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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발제110

크리팔, 영지의 종교학을 말하다 Jeffery J. Kripal, The Serpent's Gift: Gnostic Reflection on the Study of Religion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7) 크리팔 교수의 책을 읽으면 찌릿찌릿하다. 그는 종교학이 종교의 핵심적인 부분인 지혜, 영지, 신비에 대하여 발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것은 종교의 윤리적인 영역에 대한 발언이기도 하다. 나는 그가 비판하는, 종교에 대한 “순수하게 세속적인 연구자”에 속해 있다. 내가 속한 진영과 그가 주장하는 새로운 흐름은 분명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크리팔의 주장에 가슴이 떨리고, 그의 작업에 기대를 갖게 된다. 어쩌면 종교학의 소심함을 질타하는 데서 오는 이.. 2023. 4. 26.
"북미원주민 종교" 서문 중에서 샘 길(Sam Gill)의 는 오래되었지만(1982년) 아직도 삼빡한 개론서이다. 이렇게 참신한 관점에 입각해서 종교 현상을 서술한 책은 지금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책의 서론에서 인상 깊은 구절들을 좀 옮겨본다. 의미심장하게도, 질은 콜럼부스가 서인도에 도착했을 때의 상황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시아로 간다고 믿었던 콜럼부스의 삽질로 만난 사람들. 유럽인들의 세계관에는 새 대륙과 그 사람들을 설명할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무지의 상태에서 인디언이라는 이름만 붙여 놓았을 뿐이다.(인디언이라는 말은 이 책에서 북미원주민으로 대체된다) 그들에 대한 이해는 나아진 것이 별로 없기에, 질은 지금 우리의 상황은 콜럼부스의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상기시킨다. 오늘날 우리가 “인디언”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도.. 2023. 4. 20.
성스러움과 폭력 성스러움과 폭력 류성민의 [성스러움과 폭력](살림, 2003)은 르네 지라르의 [폭력과 성스러움]의 논의를 이해하기 좋게 해설해주는 책인 동시에 여러 측면에서 보완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지라르의 책에는 흥미로운 통찰이 담겨 있다. 폭력은 인간 사회에 상존하는 위협이고 종교 제도는 이 폭력을 제어하는 사회적 장치라는 게 요지이다. 폭력과 종교는 상반된 것이라는 상식을 뒤집어 종교의 성스러움과 폭력은 아예 본질적인 관련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완전히 낯선 생각은 아니다. 우리가 “희생양”이라는 말을 일반 사회의 맥락에서 사용할 때 그런 생각이 전제에 놓여있다.) 지라르의 책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문학 평론에서 출발한 작업이라 약간은 생소한 그리스 문학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서, 프로이트의 토템과 터부, .. 2023. 4. 18.
성서로 보는 미국 노예제 두 얼굴을 가진 하나님 : 성서로 보는 미국 노예제 미국에서 노예제를 놓고 벌어진 교회내의 논쟁은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다. 교회가 성서를 현실에 적용하는 방식에 대해 많은 교훈을 제공하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우리나라 학계에서 기대할 수 있는 주제는 못 된다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미국 뉴 멕시코 대학에서 이 문제를 전공한 학자의 책이 나와 있다. [두 얼굴을가진 하나님] (김형인 지음, 살림, 2003). 얇고 쉽게 쓰여진 책이지만 담고 있는 정보는 유용하다. 노예제 찬반을 놓고 미국 종교인들이 어떤 구절을 동원하고 어떤 논리를 구사하였는지를 잘 정리해주고 있고, 아울러 미국 노예제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들도 요약되어 있다. 게다가 이 내용으로 박사논문을 쓴 학자답게 노예제와 관련된 학술적 논쟁들.. 2023. 4. 18.
종교와 스포츠 이창익, (살림, 2004) 내가 한국에 있다는 것을 처음 실감하게 해주는 것은 사람들의 몸짓이었다. 그닥 유쾌한 것은 아니다. 여유없는 황급한 몸놀림들,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여전히 부족한 거친 움직임들. 그런 것들이 사람들이 띄엄띄엄 살던 사회에 익숙해있던 내게 이 사회를 상기시켜준다. 몸짓 속에는 이 사회가 압축적으로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미세한 몸짓의 차이와 변화를 놓고서 할 말이 참 많다. 우리 몸 속에 새겨진 역사, 문화, 삶의 환경에 대해 풍성한 이야기가 가능하므로. 서점에 갔다가 아는 선배가 새로 쓴 책을 발견했다. [종교와 스포츠 –몸의 테크닉과 희생제의]라는 책이다. 아, 멋진 일이다. 책을 통한 만남이라니. 어쩌면 당사자와의 만남 자체보다도 더 반가운 일이 될 수 있을 정도.. 2023. 4. 18.