 이하에서는 전한호 선생의 발표에서 배운 많은 도상들을 중 일부를 찾아 정리해보았다.
악한 존재의 도상이 위치한 곳은 수도원 경내에 들어서는 입구에 집중된다. 도면에서 서쪽에 위치한 입구(남쪽에서 들어오는)이다. 건축 요소로는 포탈portal이라고 불리는 영역의 장식에서, 악의 무리들은 제압당하는 구석탱이의 존재들로 나타난다.
서쪽 벽에는 탐욕스런 존재들을 표현하는 도상들이 있다. 아래 사진은 악마의 괴롭힘을 받는 부자의 모습이고, 그 아래 사진은 육욕을 상징하는 뱀이 자라나는 나체의 여인이다. 뱀과 여인의 결합은 고대 종교에서 대지의 여신 가이아를 표현하던 것이었는데 기독교 내에 이교적 잔존물로 남으면서 악마화된 것이라고 한다.
아래는 발표의 결론에 등장하는 인상적인 문장이다. 악은 개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덩어리로 존재한다는 것. 이것은 우리가 타자를 인식하는 방식과도 통한다. 맥락은 다르지만 며칠 전에 본 영화의 대사가 머리에 남는다. “내 이름은 칸입니다.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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